아빠가 되어서야 알게 된 세월호 아픔

세월호 6주기를 맞이하여

by 박희종

6년 전에 나는 부모가 아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는 나를 많이 놀라게 했고, 많이 아팠으며, 많이 화가 나 있었다. 세월호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때에 작곡을 하던 선배형에게 연락이 왔다.

"이 기사 보고 가사 좀 써봐"

기사의 내용은 故정차웅 군의 사연이었다. 정차웅 군을 짝사랑하던 한 여학생이 고백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사고가 난 후에나 고이 접은 학과 편지로 늦은 고백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새벽에 읽은 그 기사에 나는 가슴이 먹먹해졌고 15분 만에 작사를 하게 되었다.

말야..

일 년 전부터였던 것 같아
자꾸 널 쳐다보게 된 것이
멀리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냥 좋았었던 시간도
그때 말을 했어야 한 걸까
너무 창피했었지만
차라리 말이라도 했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까

사랑해 너를 사랑해
오래전부터 망설인 말이야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단 말이야
이제 너에게 말할 수 있는데
만약에 듣고 있다면
대답은 안 해도 되니까 말야
그냥 널 볼 수만 있게
돌아오란 말이야

널 보고 가슴 떨릴 때마다
편지를 써서 별을 접었어
세어 보진 않았었지만
어느새 가득 차 있었지
그때 말을 했어야 한 걸까
너무 부끄러웠지만
차라리 고백을 했었다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을까

사랑해 너를 사랑해
오래전부터 망설인 말이야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단 말이야
이젠 너에게 말할 수 있는데
만약에 듣고 있다면
대답은 안 해도 되니까 말야
그냥 널 볼 수만 있게
돌아오란 말이야

오늘도 쪽지들이 늘었어
우리를 안타까워한다며
하늘에서 다 보고 있을 거래
정말 지금 보고 있니

사랑해 너를 사랑해
오래전부터 망설인 말이야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단 말이야
이제 너에게 말할 수 있는데
만약에 듣고 있다면
대답은 안 해도 되니까 말야
그냥 널 볼 수만 있게
돌아오란 말야
계속 내 맘 몰라도 돼
그냥 돌아오란 말야

이 노래는 정식으로 발매가 되었고, 언론에도 나름 알려지기 시작해서 다음 메인에 2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었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수익을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저작권료는 모두 기부가 되도록 하였다. 그 당시에는 아이들의 죽음도, 각각의 슬픈 사연도 너무 가슴이 아파서,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아주 컸었던 것 같다.

오늘로 세월호는 6주기를 맞이 했다. 그 6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남편이 되었고,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된 후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나의 아이만큼이나 다른 아이들도 더 이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도 너무 이쁘지만 공원에서 뛰어다니는 다른 아이들도 너무 이쁘고 SNS에 올라오는 많은 아이들도 나의 시선을 뺏곤 한다. 그래서 오늘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 아빠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날의 아이들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상상하는 그들의 감정은 그들의 직접 느꼈을 실제의 감정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가 되고 나니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입장이 부모의 시각으로 달라지게 된 것이다.

나는 어제 장인어른, 장모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가까운 공원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 나의 아이와 부모님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아주 많이 즐거웠고, 수백 장의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세월호의 사고는 그 모든 장면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아이와의 모든 추억을 눈물 없이는 떠올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며, 지금 모든 행복을 온전하게 즐길 수 없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모든 미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아빠가 되는 순간부터 내 휴대폰의 모든 사진은 아이의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루의 스케줄도 내가 꿈꾸는 미래도 모두 아이의 존재로 인해 달라지고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이야기이지만 만약에 이 상황에서 나의 아이가 사라진다면, 심지어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서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면, 나는 정말 살아갈 자신이 없을 것이다. 나의 모든 삶과 시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상황을 겪은 부모의 마음이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6년 전의 나는 세월호 부모님을 만나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했던 기억이 있다. 위로하고 힘내라고 살아야 한다고 용기와 힘을 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결국은 만나서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정말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그 부모님들을 만난다면 단 한마디도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의 그 어떤 말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분들이 힘을 낼 수 있을까?
나라면 살지 못할 것 같은 데 무슨 용기와 힘을 드릴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울음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쓴 저자는 우연히 장례식장에서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저자의 표현으로는 동물의 울음소리라고 표현을 했다. 그 어떤 말도 섞이지 않은 울음이 정말 저 가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울림으로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고 했다. 무엇이 남았을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아주 짧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눈물이 맺힌다.

정치적인 글이 아니다. 특정 조직이나 집단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부모라면, 상상을 한번 해보았으면 한다.

과연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잊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보내주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6년이 지난 나는 어느새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되어 세월호 6주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의 나라면, 아니 6년 전에 내가 아빠였다면 나는 그 어떤 마음도 가사로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소중한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은 그 누구도 대신 표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계속 기억하였으면 한다.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시는 같은 아픔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국민이 무력하게 바라만 보는 일이 생기기지 않도록,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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