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생일이다. 호적상으로는 2월이지만 4.8kg으로 거대하게 태어난 장손이 학교를 일찍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 할머니는 벌금을 내고 생일을 당겨서 호적에 올리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생일이 두 개다. 굳이 친구들에게 출생의 비밀을 말하면서까지 동생 취급을 받는 것이 싫었기에 공식적으로는 2월에 친구들과 1차 생일파티를 했었고, 호적 생일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과는 4월에 2차 생일을 하곤 했다.
어릴 때는 마치 크리스마스가 2번인 것처럼 남들과는 다르게 2번의 생일을 보내며 마냥 즐거워했었고,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그렇듯이 큰 감흥 없이 2월의 생일은 회사에서, 4월의 생일은 집에서 조촐한 축하를 받으며 보내곤 했다.
그렇게 매해 두 번의 생일을 보내면서 나에게도 가정이 생겼고,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우리에게 왔을 때 와이프는 입덧으로 너무 많이 힘든 시간들을 보냈었고, 중간에 조산에 대한 위험도 살짝 있어서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큰 일없이 무사하게 출산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아이가 우리에게 왔다. 산후조리를 하는 동안 와이프는 몇 솥이나 되는 미역국을 먹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로 그 작은 생명을 성장시키고 있다.
출산의 경험을 한 나는 그때서야 어머니가 나의 생일을 굳이 4월에 챙겨주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생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는 좋은 날이지만, 동시에 우리 어머니에게는 4.8kg이나 되는 우량아를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던 엄청나게 힘들고 벅차게 기뻤던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힘겨운 주인공의 자리를 나에게 기꺼이 양보하는 것이다. 실제로 난 그날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눈도 잘 뜨지 못한 아주 여린 생명체로 힘차게 울었던, 눈부신 세상이 두려워서 오들오들 떨었던 경험만 무의식 속에 담아놨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생일이 2월이든 4월이든 크게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다르실 것이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한 시기에 어머니가 출산을 하러 가는 바람에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땀을 흘리며 학교에 갔던 누나들의 모습도 기억하시고, 갓 태어난 아이가 너무나 커서 금세 눈도 뜨고 두리번거리고 머리도 다 솟아 있던 모습도 기억하고 계시다. 그렇게 또렷하게 남아있던 출산의 기억이 남아있기에 아들의 생일을 대충 2월에 넘길 수 없으신 것이다.
나의 생일은 내가 축하받아야 하는 아주 기분 좋은 날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나의 어머니가 힘겹게 나를 출산한 날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에게 생일은 생일을 핑계 삼아 축하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의미는 그렇게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생일을 만들어주신 어머니에게는 매년 그 날이 출산의 기억과 나와 처음 만나던 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날일 수도 있다.
어린 날의 나는 생일이 아주 커다란 권리라고 생각했다. 생일이 되기 전부터 생일에 갖고 싶은 선물을 생각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생일을 핑계로 모여서 놀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당연히 어머니에게는 당당히 용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생일이 돌아오면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오래 전 그날, 나를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셨을 어머니의 수고와 한 없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을 어머니의 표정이 기억하지 못해도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주에 나의 생일을 핑계 삼아 어머니댁에 다녀왔다. 요즘 한참 제철이어서 알이 꽉 찬 주꾸미를 사들고 나름 그럴싸한 생일상을 내가 직접 차렸다. 어머니께서는 알이 꽉 찬 주꾸미를 맛있게 드셨고, 오랜만에 만나는 손녀딸과 한참을 즐겁게 놀아주셨다. 그리고 어릴 때처럼 주머니에 용돈을 쓱 넣어주셨다.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나의 생일은 어머니가 축하해주어야 하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지 않은 통화였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했다.
"엄마 나 낳느니라 고생 많으셨어요"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온 세상이 나에게 축하를 해주는 나의 생일이라고 할지라도 나의 생일의 주인공은 어머니다. 누구보다 고생하셨고, 누구보다 행복해하셨고, 누구보다 세세하게 그날을 기억하고 계실 분이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세상의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년 내 생일에는 무항생제 투 플러스 한우를 듬뿍 넣은 미역국을 내가 직접 끊여서 그날의 추억을 함께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