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어머니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나는 응원한다
나는 장가가기 전에 어머니와 단둘이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상황이 여유로워서 모든 가족이 다 함께 여행을 다니면야 얼마나 좋겠냐마는 많은 가족들의 시간을 다 맞추는 것도 각자의 취향과 계획을 맞춰보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나는 심플하게 어머니와 단둘이 다니는 여행을 즐겼다. 처음의 여행은 20대 후반에 내가 잘 알고 있던 필리핀 세부 여행이었는데, 그때는 어머니도 나도 서툴고 어색해서 그렇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지는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떠났던 여행부터는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여행을 했던 곳은 오사카였는데, TV에서 나오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머니가 혼잔말을 하시는 것을 듣고 여행을 결심했었다.
"어이구 좋겠다"
그 해 여름 어머니와 단둘이 오사카 여행을 떠났고, 여행 내내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어머니와 여행을 다니면서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젊은 시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기 전, 젊은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참 재밌었다. 특히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다른 남자와 선을 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라서 신선하고 재밌기도 했지만 나름 기분이 이상했던 것은 여자로서의 어머니가 어색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이야기를 하시며 조금은 수줍어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도 여자였다는 것을 인지했다.
우리 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경제적인 능력이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를 참 많이 고생시킨 사람이기는 했지만, 천상 선비의 성향을 가지신 분이라 경제적인 부분 이외에는 크게 어머니와 다투시던 분은 아니었다. 다만, 내 기억에 아버지 어머니가 다정하시거나 살갑게 지내시던 모습이 있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어르신들이 모두 그러셨던 것처럼 서로 무심하게 무뚜뚝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뒤로는 아끼고 챙기셨던 모습이 어른이 된 이제야 조금씩 기억이 날 뿐이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참 많이도 우셨고, 아쉬워도 하셨다. 특히, 내가 무엇인가라도 효도 비슷한 거를 할 때면
"조금만 더 살지, 같이 살아있으면 얼마나 좋아"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런 우리 어머니는 전형적인 아줌마다. 아, 지금은 이제 할머니다. 꽃무늬 옷을 좋아하고, 빨간색을 좋아하는. 하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옷에 비해 화장이나 액세서리에는 관심이 없으셔서 크게 화려해 보이거나 쎄 보이는 이미지는 아니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언제부터인가 화장을 하기 시작하셨다. 옷에 신경을 더 쓰시고, 액세서리도 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만에 하는 어머니의 화장이 과하지 않도록 옆에서 계속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어느 날은 너무 진한 눈 화장을 어색하게 하셔서 바로 지워드린 적도 있다. 안 하시던 화장을 하시니 어색하셨던 것 같다.) 그러면서 슬슬 내게 오는 촉이 있었다.
"내가 이번에 노인대학에 갔는데,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너무 좋아. 같이 밥도 먹고 술도 한잔씩 하고, 놀러도 다니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거기 다니는 친구들이 어찌나 다 멋쟁이들인지 나도 기죽지 않으려고 더 신경 쓰게 된다니까"
어머니는 지역 내 노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대학에 다니기 시작하신 거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대학원도 가시겠다고 신나 계셨다. 나는 옷도 좀 사드리고 용돈도 좀 드리면서 열심히 다니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문득 한마디를 더하게 되었다.
"대학교도 다니는데 연애도 좀 해야지! 남자 친구도 만들어요"
"에이 무슨 연애야. 연애는.... 근데 하자고 하는 사람은 있어. 그래도 뭘 이 나이에"
여행에서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분명히 거부감이나 싫은 감정은 아니었다. 다만 어색했다. 하지만 또 마음속에서는 어머니가 저렇게 좋아하시는 것이 너무 좋았다. 진짜 연애를 하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심경의 변화나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전화를 드릴 때마다 친구분들과 함께 계시거나 항상 노인대학에 있다는 걸 알고 다시 한번 넌지시 던져봤다.
"연애는 안 해? 대학생이면 연애도 해야지?"
"연애해도 돼?"
"그럼 당연하지! 해도 되지 그럼! 재미있게 살아요. 좋잖아. 재미있음 돼요"
"안 그래도 남자 친구 있어! 자꾸 하자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기로 했는데.. 요즘 남자 친구랑 나머지 2명이랑 해서 매일 단풍 보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바빠"
77세 우리 어머니의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어머니는 내심 아들의 허락에 용기가 났는지 금세 누나들에게도 자신의 연애를 공식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누나들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기 시작하셨다.
귀를 뚫어달라. 화장품을 사달라. 염색도 좀 하자. 가방이 필요하다.
우리의 스무 살이 떠올랐다. 두근거리고 설레이던 마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던 시절.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예뻐 보이고 가꾸고 싶던 순간들. 그 시설의 우리처럼 어머니는 두근거리며 이것저것을 자식들에게 요구하고 계셨다. 난 그 시절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힘든 세상을 살고 계시면서도 아들이 옷을 사달라고 하면 사주시고 신발이 필요하시다면 사주시던, 정작 그 당시의 어머니는 아끼고 아끼며 사셨던 것을 지금에서야 나는 알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 생일에 나는 원피스 하나와 예쁜 백팩을 하나 사드렸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며 바로 입어보시고는 그 옷을 입고, 그 가방을 메고 누나네 집으로 가셨다. 가족 안에서 어머니는 여전히 우리의 어머니고 우리 딸의 손녀바보이시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에게 살짝 오셔서
"이 시계 남자 친구가 사준 거야. 원래 금은방을 하던 사람이라 이쁜 걸로 골라 왔네"
라고 자랑을 하신다. 언제인가 내가 사드렸던 시계 대신 남자 친구가 사주신 시계를 차고 나에게 자랑하시는 어머니는 영락없는 여자이고 소녀이다. 나는 어머니의 연애를 응원한다. 지금에도 다시 설레며 연애를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고,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외롭지 않으셔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여전히 여자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시는 어머니가 좋다.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하고 그리워하는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77세 어머니의 연애는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인생의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어머니가 나의 봄을 지원했던 것처럼 따뜻한 봄이 오거든 하늘하늘한 봄 옷 한 벌 사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