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는구나

모든 부모의 숙명

by 박희종

얼마 전부터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매주 토요일에 방송하는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이다. 출연자들이 다 함께 노래 한 부분의 가사를 맞추는 프로그램인데, 왠지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어려워서 출연자들도 잘 못 듣고, 시청자인 나도 잘 못 맞춘다. 콘셉트 자체가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 노래들의 가사를 맞추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황들이 펼쳐지다 보니 새로운 재미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제일 재미있는 점은, 모르고 들을 때는 그렇게 헷갈리고 잘 안 들리던 가사들이, 정답을 알고 들으면 너무 정확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엄마'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의도적으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나와 와이프에게는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들렸다. 마치 다른 사람들은 정답을 몰라서 뭐라고 하는지 몰라도, 우리들만 정답을 알고 있어서 정확하게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원래 빠른 아이들은 지금쯤 '엄마'라는 말을 하는 경우도 많아서 특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듣는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신기하고 대견한 사건이다.


그런데 실은 나에게 더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이미 2달쯤 전에 아이가 갑자기 '아빠'라고 나를 부른 것이다. 그때는 겨우 옹알이나 하던 시절이었는데, 내 무릎에서 놀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라고 하니까, 나도 너무 놀라고 주방에 있던 와이프도 깜짝 놀라서 달려왔다. 오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확한 발음이었다.


하지만 신기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하고 나니 믿어주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부모가 되면 다들 그렇게 거짓말을 한다고 놀리기도 한다. 하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아이는 분명히 나를 불렀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결국 우리만 거짓말쟁이가 된 사건이 되고야 말았다.


오늘은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더 분명하게 '엄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낮잠을 재우기 위해 아이 침대에 눕혔더니, 아직 자기 싫은 아이가 침대 옆 가드를 두 손으로 잡고 꺼내 달라는 듯이 '엄마'라고 여러 번 부르면서 울었다고 한다. 와이프는 이 상황이 너무 웃기고 짠해서 바로 꺼내 주고는 전화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연히 아이가 울다가 침대 끝으로 와서 옹알이를 하고 운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꾸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아마도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때가 되면 목을 가누고, 소리에 반응하고,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말을 하고, 잡고 일어나는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안심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이 집중하고 관찰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착각하거나 우길만한 상황들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상황은 예고편 같은 것이어서 며칠 빠르게 미리 본 것뿐이지 얼마 있으면 당연한 듯이 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연계되는 두 번째 이유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엄마나 아빠는 아이의 그 작은 변화를 위해 수백 번의 유도를 한다. 계속해주는 자극의 반복이 아이의 변화를 끌어내게 되는 것이데, 한 번의 성공 후에 너무 신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보여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꼭 안 한다. 마치 우리가 착각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계속 기다리고 자극해주는 부모 앞에서는 잘했다고 해도,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보여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모가 거짓말쟁이라고 놀림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부모는 아이의 모든 변화가 기특하고 반갑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지 않아도 더 믿고 싶고 믿게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아이는 내가 손바닥을 펴고,


"하이 파이브"


를 외치면, 웃으며 자기 손바닥을 펴서 내 손바닥에 가져다 댄다. 나는 어제 20번은 했다. 빠른 것일 수도 있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실수이거나 우연이라도 나는 그 행동이 너무 예쁘고 기특해서, 박수도 쳐주고, 소리도 질러주고, 뽀뽀도 해주는데, 그 모든 교감도 아이와의 추억이고 또 다른 자극일 것이라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깟 거짓말쟁이가 되면 좀 어떤가? 어느 부모나 내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소중한 사람인 것을. 모든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거짓말쟁이가 된다. 바꿔 말하면 그 말은 결국 모든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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