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천천히 커 주면 안 되겠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 느리기도 하고, 제일 빠르기도 하다

by 박희종


아이가 소파를 잡고 일어선다. 단순하게 잡고 일어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버티기도 하고 옆으로 걸어서 이동하기도 한다. 표정은 훨씬 다양해졌고, 자기 의사 표현도 분명해졌다. 하얗게 아랫니가 두 개 올라온 것도 나의 심장을 자꾸 공격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아침부터 아빠 가슴팍에 올라와 온갖 애교를 퍼부어주어서 연차를 써버릴 뻔했다.

"우리 딸 진짜 많이 컸다."

나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자주 바꾼다. 딸아이의 예쁜 사진을 건질 때마다 일주일에도 서너 번씩은 바꾸곤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 저장된 사진만 80장이 넘었고, 시간 날 때 프로필 사진만 뒤로 돌려봐도 아이가 어떻게 커왔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고작 8개월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무 우스운 일일 인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부가 느끼는 요즘 감정은 아이가 너무 빨리 큰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에 가던 때도 엊그제 같고, 2시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수유 타임에 함께 힘들어하던 시기도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어느새 불쑥 커버려서, 이제 가끔은 어린이처럼 보이는 사진들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천천히 자라줬으면 좋겠어."

막상 아이의 몸무게가 늘지 않거나, 이유식이나 분유를 남길 때면, 그렇게 걱정을 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저 마음이 항상 있는 것 같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그 순간마다 너무 예쁜 모습들을 기억하다 보니, 다가오는 새로운 모습에 설렘도 있지만, 조금만 천천히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이런 퀴즈를 낸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리면서 제일 빠른 것은 무엇일까?"

그때 친구들이 다양한 답을 했던 것 같은데, 나의 대답은 "구름이 흘러가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비슷하기는 하지만 선생님이 생각한 답은 아니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느리면서 제일 빠른 것은 성장이야. 식물이나 나무들이 자라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선생님이 생각할 때는 성장이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 같아. 그런데 신기한 것이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보면, 어느새 쑥 자라 있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거든. 그럴 때 보면 성장이 또 아주 빠른 것 같기도 해."

그 뒤에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아이의 성장도 그런 것 같다. 육아는 너무나도 힘든 일들이 많기 때문에 하루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고, 우리의 시간을 멈춰버리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아이가 불쑥 커 있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힘든 순간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기도 하고, 그냥 아이가 훅 커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너무 예쁜 순간들을 맞이하거나, 아이의 폭풍 성장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조금만 천천히 자라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세상에서 제일 느리기도 하고, 제일 빠르기도 하다.

많은 선배들이 둘째 셋째를 낳는 이유가 첫째의 그 이쁜 순간들이 그리워서라고 말해주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맞이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예쁜 순간들을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 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의 성장은 그 순간마다 새로운 기쁨을 주기 때문에 커가는 것이 싫거나 슬픈 일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 눈에서 그 존재만으로 나의 심장을 삼켜버리는 이 아이의 사랑스러움이 차곡차곡 그리움으로 쌓여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장하는 아이의 뒤에서 가끔 멀어져 버린 아이들의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에 잠길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모님들께서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불가능한 일인 줄도 알고, 그런 일은 없다는 것도 알지만, 진지하게 부탁하고 싶다.

"조금만 천천히 커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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