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주일 사이 아이의 인지능력이 확 높아진 것이 느껴진다. 예를 들면 옹알이 중에 나오는 우연한 아빠, 엄마 단어가 아니라 정확하게 대상을 보면서 부르게 되었고, 장난감을 주고받는 것을 안다거나, 까꿍놀이나 "잡으러 가자"라는 말에 반응해서 도망치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심쿵하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바로 "충전"이다. 얼마 전부터 아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것인데. "아빠 충전해줘"라고 말하며 이마를 살짝 내밀면 아이도 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대는 것이다. 처음으로 아이가 이마를 가져다 댔을 때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그 우연이 여러 번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이 행동을 정확히 인지하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진짜 중요한 것은 정말 충전이 된다는 것이다. 좀 지치고 힘든 상황에도 아이의 "충전"에 힘이 나고, 웃음이 생긴다. 아이가 잠든 후에도 와이프랑 그 "충전"에 대해 여러 번 말을 하고 웃게 된다. 정말 아이의 작은 행동으로 우리는 충전이 되고 있다.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퇴근길에 뭘 사 오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통닭을 사 오시기도 하고, 빵을 사 오시기도 하고, 과일을 사 오시기도 하셨다. 그 당시 사업의 실패와 직장생활의 어려움으로 이직이 잦으셨던 아버지의 삶에 퇴근 후 자식들을 위해 간식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셨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당시 남부럽지 않은 체구를 가지고 있던 시기라 아버지가 사 오시는 간식들이 아주 반가웠다. 나는 항상 아버지의 간식에 격한 리액션을 보였고, 우리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아 간식을 먹으며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가 제일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출근과 퇴근의 순간들이다. 알람 소리에 깨서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고 급하게 현관을 나가던 시절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나의 새로운 알람은 아이의 목소리다. 일찍 잠들고,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는 6시만 넘으면 일어나서 소리를 내곤 한다. 나는 아이의 방으로 가서 옆에 누워 더 재우려고 노력해보지만, 결과는 내 잠도 달아나게 하여서 새벽부터 아이와 놀아주고 있게 된다. 그러다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오면 간단히 푸시업부터 하는데, 아이는 아빠의 푸시업이 신기한지 항상 빠른 속도로 기어 와서 나의 등을 잡고 앉았다 있어 났다를 함께한다. 그 이후에도 내가 씻는 것을 화장실 입구에서 지켜보고 있고, 옷을 입으러 옷방에 가면 쪼로로 따라서 기어 와서 아빠의 코디를 관람한다.
가장 피크는 출근하기 위해 현관으로 가는 것인데, 엄마 품에 안겨 출근하는 아빠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다.
"아빠 빠빠이!"
소리는 당연히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는 아이와 그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를 보면 정말 힘이 난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퇴근할 때는 내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올 때부터 아이가 반응한다고 한다.
"등록된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라는 맨트가 인터폰에서 나는 순간 신나는 아이는,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나면 박수를 치기 시작하고, 아빠를 보면 방방 뛰기 시작한다. 하루의 피로 따위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니들 보고 산다"
어릴 적 힘들게 살아오던 어머니가 많이 하셨던 말이다. 그때는 그려려니했던 말이지만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출근길에 흔들어주는 아이의 빠빠이는 나의 하루를 견디는 힘이 되어주고, 퇴근 후 쳐주는 아이의 박수는 나의 피로를 씻어준다. 그리고 방전된 나의 배터리는 아이의 "충전"으로 급속 충전이 된다.
아이가 주는 힘은 단순히 책임감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훨씬 더 원초적인 본능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우리 부부는 아이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의 존재가 우리의 육체적 피로를 가장 많이 쌓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당하고 버텨내며, 이겨 낼 수 있게 해주는 힘도 함께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