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요 며칠 또 부쩍 컸다. 밥을 잘 안 먹고 밤에 잠을 좀 설치는가 하더니 아무래도 크려고 그랬나 보다. 아이는 눈에 띄게 키도 컸지만, 무엇보다 훨씬 더 또랑또랑 해졌다. 말을 다 알아듣기 시작했고,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를 자꾸 쓰러지게 만드는 것은 애교가 엄청 늘어서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나에게 안기기도 하고, 내가 누워있으면 내 배에 기대기도 하고, 나에게 자꾸 웃으며 장난을 친다는 것이다.
"까꿍"
아이는 말도 많이 늘었는데, 저 까꿍이란 말은 어찌나 좋아하고 잘하는지 틈만 나면 사람들에게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깍꿍이라는 말을 하고 다니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손인사를 자주 한다. 심지어 밥을 먹이다가 장난처럼 가르친 배꼽인사까지 아주 잘하고 있다.
이렇게 쑥쑥 크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어쩌지 못할 만큼 너무 예쁘고 행복한데, 그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묻곤 한다.
"우리 아기 왜 이렇게 예쁘지?"
"오빠 새끼니까요."
농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주고받는 저 대화는 진심으로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하는 대화들이다. 그런데 이런 대화중에도 제일 궁금한 것은 이거였다.
"우리 눈에만 예쁜 거겠지?"
"아마도?"
우리에게는 이미 [내 새끼 필터]가 적용되어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기본적으로 장착된 이 필터는 가끔 냉정하게 아이의 외모를 관찰해보려는 노력을 해도, 무조건 더 예뻐 보이고 귀여워 보이는 보정 효과를 해준다. 이 [내 새끼 필터]의 효과는 엄청나서 한번 장착된 순간부터, 아무리 예쁜 아이를 보거나 정말 귀여운 반려동물들을 본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비교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우리 아이가 가장 예쁜 아이가 되고, 순간순간 우리 아이의 귀여움이 가장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궁금하다. 우리 아이가 객관적으로 예쁜 아이인지? (아무래도 딸이다 보니, 심지어 딸인데 아빠를 닮았다 보니) 아이가 혹시 우리 눈에만 예뻐 보이는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도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그런 궁금증이 있어서, 누군가가 아이의 칭찬을 하면 아내에게 바로 공유를 하곤 한다. 하지만 나보다는 나름 냉정함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적절하게 직언을 하곤 한다.
"친척들은 다 예쁘다고 말하지."
"친구들이 그럼 안 예쁘다고 할까?"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어."
가끔은 너무 냉정하게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말을 듣고 있는 아내의 표정이 이미 환하게 웃고 있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도 나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나름 객관적이려고 하는 아내도 궁금한 건 나랑 똑같은지 이번 연휴 때 장모님께 진지하게 물어봤다고 한다.
"엄마, 우리 아기 객관적으로 너무 귀엽지?"
"어, 객관적으로 봐도 엄청 귀여워."
우선 기본적으로 설문 대상자 선정부터가 오류가 있다. 아이의 객관적 귀여움의 판단을 엄마가 할머니에게 묻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 두 분은 그걸 또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내 새끼 필터]가 가장 프리미엄급으로 장착하신 분들이 말이다.
솔직히 아이가 아프거나 다칠 때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곤 한다.
"다 필요 없으니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하지만 또 부모의 욕심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자리이거나, 정말 이쁜 아이들의 사진을 보게 되면, 우리 아이가 제일 예뻤으면 좋겠고, 우리 아이도 예쁘게 컸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어차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되는 상황에서 부모와 아이를 모두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내 새끼 필터]인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학창 시절 내내 비만이었던 나에게 항상 우리 아들이 제일 잘생겼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때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누나들은 말도 안 된다고. 고슴도치라고 엄마를 약 올렸지만, 그래도 엄마는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엄마는 내가 처음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 나에게 이렇게 고백하셨다.
"실은 예전에 너랑 같이 나가면 조금 창피할 때도 있었어."
나름 충격적인 엄마의 고백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깜짝 놀랐다. 적어도 나는 자라는 내내 한 번도 엄마가 나를 창피해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새끼 필터]는 부모들의 근사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기 최면) 부모도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고, 더 이쁘고 똑똑한 아이와 비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에게는 내 아이가 가장 예쁘고 귀엽게 보게 되고. 그렇게 이쁜 모습만 찾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최면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행복하고 든든하게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비교할 필요도, 평가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객관성을 유지할 수도 없고, 유지할 필요도 없다. [내 새끼 필터]를 통해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아이를 예뻐해 주면 되고,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믿고 당당하게 커나가면 되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우리 아이의 객관적인 귀여움이 궁금하지만, 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누가 뭐라고 하는 나는 세상에서 이 아이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울 것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내 새끼 필터]는 계속 껴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