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천사를 낳았어

전직 천사의 고백

by 박희종

모든 아이는 천사다. 아마 하늘에서 우리에게 올 때 잠시 날개와 링만 두고 왔을 뿐, 천사의 모습 그대로 유지한 채 내려온 듯하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천사였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아이가 잠들었을 때다.

"봐봐 속눈썹이 더 자랐다."

"이마가 볼록하니 이쁜 거 봐"

"나중에 쌍꺼풀이 생기지 않을까?"

우리 부부는 가끔 아이가 잠들었을 때, 숨죽인 소리로 이런 대화들을 나누곤 한다. 잠든 아이가 천사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온전하게 집중해서 아이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면서 행동이 많아지고, 반경도 점점 넓어진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가 아이의 모습을 차분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자는 순간들은 아이의 온몸을 마음껏 바라보고 이뻐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한다는 것은 아주 많이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필수적인 과정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 하는 과정이 남는데, 같은 공간에서 한정된 아이템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엄청난 미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아무리 날개를 두고 온 천사라고는 하지만 우리를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은 우리에게 오아시스 같은 순간들을 선물한다. 모든 힘듦을 잊게 해 주는 천사 재림의 순간들. 우리 아이는 주로 잠을 아주 잘 자고 일어났을 때나, 맘마를 든든하게 먹었을 때, 아빠가 퇴근해서 돌아오거나, 친척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순간에 나타나는데, 바로 활짝 웃어주는 것이다. 이럴 때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주 작은 행동들에도 방긋방긋 웃어주고, 별거 아닌 거에도 소리까지 내면서 웃어주기도 하는데, 그 순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한 순간들이다.


"와! 진짜 천사 같아"

"천사야! 내가 천사를 낳았어"

모든 아이들은 천사다. 세상의 고통과 힘듦을 견딜 수 있도록 하늘에서 내려보낸 선물이다. 다만, 천사를 만난 기쁨을 더 크게 느끼게 해 주기 위해 평소에는 살짝 숨겨두었다가, 잠을 자는 모습이나 활짝 웃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한 번에 큰 기쁨을 선사해주는 것 같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천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천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견디고 살아갈 이유가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부모님들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우리의 삶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힘들었을 그들의 인생에 언제나 우리는 삶의 이유였고, 삶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우리도 천사였던 것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만난 회사분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늙었어요? 아닌가? 좀 피곤해 보이는 건가? 요즘 바쁘신가 봐요"

멋쩍게 웃으며 넘어갔지만, 요즘 들어 참 많이 들은 이야기다. 회사도 한창 바쁜 시기이고, 얼마 전까지 아이가 밤에 잠투정이 있어서 수시로 깨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몸상태는 좋지는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흔들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나만 유별나게 심한 상황은 아니다. 아이를 기르는 많은 가정의 부모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더 고단한 삶을 살면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힘듦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천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 후 잠든 천사도 만날 수 있고, 활짝 웃는 천사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 천사로 인해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도 충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심지어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모두 전직 천사였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존재도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을 견디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화내지 말자. 짜증 부리지 말자. 서로에게 상처 주거나, 책임을 미루지 말자. 적어도 천사와 함께 사는 전직 천사들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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