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_2

이번엔 소설이다_장편

by 박희종

트러스트의 음악을 처음들은 건 3형제 중 막내인 민석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대부분의 형들이 그러하듯이 민석이의 두 형들도 무뚝뚝하고 거칠었지만, 각자 나름의 개성으로 민석이의 성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민석이의 큰형은 슬램덩크와 마이클 조던의 광팬이었다. 항상 농구츄리닝만 입고 농구화만 신고 다니며 농구장에서 살던 농구 마니아였다. 그런 큰형의 영향으로 민석이도 축구보다 농구를 좋아했고, 우리 반에서 가장 큰 키를 갖게 되었다. 민석이의 둘째형은 남다른 패션 감각의 소유자였다. 깡마른 체형에 키도 큰 편이었기 때문에 뭘 입어도 옷태가 났었고, 항상 특이한 옷이나 패션 아이템을 사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가끔 질리거나 흥미가 떨어진 것들을 민석이에게 주곤 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민석이도 또래와는 다른 패션감각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해졌고, 인기도 많은 편이었다. 너무 확연하게 취향이 갈리는 형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똑같이 좋아하는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트러스트였다. 우리 또래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이미 유행이 지난 그룹이었지만, 형들의 시대에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슈퍼스타였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민석이네 집에만 가면 항상 트러스트 음악이 틀어져 있었고, 학교가 끝나면 항상 민석이네 집에 모여 놀던 우리 무리들은 자연스럽게 트러스트의 팬이 되었다.

동네에서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은 중학교 때까지 같은 학교여서 매일 함께 등교를 하고, 학교가 끝나면 매일 함께 민석이네로 가곤 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듣는 음악은 민석이네서 듣는 트러스트 음악이 다였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가면서 각자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진 우리는 이제 각자 등교를 하게 되었고, 입학 선물로 받은 CD플레이어로 나는 매일 등하굣길의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처음 샀던 CD가 트러스트 4집이었는데, 5집을 기다리며 계속 들었지만, 그 이후로 트러스트 5집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옆집 아저씨의 얼굴이 익숙했던 이유가 학창 시절의 추억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 이 타운하우스의 광고 현수막을 봤을 때, 그 현수막에 강하준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모델하우스를 둘러볼 때도 여기저기 강하준의 얼굴이 있었으며, 심지어 내 기억으로는 중간에 급하게 들어갔던 화장실을 알려주었던 것도 강하준의 등신대였다.

"설마 모델이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을 줄이야...."

"심지어 옆집이라니..."

나는 오전 내내 회사에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우상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의 학창 시절을 꽉 채우고 있던 트러스트의 강하준이 나의 옆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너무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누군가 몰래카메라 같은 장난을 치고 있는 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했다.


멍하던 오전의 시간이 지나고 오후가 되자, 그동안 멍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특히, 강하준에 대한 기억들이 더 구체적으로 생각나기 시작했다. 입주가 시작된 후에 계약을 했던 나는 동네에 와서 주변 환경을 제대로 살펴보고 싶었다. 내부의 모습이야 모델하우스를 통해 충분히 볼 수 있었지만, 타운하우스가 있는 주변 동네는 직접 보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했던 건, 내가 들어갔던 모든 공간에 강하준의 사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계약을 하기 위해 들어갔던 커피숍에도, 계약을 하고 간단히 밥을 먹었던 작은 식당에도, 심지어 버스에 타기 전에 물을 한병 사기 위해 들렀던 편의점에도 모두 강하준 사인이 있었다. 심지어 그 모든 곳에는 사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게의 주인들과 밝은 표정으로 어깨동무까지 한 강하준의 사진들도 함께 걸려있었다. 그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강하준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로 민석이에게 전화했다.

"야 나 강하준 봤어!"

"뭐? 진짜? 어디서?"

"우리 옆집에서"

"야 장난하지 마! 강하준이 왜 그 코딱지만 한 오피스텔에 왜 가냐?"

"아니. 타운하우스!"

"뭐? 너 진짜 거기 샀어?"

"야. 내가 샀다고 몇 번을 말했냐? 샀다고! 벌써 들어왔다고!"

"아! 미친놈! 거기 사면 안된다니까! 넌 도대체 왜 내 말을 안 듣냐!"

"내가 왜 네 말을 듣냐?"


"야! 됐어! 끊어!"

내가 타운하우스를 산다고 했을 때, 제일 격렬하게 반대하던 놈이다. 지금은 아마 자기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게 화가 나서 이렇게 그냥 끊었지만 곧 다시 전화가 걸려 올 것이다.

"야! 옆집에 강하준이 산다고?"

5초 만에 다시 걸려온 전화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래! 오늘 강하준이 내차도 고쳐줬다."

"뻥!"

"트루! 진짜!"

"미쳤다!"

"미쳤지?"

"야! 나 오늘 간다. 주소 찍어라"

"지랄! 사지 말라며!"

"아니 지금 그게 문제냐? 강하준이라며!"

"그래서 뭐!"

"간다고 오늘! 너 주소 안 찍으면 나 형들한테 말한다"

"아 됐어! 나중에 와! 나중에!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좀 보고"

"알았어! 오케이! 대신 친해져라! 나 하준이 형님이랑 술 한잔 하는 게 소원이었던 거 알지?"

"오케이"

나는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정도였지만, 민석 3형제는 전혀 달랐다. 1집부터 4집까지의 모든 포스터가 3형제의 방에 붙어 있었고,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으로도 유명했던 트러스트가 방송에 입고 나왔던 옷들은 어떻게든 꼭 흉내 내서 따라 입곤 했다. 매일 츄리닝만 입는 큰형마저도 말이다. 그래서 3형제 모두 학창 시절 별명을 스스로 "어디 어디의 강하준"이라고 우기고 다닐 정도였다.

"아. 괜히 말했네. 피곤하게"

퇴근할 때가 되자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일은 나에게 진짜 고마운 일이다. 그럼 당연히 감사인사를 해야 하는데 ,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는 고작 딸기나 사과 같은 과일들이었는데, 그다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왠지 강하준이 딸기를 씻거나 사과를 깎는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 내가 옆집에 좀 신세 진 게 있어, 뭘 사가야 되냐?"

"과일"

"과일 말고"

"과일이 왜?"

"그냥 과일 말고?"

"여자야??"

"남자야! 과일 딴 거 없냐고?"

"왜 성질이야! 그냥 애 있으면 케이크, 없으면 와인이나 한병 사가"

민석 3형제랑 별다르지 않은 무뚝뚝한 여동생과의 통화 중에 문득 아침의 실크 샤워가운이 떠올랐다. 실크 샤워가운과 와인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은가. 와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잠깐 만났던 여자 친구가 와인을 워낙 좋아해서 분위기 잡기 위해 몇 병 사놓은 것은 있었다. 그중에 제일 비싸지만 내입에는 안 맞는 것을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을 해서 주차를 하다 보니, 옆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우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항상 입는 무릎 나온 츄리닝과 5년 전에 하얀색이었던 베이지색 면티를 입었겠지만, 오늘은 왠지 새로 산 면바지와 곤색 반팔티를 입게 되었다. 아직 풀지도 않았던 박스에서 와인을 찾아들고, 문밖을 나서는데 왠지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떨림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연예인을 가깝게 본 적도 없고,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는 나에게는 이성에서 느껴지는 떨림과는 다른 두근거림이 있었다.

문 앞에 서있는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옆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너무 어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시선이 바닥으로만 향해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말이나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저씨 아니면 정말 지각할뻔했어요. 저희 본부장이 진짜 레벨이 다른 똘아인데, 지각하는걸 진짜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지각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주절대고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발이 남자의 발이 아니었다.

"예?"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여자 중에 가장 예쁘게 생긴 20대 초반의 여성이 하얀색 샤워가운만 입고 문 앞에 서있었다.

"아..저..그게..그러니까...그게..."

"누구시죠?"

"아...저... 여기가...혹시... 강하준 아저씨 집 아닌가요?"

"아.. 맞아요"

"아...그쵸? 맞죠? 아..저... 그럼 혹시 안 계신가요?"

"예."


"아 그럼 이것 좀.."


"예?"

나는 와인을 거의 던지듯이 여자의 손에 쥐어주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후다닥 집에 들어와 현관문에 기대서 한숨을 돌리고 나니, 그때서야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뭐가 이렇게 떨리지? 나는 왜 당황했지? 강하준네 집 아닌가? 아! 맞다고는 했지? 근데 누구지? 근데 왜 이렇게 예쁜 거야? 그보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아 뭐야? 심장은 왜 뛰는데!!"

머릿속은 너무 혼란스러웠고, 나는 내가 왜 혼란스러운지도 모른 채, 텅 빈 거실에 한참을 서있었다. 얼마나 서있었는지 모르지만 겨우 정신을 차릴 즈음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천천히 현관에 다가가자 작은 화면에 강하준 집에 있던 그 예쁜 여자가 보였다.


" 뭐야!! 여긴 왜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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