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_3

이번엔 소설이다_장편

by 박희종

"저 무슨 일이세요?"

"잠깐 나와 주시겠어요?"

"아... 예... 잠시만요."

나는 아직 정신이 차리지 못한 채, 급하게 뛰어나가듯이 문을 나섰다. 재미있는 건 얼마나 내가 정신이 없었는지, 아까는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에 서있었고, 지금은 습관적으로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밖으로 나간 것이다. 맨발로 뛰어나온 나를, 그 여자는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저... 무슨 일이세요?"

"뭐 그 정도로 급한일은 아닌데..."

내 맨발을 보며 그 여자가 말했다. 나는 그 여자의 말에 더 정신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발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잠시만요. 신발 좀..."

신발을 신고 다시 현관 앞에서 그 여자와 마주한 나는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고, 등 뒤에 식은땀도 흐르고 있었다. 신발은 신었지만 발은 여전히 꼬물거리고 있었고, 손은 어쩌지 못해 앞으로 모았다 뒷짐을 지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손에 와인이라도 들려있던 아까가 차라리 나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 그 여자의 손에 들린 그 와인을 발견했다.

"이거 제가 못 전해줄 것 같아서요"

여자는 나에게 그 와인을 다시 건넸다.

"예?"

"강하준 씨 오늘 안 들어올 거 같거든요."

"아... 그래요?"

"친하세요?"

"예? 누구랑요? 누가요? 저랑요? "

"강하준 씨랑"

"아... 그게.. 그러니까...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고요.. 제가 신세를 좀 진 게 있어서요.. 그러니까..."

"예. 알겠어요. 그럼 우선 제가 이 와인을 못 전해드리면 강하준 씨를 다시 만나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죠?"

"아... 예... 그게... 그렇죠..."

"그럼 그때 이것도 같이 전해 주시겠어요?"

여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반으로 한 번 접은 쪽지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예.. 뭐... 그거는... 뭐... 예... 예.."

"감사합니다"

나름 친절하게 웃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지만 그 얼굴에는 영혼이 없는 듯했다. 여자가 가고 나서 또 멍한 상태로 거실에 들어온 나는, 한 손에는 와인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쪽지를 들고 한참을 서있었다.


"아! 신발을 또 안 벗었구나."

아주 깜깜한 밤이 되고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앉았다. 바닥에 앉아서 오늘 하루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예인과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그 연예인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에 와서는 그 연예인과 무슨 관계인지가 모르는 아주 많이 예쁜 여자와 대화를 하고....

"강하준이랑 무슨 관계지?"

생각을 정리하다가 보니 그 여자의 존재가 갑자기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강하준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어린 여자였고,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여자보다 예뻤다. 연인으로 생각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고, 또 아니라고 하기에는 주인 없는 집에서 샤워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누굴까? 그때 문득 그 여자가 주고 간 쪽지가 내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투도 없다. 여러 번 접지도 않았다. 그저 메모지 한 장을 찢어서 한번 접은 느낌이었다.

"열어볼까?"

이럴 땐 꼭 괜한 양심이 브레이크를 건다. 나와 상관도 없는 한 연예인의 개인사를 살짝 들여다본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반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마치 나의 고민을 해결이라도 해주려는 듯 민석이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께 인사는 드렸냐?"

"야. 혹시 강하준 연애하냐?"

"야! 강하준이 뭐야!! 강하준이! 형님이라고 해!"

"아. 좀. 됐고. 여자 친구 있냐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아직도 팬클럽인 줄 아냐?"

"아니 그래도 혹시 루머나 찌라시 없어?"

"왜? 같이 사는 여자가 있어? 형님 동거하시냐?"

"아. 미친놈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 그럼 뭔데! 말을 똑바로 해!"

나는 우선 정상적인 대화를 위해 오늘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줬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민석이가 얼마나 집중했는지는, 중간에 한 번도 내 말을 끊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로 알 수 있었다.

"쪽지 보자!'

"안돼!"

"왜? 누가 알아? 대충 접은 거라며! 그럼 그냥 네가 봐도 상관없다는 거 아냐? 그냥 확 보자!"

"말이 안 되지. 대충 접었다는 게 아무나 봐도 된다는 말은 아니잖아!"

"아 답답한 놈! 그럼 안 보게? 안 궁금해? 너는 옆집에 연예인이 사는데? 그 연예인 집에서 누가 샤워를 했는데? 안 궁금해? 심지어! 지금! 당장! 확인할 수 있는데? 안 궁금하다고? 진짜?"

"궁금해! 궁금해! 궁금해! 나도 궁금해 미치겠다고! 그렇다고 내가 막! 어? 내가 막! 다른 사람이 전해 달라는 쪽지를 어? 내 맘대로! 막보고 그러라고? 그건 아니잖아. 안 그래?"

"뭐가 안 그래? 몰라! 모른다고! 네가 살짝만! 아주 살짝만! 지금 한 15도라도 치면, 한 40도까지만 벌려도 읽을 수 있다고! 그럼 누가 그 쪽지를 15도에서 40도까지 벌린 걸 아냐고!!"

"내가 알잖아! 내가! 혹시라도 내가 알면 안 되는 내용이면 어떡해? 나중에라도 안 본 척할 수 없는 내용이면 어떡하냐고!"

"야이 빙신아!! 보지 마!야! 너 보지 마! 너 보지마라 절대! 보기만 해 봐 아주 내가 아작을 낼 테니까! 아! 이 새끼 진짜 빙신이네! 야! 됐어! 끊어"

민석이와 그렇게 아무 소득 없이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또 한 30분을 그 쪽지를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 소심함이 내 인생에서 큰 피해를 준 적은 없어도, 아마 많은 기회나 즐거움을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라는 막연한 후회는 있다. 진짜 바보 같기는 하지만 혹시 보일까 봐 바닥에 엎드려서 15도의 사이를 실눈을 떠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길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만 보이지, 단어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고, 새벽에 추워서 잠이 깬 후 침대로 들어가서 잠을 잤다. 침대로 올라가는 중에도 나는 주방 창문을 통해 옆집에 불이 꺼져있는 것을 확인했다.

"진짜 안 들어왔구나"

그렇게 타운하우스에서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 나는 첫날만큼이나 깊게 잠이 들었고, 어제처럼 아무런 감흥도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혹시 어제와 같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 나는 더 열심히 움직였고, 씻었는데도 땀이 날 정도로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했다. 어제보다 10분이나 더 일찍 차에 나온 나는, 나도 모르게 옆 동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듯 적막한 옆 동을 계속 주시하며 차에 올랐다. 차에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는 순간. 그 오래된 벤츠가 길의 끝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출발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나를 본 강하준은 주차를 하고서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또다시 땀이 흐르기 시작한 나는 휴지라도 찾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그 쪽지가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급하게 내려서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차는 잘 가?"

내리는 나를 보고 강하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아.. 예... 어제는 감사했습니다"

나는 강하준의 앞으로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다행이네. 안 바빠? 출근 안 해?"

"아. 합니다. 해야죠. 근데 저기 제가 드릴 말씀이.."

무심히 현관 쪽으로 들어가는 강하준을 불러 세웠다.

"어? 뭐?"

"어제 제가 너무 감사해서 저녁에 와인 한 병을 사 가지고 갔었거든요"

"에이. 무슨 와인이야? 오그라들게. 고마우면 과일이나 몇 알 사 오지"

"아.. 그렇구나..."

"됐어! 과일도! 집에 많으니까. 가족들이랑 먹어"

"혼자 사는 데요..."

"아 그래? 그럼 더 챙겨 먹어야겠네. 사 오지 마. 받은 걸로 할 테니까.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서 출근해!"

"아 근데요! 어제 집에 누가 계셨어요!"

내 말에 갑자기 관심이 생긴 강하준이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어제 제가 불이 켜있길래, 와인을 들고 왔는데, 초인종을 눌렀더니 어떤 여자분이 나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예? 그냥 저는 와인만 드리고..."


예뻤다는 말도 샤워가운을 입고 있었다는 말은 못 했다. 뭔가 내 속마음이 담기는 듯해서. 아. 생각해보니 나는 어제 이 집에서 샤워가운 입은 사람들만 만났다. 무슨 찜질방도 아니고.

"그게 다야? 다른 건 없었고?"

"저도 당황해서 뭐 다른 건 뭐가 없었고요. 근데 나중에 다시 와서 저한테 쪽지를 전해주라고요."

"뭐? 줘봐"

강하준은 내가 내민 쪽지를 거의 뺏어가듯 가져갔다. 그리고 그 쪽지를 읽다가 조금 심각해지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바뀌면서 다 읽은 쪽지를 구겨서 잔디밭 위로 던져 버렸다.

"됐어! 가봐! 출근해야지!"

"아... 예."

"그리고 아까 화낸 거 아냐! 그럴 일이 좀 있어!"

"아... 예"

"여튼 출근해"

뭔가 슬픈 눈빛으로 변한 강하준은 집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곳에서 또 한참을 서있어야 했다. 구겨버린 그 쪽지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나는 당장 잔디밭에 들어가 그 쪽지를 펴볼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저건 쓰레기다. 이미 강하준이 버린 쓰레기. 난 이웃의 정으로 그저 잔디밭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뿐이다. 심지어 강하준은 내가 그 쪽지를 읽었는지 아닌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내적 갈등으로 정말 지각하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때가 돼서야 결국, 그 쪽지를 줍지 못한 채 차를 끌고 나왔다. 나는 출근 내내 그 쪽지의 위치가 눈에 선했다.

"이그. 빙신아"

민석이의 비아냥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타운하우스_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