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_5

이번에 소설이다_장편

by 박희종

집에 들어오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거실에는 근사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6인용 소파와 엔틱 느낌의 장식장, 60인치도 넘어 보이는 큰 TV와 진공관 오디오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주방에는 장식장과 같은 느낌의 6인용 커다란 식탁과 양문형 냉장고, 비싸 보이는 오븐과 밥솥, 심지어 커피머신에 와인 냉장고까지 있었다.

"와인 안 좋아한다니까"

나는 눈앞에 펼쳐진 이 광경에 어이가 없었지만, 그와 동시에 나머지 공간들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기 시작했다. 1층 안방에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큰 침대가 놓여 있었다. 한번 누워보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한쪽 벽에는 호텔에나 어울릴 듯한 근사한 스탠드 조명과 1인용 리클라이너 의자까지 있었다. 나머지 벽에는 어이없게도 하준이 형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걸려 있었다.

"아. 뭐야!"

안방과 연결되어 있는 드레스 룸에는 꽤 많은 옷이 걸려 있었는데, 딱 봐도 하준이 형이 자신의 옷 중에서 그나마 내가 입을 수 있는 옷들만 골라서 가져다준 티가 났다. 대부분 무난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색도 보편적인 것들이었다. 최신 유행의 디자인들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찌나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지 한쪽에 옮겨놓은 행거와 걸려있는 내 옷들이 더 초라해 보였다.

방을 나와서 2층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사는 공간에 그림이라는 것이 걸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딘지 모를 근사한 바다를 그려놓은 그림이 계단 전면에 걸려 있었고, 2층 계단 끝에는 내가 형체를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난해한 조각도 하나 놓여 있었다.

원래 내가 쓰던 침실은 근사한 서재가 되어 있었다. 문을 기준으로 천장까지 꽉 차는 책장이 양쪽으로 채워져 있었고, 다양한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기본적으로 음악에 관한 책들부터, 다양한 문학서적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원서들도 꽂혀있었다. 책들이 새 거인 걸로 봐서 그냥 사다만 놓은 것도 많은 것 같았다.

"역시 허세가 있어!"

가운데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근사한 책상이 놓여있었다. 가구들은 전체적으로 거실의 장식장과 같은 엔틱스러운 느낌들이 났는데, 조금 올드해 보이기는 해도 워낙 고급스러워서 촌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의자는 브라운색의 가죽으로 되어있었는데, 어찌나 고급스럽고 편안해 보이는지 앉자마자 내가 무지 높은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서재에서도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오래된 나의 노트북이 참 초라해 보였다.

"노트북은 원래 하나 사려고 했으니까"

원래 드레스 룸이던 곳은 더 대박이었다. 창가에는 무거워 보이는 암막커튼이 쳐 있었고,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와 있었다. 스크린 옆으로는 내 가슴까지 오는 커다란 스피커가 있었는데, 마치 나에게 보란 듯이 트러스트의 공연 실황 영상이 빵빵한 음질과 함께 틀어져 있었다.

"우와! 이 음질은 또.."

스크린 앞에는 원목으로 된 소파 테이블이 있었고, 침실에 있는 것보다 더 커다랗고 편안해 보이는 리클라이너 의자 2개가 놓여 있었다. 소파 테이블에는 아래쪽에 PC와 콘솔게임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리클라이너 의자 옆에 작은 테이블에는 조이스틱과 마우스가 놓여있었다.

"역시 연예인은 노는 것도 다르구나"

나도 모르게 그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2층 테라스로 나가보니 여기는 또 캠핑장이 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캠핑용 의자와 테이블, 해먹이 설치되어 있었고, 작은 화덕도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제일 놀랐던 것은 그 테라스 구석에 작은 개집이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한 나는 조심스럽게 개집 안을 들여다봤는데, 갑자기 뛰어나온 작은 포메라니안 한 마리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야!"

이제 한 4~5개월 되어 보이는 그 강아지는 배가 고픈지 내 다리로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며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개집 앞에는 내 밥그릇보다 비싸 보이는 개밥그릇이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자 캠핑의자 옆에 있는 공간박스에 강아지 사료와 간식이 있었다.

"무슨 사료에도 왕관이 그려져 있냐?"

왕관까지 그려져 있는 그 강아지 사료에 다행히 한국말로 안내 문구가 쓰여있었다. 안내 문구에 따라 종이컵으로 사료를 주자마자 그 강아지는 후딱 먹어치웠다. 간식까지 먹이다 보니 정말 다이내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진짜 다양하다."

그때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인터폰 소리에 당황해서 강아지를 든 채 급하게 거실로 뛰어내려 갔다.

"여보세요?"

"넘어와!"

"예?"

"넘어오라고. 놀랐잖아. 설명해줄게"

옆 동으로 가기 전에 뒤돌아서 집 전체를 바라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히 휑하던 아침과는 전혀 다른 근사한 집이 되어있었고, 뭔가 모르게 좀 오래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가 다 고급스럽고 클래식해서 나름 느낌이 좋았다. 마치 오래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 모든 걸 그냥 받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가서 정중하게 사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옆 동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게 강아지는 내손에 계속 들려 있었다.

"주는 거 아냐"

"예?"

거절의 말을 준비하고 간 나에게 하준이 형은 또 새로운 반전을 이야기했다.

"내가 전에 살던 집에 있던 짐들이야. 전에 얘기했듯이 여기 대표 놈이 지맘대로 짐을 세팅해놓는 바람에 다 이삿짐센터에 맡겨 놓고 있었거든. 어차피 비어있는 집, 가구도 사려고 했잖아.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써"

"아.. 예..."

나에게 주는 거라면 부담스럽다고 할 텐데, 맡겨 놓는 거라고 말을 하니 내가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다만 상황이 내가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하준이 형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 그런데 다 비싸 보이는 거라서 제가 쓰다가 고장이라도 내면..."

"다 좀 오래된 물건들이라 그럴 수는 있는데,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물어내라고는 안 할 테니까. 대신 혹시라고 고장 나고 부서지고 하면 그냥 버리지 말고 나한테 얘기만 좀 해줘."

"옷도 가져다 놓으셨던데.."

"야.. 내가 기가 막히더라. 아니 어떻게 사람이 4계절 옷을 다해서 20벌이 안 되냐?"

나는 패션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마음에 드는 옷을 사면 주로 그 옷만 입고 다니는 편이었다. 그러다 그 옷이 낡으면 버리고 그 옷이랑 비슷한 옷을 또 사서 입고 다녔다. 그래서 항상 비슷한 옷들만 입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입고 있는 옷만 남겨두고 잘 안 입는 옷은 버리는 미니멀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마도 20벌이나 되는 것은 몇 번의 연애가 남겨준 선물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거 내가 드라마 한 적 있는데, 그때 평범한 직장인 역이었거든. 촬영할 때, 다 한 번씩만 입은 옷들이야. 그게 10년 전 드라마여도 지금 네가 입는 옷보다는 나을 거야. 부담 갖지 말고 입어, 사이즈는 내가 코디한테 대충 줄여오라고 해서 그냥 입으면 돼.

우와.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것도 10년 전 드라마 주인공. 시간여행 중인 건가? 옷에 대한 것도 나는 딱히 반응하기 어려웠다. 옷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 옷이 딱히 맘에 안 드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직히 드레스룸을 봤을 때, 이제 쇼핑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 그런데 얘는 뭐예요?"

"아 혹시 개털 알레르기 있고 그런 거는 아니지?"

"예. 그건 아닌데.."

"그럼 좀 길러주라. 이건 부탁 좀 할게. 내가 동물이랑 잘 못살아. 너 출근한 동안 밥이나 똥 치우는 건 우리 애들 시켜서 관리해줄 테니까. 어?"

"예? 아니 기르지도 않을 개를 사신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누가 그냥 좀 맡겨놓고 간 거야. 그런데 버릴 수도 없고 하니까. 좀 부탁할게. 대신 사료든 병원비든 다 내가 책임진다. 걱정 말고."

나는 내가 이웃사촌이 아니라 가족이 된 기분이었다. 하루 만에 하준이 형은 자신이 살던 집의 모든 짐을 우리 집에 가져다 두었고, 나를 10년 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강아지의 부모 노릇까지 부탁했다. 솔직히 이 모든 상황에 화를 내야 하는 건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거절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어물쩡거리고 있는 동안 하준이 형은 쿨하게 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호야! 우선 밥부터 먹자. 너 밥 안 먹었지? 우리 아줌마가 오늘 쌀국수를 만들어 놓고 갔더라고. 쌀국수에 소맥이나 말아서 한잔 하자!"

나는 문득 이것도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사기로 한 가구. 나는 분명히 중고나라를 이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품질 좋은 중고를 무료로 임대하게 된 것이고, 심지어 덤으로 옷도 생겼다. 강아지야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타운하우스로 이사 올 때 개를 한 마리 길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아 대신 거실의 사진은 가져가요! 그게 뭐예요!"


"하하하 오케이! 그건 나도 인정!"


내가 자는 침실에 다른 사람 사진만 걸려있지 않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지. 내가 마음먹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나에게 좋은 일 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쌀국수 좋아해요! 고수만 없으면 돼요."

"야 무슨 소리야! 쌀국수는 무조건 고수지! 고수를 넣어야 진짜 쌀국수야! "

처음 맡아보는 고수의 향이 어색하고 이상했다. 나는 고수가 향신채라는 말만 듣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고수가 잔뜩 들어간 쌀국수를 앞에 두고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이 음식이 과연 내 입에 맞을까? 그때 문득 앞에 있는 하준이 형이 내 삶의 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색다른 존재, 없다고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던 존재가 문득 내 앞에 놓인 것이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딱히 좋고 싫음도 없다. 다만 그저 나의 선입견이 나도 모를 고정관념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 분명 이 모든 새로움이 싫지는 않았다. 막상 눈앞에 놓여있는 이 수북한 고수처럼 말이다. 나는 그냥 꿀떡 삼켜보기로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타운하우스_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