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이 형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뛰어 들어와서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힐 만큼 격렬하게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상황 자체가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준이 형의 눈은 실핏줄이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고, 나는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 이 새끼"
하준이 형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멱살을 잡고 나를 노려보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나보다 키가 한참이나 큰 하준이 형이 있는 힘껏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까치발로 겨우 땅에 닿아 서있었고, 점점 숨이 막혀서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그만 좀 해!"
점점 숨이 막혀와서 힘들어져 가고 있을 때, 집안을 가득 채우는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하준이 형에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하준이 형의 힘은 좀 빠졌고, 나는 겨우 숨통이 트였다. 다만, 하준이 형은 내 멱살을 놓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하준이 형의 눈빛은 여전히 충혈돼있었지만, 묘하게 슬픈 눈빛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너... 너..."
"그만해"
그녀가 세 번째 말하자 하준이 형은 내 멱살을 놨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된 상태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게... 무슨 상황이야... 어? 니들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형님 그게요... 그러니까..."
"제가 말할게요"
이 상황에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나는 최대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기 위해 입을 뗐지만, 그녀에 의해 저지되었다. 하준이 형과 그녀는 나를 전혀 바라보지 않은 채 마주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 여기 오면 안 돼?"
"아니"
"그럼 나 여기서 밥 먹으면 안 돼?"
"아니"
"그런데 왜 그래?"
"그게... 네가.. 저 자식이랑"
"나 밥 차려 줬어"
"....."
"찌개도 끓여주고, 밥도 담아주고, 계란 프라이도 예쁘게 해 주고"
"...."
"냉장고에 있는 주스도 예쁘게 잔에 담아주는데.."
"...."
"아빠 같더라..."
아빠? 아빠라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녀와 내가 나이 차이가 많은 건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하준이 형도 아닌 내가 아빠 같았다니..
"아빠 같았어. 밥도 차려주고, 주스도 컵에 따라주고, 내 얘기도 들어주고, 꼰대 같은 충고도 해주고, 그런데 그게 다야. 그니까 오버하지 마."
"야.. 너"
그녀가 말하는 동안 하준이 형은 단 한마디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나 역시 숨소리마저 죽이고, 가구처럼 서 있었을 뿐이었다. 길게만 느껴진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자신의 가방과 옷을 챙겨서 현관으로 향했다.
"오늘 맛있었어요. 고마웠고요."
"아... 예..."
"근데 이름이 뭐예요?"
"아... 그게..."
나는 나도 모르게 하준이 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챈 그녀는 다그치지 않았다.
"저는 하루예요, 이하루. 다음에 또 봐요."
그녀는 그렇게 이 집에서 사라졌고, 그곳에 멍하게 서 있는 하준이 형과 남겨진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멍하게 서 있던 하준이 형은 넋이 나간 듯, 소파에 가서 앉았다. 나도 무언가 이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몸은 괜찮아?"
정신을 좀 차린 하준형이 나에게 물었다.
"아... 예.."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 괜히 흥분했어."
"아.. 아니에요."
조금 차분해진 하준이 형은 뭔가 슬퍼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둘이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쉽게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루."
"예?"
"하루. 밥 챙겨줘서 고마워"
"아.. 아니에요. 그냥. 배고프다고 해서."
"혹시 나 없는데 하루가 와서 또 배고프다고 하면 그때도 부탁해."
"예? 아... 예... 그럼요"
그때 갑자기 현관문으로 민석이가 들어왔다. 아마도 그녀가 나갈 때 문을 닫지 않고 나간 것 같다.
"형님! 뭐 하세요? 다들 찾고 난리예요!"
"야! 너는 언제 왔냐?"
"아. 아까. 형님 뭐하세요? 빨리 가시죠!"
"그래. 가자. 오늘 죽도록 마셔 보자!"
갑자기 기운을 업시킨 하준이 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냥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야! 넌 뭐해?. 가자!"
"어... 어..."
그날은 유난히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은 오늘 분위기 탔다며 온갖 술은 다 꺼내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내 집이지만 이렇게 많은 술이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주말도 아닌 평일에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그 술자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하준이 형은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술을 마셨고, 평소와는 다른 점은 그저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3시가 넘어서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하준이 형은 기다란 소파에 엎드려 잠들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미나누나와 나만 거실에 남아 있었다.
"술 잘 마시네?"
"아니에요. 전 늦게 마시기 시작했잖아요."
"말 편하게 하라니까. 이제 다 친구지. 뭐."
"아.. 전 아직 다들 연예인들 같아요. 아직도 신기하고, "
"연예인이 별거야? 어차피 다 같은 사람이야."
"예. 조금 더 편해지면요."
"신기해"
"뭐가요?"
"강하준"
"예?"
"원래 예민하고 까칠하기로 유명하거든. 물론 옛날 얘기긴 해도. 나이 들고 좀 편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너처럼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아. 그래요?"
"어쩌면...."
"예?"
"어쩌면 너한테 자기 과거를 보는지도 모르지."
"저한테요?"
"응. 강하준 의외로 평범했거든.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어. 학교 다니고, 맨날 수업 째고 술 마시고, 잔디밭에서 기타나 치고, 어느 학교나 있던 평범하던 게으른 대학생이었는데, 우연히 축제 공연에서 부른 자작곡이 빵 뜬 거지. 그때까지는 지가 특별한지도 모르고 살던 놈이야.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스타가 되니까. 정말 모든 게 달라져 버린 거고."
"에이.. 그래도 저 외모가 그렇게 평범할 수는 없잖아요."
"너 나 처음 봤을 때 기억나?"
"예? 아.. 그럼요."
"너 나한테 말도 못 걸었어. 놀라서. 악수하자는데 손을 부들부들 떨지 않나. 내가 접시 하나 달라니까 깨 먹지 않나."
"아.. 그랬죠?"
"원래 그래. 우리가. TV에서만 보고, 잘 꾸며진 모습만 보니까. 환상이라는 게 생겨서 그렇지. 아무리 특별해 보이는 사람도 매일 옆에서 자주 보다 보면 그냥 평범해. 강하준도 그랬겠지. 물론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옷도 잘 입고, 노래도 잘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냥 친구지. 뭐. 다 그렇게 살았던 거야. 지도 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고."
"재수 없네요"
"그치? 나랑은 달라. 나는 알았거든. 나 예쁜 거. 원래 꿈도 미스코리아였어. 크면서 점점 더 예뻐지길래 당연히 연예인이 될 줄 알았고, 근데 쟤는 그걸 모른 거야."
"근데 하준이 형이 나이 더 많지 않아요?"
"야! 자는데 어때. 여튼. 그래서 네가 지 과거 같은 거 일지도 몰라. 내가 보기에는 그래. 나 이 집 처음 왔을 때 제일 놀랐던 게 뭔 줄 알아? 구조는 좀 달라도 내가 애 처음 집 샀다고 집들이 갔을 때랑 똑같은 거야. 인테리어랑 분위기가 완전. 그때가 언젠데. 저 꽃병도 그때 내가 사준 거라고."
"처음 집들이요?"
"그래. 지가 처음 돈 벌어서 결혼한다고 잔뜩 꾸몄던 첫 집.
강하준은 아직도 그 집에 사나 봐. 그 시절에 뭘 두고 왔는지 모르지만, 못 나오고 있는 건 확실해. 얼마 살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금방 이혼해 버릴 줄 알았으면... 아 됐다."
미나누나는 곧 피곤하다며 자연스럽게 내 침실로 올라가서 잠이 들었다. 나는 거실에 나뒹구는 술병이며, 쓰레기들을 좀 정리하고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정리하다가 문득 거실 풍경 전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게 하준이 형의 첫 집이었구나."
뭔지는 모르지만 하준이 형이 그 시절에 갇혀있는 거라면, 그동안의 행동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버리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짐들. 이 집으로 옮겨 놓고 매일 찾아왔던 것들. 심지어 오랜 된 친구들을 자꾸 부르는 것까지. 하준이 형은 내 집을 통해서 혼자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갑자기 그 과거 속에 있는 하준이 형이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