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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08. 2020

타운하우스_10

이번엔 소설이다_장편

 술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내가 잘 수 있는 공간을 찾아서 잠자리에 든 시간은 4시가 넘어서였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어젯밤에 겪었던 다양한 일들과 내 머릿속을 맴도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내가 잠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출근하려면 빨리 잠들어야 하는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문득 서랍 안에 트러스트의 CD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물론 그저 음악이 듣고 싶었다면 핸드폰으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겠지만, 왠지 내가 처음 듣던 시절의 느낌으로 들어야만 내가 궁금한 것들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서재로 가서 서랍에 있는 트러스트의 CD들을 꺼냈다.

"이게 아직 될까?"

 CD와 함께 있던 오래된 CDP를 함께 꺼내서 열어보았다. 먼지가 좀 쌓여 있기는 하지만 왠지 될 것 같았다. 서랍에서 건전지를 꺼내 CDP에 넣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불이 들어왔다. 다행히 작동이 된다. 나는 트러스트의 1집 C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아무도 없는 푸르른 새벽.
거리에 나와
누군지 모르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난 기다리고 있지만
이미 네가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수없이 들었던 트러스트 1집의 인트로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은 몽환적인 음악에 낮게 깔리는 하준이 형의 목소리는 조금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내레이션과 잘 어울렸다. 1분도 안 되는 인트로가 끝나고 일렉기타 사운드로 시작하는 2번 트랙의 노래가 나왔다.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듯
모르는 길을 하루 종일 헤매다
노을 지는 작은 언덕길.
낮은 계단에 앉아
너를 기다린 건가.

조금씩 커져가는 너의 모습.
나에게 다가오는 너의 발걸음.
길게 늘어진 그림자만큼
커버린 네가 나에게 오네

Nothing's for sure.
나의 모든 삶은
Nothing's for sure.
모두 혼란스러워
Nothing's for sure.
오직 너만이 오직 나에게

Nothing's for sure.
난 항상 흔들리고
Nothing's for sure.
난 언제나 불안해
Nothing's for sure.
내 곁에 머물러줘
Nothing's for sure.
Nothing's for sure.

술에 취해 밤거릴 거닐듯
파도 타듯 세상 속을 아슬아슬
새벽이 지나가는 거리.
가로수에 등지고 기대
너를 또 기다리나
 
조금씩 선명해지는 네 모습.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
어느새 꽉 차 버린 달처럼
차오른 네가 나에게 오네

Nothing's for sure.
나의 모든 삶은
Nothing's for sure.
모두 혼란스러워
Nothing's for sure.
오직 너만이 오직 나에게

Nothing's for sure.
난 항상 흔들리고
Nothing's for sure.
난 언제나 불안해
Nothing's for sure.
내 곁에 머물러줘
Nothing's for sure.
Nothing's for sure.


 1집 타이틀곡 "Nothing's for sure."다. 한 1,000번쯤은 들었던 노래고, 지금도 라디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노래다.  이미나가 말했던 하준이 형이 대학 축제 때 불렀다가 유명해진 노래다. 항상 불안하기만 한 20대 초반의 하준이 형이 당시의 여자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느꼈던 감정을 노래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오랜만에 트러스트 1집을 인트로부터 마지막 곡까지 다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CD의 가사집을 읽게 되었는데, 지금 보기에는 촌스럽고 허세스러운 사진과 문구들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고 담백한 20대 초반의 하준이 형의 고민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강하준 : "Special Thanks to DJ"

 기억이 떠올랐다. 단기간에 100만 장이 넘게 팔린 이 앨범에 아주 시크하게 적혀있던 한 줄. 다른 멤버들은 모두 데뷔를 위해 도와준 스텝들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하준이 형은 저 한 줄이 다였다.  당시 수많은 언론들도 궁금해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DJ. 누군가는  트러스트의 노래 좋아하던 한 DJ이가 줄기차게 라디오에서 틀어주었기 때문에 앨범이 나올 수 있게 된 거라서 그  DJ를 향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고, 그냥 라디오 DJ와 열애 중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그 당시 신인배우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이미나도 잠깐 라디어 DJ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준이 형과 스캔들이 났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원체 짧게 했었고, 자신이 직접 아니라고 해명까지 바람에 그냥 지나갔던 것으로 기억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각종 인터뷰에서 리포터들과 기자들이 하준이 형에게 DJ에 대한 질문을 한 것 같지만, 하준이 형은 모두 웃으며 넘길 뿐 대답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사이에 하준이 형은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했고, 비밀스럽게 결혼식을 마친 후에 혼인신고 소식만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당대 최고의 신예스타의 갑작스러운 결혼과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들려온 이혼 소식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이혼 기사가 나온 지 3개월 만에 발매된 트러스트 2집에는 슬픔과 후회만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두 눈이
나의 밤을 말하지
밤새 네 생각에
눈물 흘리고
티슈 한 통을 다 쓰고서야
잠이 들어서
네가 없는 지금 나의 방은
하얗게 됐어

아무리 버려도 다시 떠올라
날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냥 하염없이
이 자리에 울고만 있어

아무리 비워도 다시 차올라
날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냥 하염없이
이 자리에 멍하게 있어

점점 야위어 가는 내 볼이
내 하루를 말하지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겨우 물 한 병을 마시고야
잠이 들어서
네가 없는 지금 나의 방은
텅텅 비었어

아무리 버려도 다시 떠올라
날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냥 하염없이
이 자리에 울고만 있어

아무리 비워도 다시 차올라
날 더 아프고 힘들게 만들어
얼마나 남았는지 그냥 하염없이
이 자리에 멍하게 있어

2집 CD를 찾아 "티슈"까지 듣고 나니 하준이 형이 뭔가 짠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2집도 마지막 트랙까지 모두 듣고 싶었지만, 슬슬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티슈까지만 듣고 CDP를 끄면서 2집의 가사집의 마지막 장을 펴봤다.

강하준 : "Special Thanks to DJ"

 여전히 같은 문장이 남겨져 있었다. 2집 역시 150만 장을 넘게 팔린 대히트 앨범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도 DJ의 존재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준이 형은 2집으로 활동하는 내내 아무 말없이 노래만 했었고, 인터뷰도 예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식이 형의 말에 따르면 2집 활동 때는 콘서트에서조차 말없이 노래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팬들도 그 기간에는 암묵적으로 말을 걸지도 사인을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나는 출근을 하면서 라디오 대신 트러스트 2집을 마저 들었다. 다행히 내 차에는 CDP가 있었고, 이번 기회에 서랍에 있던 트러스트 앨범들을 차로 옮겨 놓게 되었다. 2집을 다 들었을 때쯤 나는 회사에 도착했고, 어제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마치 무언가에 홀려 있듯이 무표정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쯤 문득 민석이를 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야?""

"나?"

"어."

"너네 집"

"뭐?"

"미나 누나랑 해장해"

"출근 안 했냐?"

"형한테 전화했지"

 형들이 하는 회사에서 일하는 이놈은 출퇴근이 정말 지 맘대로 였다. 가끔 이런 놈이랑 일하는 형들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형들 말에 따르면 그래도 지 밥벌이는 확실히 하고 있어서 그냥 둔다고 했다. 집 정리는 대충 했지만, 자고 있던 사람들을 굳이 깨우지 않고 나왔는데, 아직도 내 집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나 지금 가니까 기다려"

"어. 안 그래도 너 오면 2차 하자고 누나가 술 사 왔어!"

 어쩌면 잘 됐다고 생각했다. 하준이 형에 대해 궁금해진 상황에서 하준이 형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하고 차에 탔다. 자연스럽게 트러스트 3집을 틀었는데, 퇴근 시간과 어울리는 외로움과 그리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픔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아.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다시 자라나.
아무 일도 아닌 듯 모르는 척
잊은 듯 살아보려 해도
아픔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아.

I wish I could be anesthetized.
My wounds, my pain, my memories, my heart.
I'd rather not feel anything.
So no one can hurt me.

누구나 자기만의 아픔은 안고 살아.
아무리 깊은 곳에 넣어두었어도
한순간 불쑥 나타나
담담하게 별거 아닌 것처럼
지운 듯 살아보려 해도
아픔은 결국 내게서 떠나지 않아.

I wish I could be anesthetized.
My wounds, my pain, my memories, my heart.
I'd rather not feel anything.
So no one can hurt me.

내 기억에 끝까지 남은 모든 아픔을.
나조차 모르게 감춰둘 수 있다면,
언젠가 다시 또 깨어날지 몰라도
오늘 밤, 이 순간. 모든 걸 감출 수만 있다면

I wish I could be anesthetized.
My wounds, my pain, my memories, my heart.
I'd rather not feel anything.
So no one can hurt me.

감출 수 있다면, 숨길 수 있다면,
잠시라도 잊혀질 수 있다면,
아무 일 아닌 듯, 아무 일 없는 듯
잠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I wish I could be anesthetized.
My wounds, my pain, my memories, my heart.
I'd rather not feel anything.
So no one can hurt me.

난 트러스트 3집 타이틀 곡 "Anesthesia"를 3번째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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