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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an 26. 2021

정인이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정인이에 대한 글은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우선 정인이의 이름만 들어도 계속 눈물이 나는 아내가 또 이 글을 읽고 울게 될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정인이를 그저 내가 글을 쓰기 위한 소재로 여기는 것으로 보일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기처럼 글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 감정과 느낌을 잘 담아두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혹시라도 내가 정인이 같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올 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게 된 이 글도 나는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 했다. 내가 정인이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 저장되어 있는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결국에는 그냥 정리되지 않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그런 복잡한 글이라도  써보기로 했다. 그게 지금 내 마음과 심정이니.

 아내는 정인이의 이름만 들어도, 기사 하나만 읽어도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 의도적으로 정인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나만 조금 봤고, 아내에게는 말해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어디선가 정인이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고, 우리는 결국 하루에 한두 번은 정인이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울게 된다. 나 역시도 가슴이 아파 프로그램을 끝까지 다 보지 못했고, 정인이가 어린이집에서 혼자 앉아 있는 사진은 지금도 너무나 가슴이 아파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이고, 잘 돌아다니는 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멍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진짜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어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한 평가 중에서 "한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안전한 나라다. 하지만 그 장점은 범죄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범죄자들의 인권도 보장이 아주 잘되어 있다는 뜻이다. 간혹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사람들이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를 받으며, 많은 배려와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솔직히 좀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낸 세금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니까 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자거나 정인이 가해자를 더 강하게 처벌하자는 뜻이 아니다. 범죄자에게도 적용되는 그 대단한 인권이! 가족 안에서는 지켜지지 못하는가가 화가 난다.

"가족 간에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해가 좀 있었습니다."

 수많은 가정 폭력은 집안 사정이라는 이름으로 모르는 척을 강요받아 왔다. 가정사는 쉽게 끼어드는 것이 아니다. 괜히 분란만 더 커진다라는 생각들이 자꾸 가해자들에게 가족이라는 방패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정말 어렵게 용기 내서 한 신고와 도움의 요청도 가해자들의 "가족문제입니다."라는 말로 가해자가 도망 나온 피해자를 그 울타리 안으로 다시 데리고 들어 갈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범죄자들도 보장받는 그 인권이 현관문만 통과하면 무시되고 숨겨 버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나의 생각이 아주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고, 가정 내에까지 공권력이 강하게 적용될 경우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정말 사소한 다툼으로도 신고가 남발이 될 수도 있고, 이혼이나 재산 때문에 누군가를 음해하려는 계획에 이런 신고가 악용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숨겨진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직접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아이가 딱 정인이 만한 또래다. 우리 아이는 요즘 한참 엄살을 피운다. 걸어가다 벽에 조금만 쿵을 해도 아프다며, 호~해달라며 우리에게 안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신의 아픔을 우리에게 표현한다. 우리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프다 말 한마디 못한 정인이가 너무 생각이 난다.  

 방송에서 정인이 가해자가 사람들의 위협에 대비하여 경찰들에게 신변보호를 받는 모습을 봤다. 화가 나지만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도 없는 가해자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래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정인이의 인권은 왜 보호받지 못했을까. 그런데 정인이의 인권은 왜 보호받지 못했을까. 그런데 정인이의 인권은 왜 보호받지 못했을까. 그게 너무 화가 날 뿐이다.  

 정인이가 떠난 후에 그래도 참 많은 것들이 바뀐다고 들었다. 국회에서는 더욱 강력한 법들이 생겨나고, 경찰에서는 새로운 기구가 생기고 무엇인가를 강화한다고 했던 것 같다. 제발 무엇이든지 상관없으니 이제는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는데, 그곳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이라고 해서 밖에서만 서성대는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잊어줄 수 있겠니


잊어줄 수 있겠니 제발
아주 작은 점하나도
남김없이
이전은 없었던 것처럼
지금이 시작인 것처럼
다 지워줄 수 있겠니 제발

아무것도 몰랐으면 좋겠어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어
너의 머릿속에
너의 마음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만 기억하면 안 될까?
우리만 슬퍼하면 안 될까?
잊지 않고 오래오래
아물지 않고 오래오래
우리만 아파하면 안 될까?

잊어줄 수 있겠니 제발
아주 작은 점하나도
남김없이
이전은 없었던 것처럼
지금이 시작인 것처럼
다 지워줄 수 있겠니 제발

우리가 기억하면 안 될까?
우리만 슬퍼하면 안 될까?
잊지 않고 오래오래
묻지 않고 오래오래
우리만 아파하면 안 될까?

네 이름만으로 가슴이 아파
생각만 나도 눈물이 흘러
어쩌면 너무 아파 잊은 척 살지 몰라도
기억할게 우리가
아파할게 우리가
슬퍼할게 우리가

그러니까 제발
잊어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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