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Apr 06. 2021

"내가 할 거야"의 시작

 우리 부부는 아이의 예전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집에서 가끔 동영상을 볼 때 사용하는 태블릿 PC에도 아이의 예전 사진들이 슬라이드로 돌아가고 있고, 수시로 휴대폰의 지난 사진들을 돌려보며 예전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곤 한다. 특히, 나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항상 아이 사진으로 해놓는데, 자주 바꾸다 보니 지나간 프로필 사진만 쭉 봐도 아이의 성장 앨범을 보는 기분이 들곤 한다.

아이들은 참 빨리도 자란다. 지나 간 사진들을 보다 보면 처음으로 뒤집기를 하던 날, 처음으로 잡고 일어서던 날, 엄마 아빠를 부르기 시작한 날. 우리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임팩트 있던 순간들이 아이의 성장의 과정들을 기억하게 해 준다.

그리고 이제 또 한 단계가 다가온 것 같다. 아이에게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한 취향의 문제부터 시작해서 무엇인가를 스스로 해내겠다는 의지도 생겼는데,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고집이 되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먹는 것에만 있던 취향이 음악으로도 이어졌다. 예전에는 어떤 노래든지 틀어주면 항상 좋아하고 즐거워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노래가 명확해서 다른 노래를 틀면 손사래를 치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심지어 밤에 자러 들어가서 불러주는 자장가마저도 듣고 싶은 노래가 따로 있다. 아직 말을 잘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주로 스무고개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보통은 열곡 이상을 불러봐야만 아이가 원하는 노래를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잠들기 전까지 그냥 투정을 부리는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줬을 때 확실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취향이 생긴 것이 확실하다.

 거기에 자신이 하겠다는 의지들이 생겼다. 시작은 밥을 먹을 때 숟가락질부터였는데, 그 이후에는 아빠가 먹여주는 젓가락도 자신이 들겠다고 하고, 반찬도 자기가 먹겠다고 했다. 물도 빨대컵이 아닌 그냥 컵으로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쏟기도 하고, 음식을 흘리는 건 이제 말썽 축에도 못 낀다. 그렇게 시작한 의지는 기저귀를 자기가 입겠다고도 하고, 바지도 자기가 입겠다고 한다. 물론, 아직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로 아이는 앞쪽만 손으로 잡고 올리려고 하고, 아빠나 엄마가 뒤에서 수습해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양치질도 자기가 하겠다고 10분씩 칫솔을 들고 돌아가니다가 결국은 크게 한번 울고 나서야 마치곤 하고, 손을 씻는 것이나 세수를 하는 것에도 "내가 할 거야"는 계속된다.  이런 "내가 할 거야"의 가장 절정은 얼마 전 산책에서였다. 아이와 함께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는데, 아이는 유아용 자동차를 타고 나갔다. 보통은 자동차에 타서 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와 인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가 갑자기 잘 타고 가다가 내리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은 아빠가 들어서 위에서 태워주고 들어서 꺼내 주고는 했는데, 자기 스스로 문을 열고 내리고 다시 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하겠다고 하니 뿌듯하기는 했지만 보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아이는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면서도 자기 스스로 해내려고 했고, 심지어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내가 끌어주던 손잡이를 잡고서 자기가 밀고 가겠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아이가 방향 조절을 하지는 못해서 뒤에서 쫒아가며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분명히 아이가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면, 부모는 곤란한 상황이 더 많아진다. 좁은 산책로에 한가운데서 자기가 자동차를 끌고 가겠다는 아이 때문에 뒤에서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연신 사과를 하기도 하고, 운전 중에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가 아니라고 생떼를 피우는 아이 때문에 수시로 선곡을 바꾸기도 한다. (물론 핸들 리모컨을 통해 최대한 안전하게 하려고는 한다.) 밥을 먹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거나, 옷을 입히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주 기본 중에 기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아이가  커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와 무엇인가 소통이 된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다.

 아이는 참 빠르게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의 성장 속도만큼 빠르게 부모가 되어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고집을 피우는 아이가 야속하기도 하고, 가끔은 콩하고 굴밤을 때려주고 싶기도 하다. 가끔은 생떼를 피는 아이 앞에서 우리가 펑펑 울고 싶은 상황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보다 훨씬 큰 행복들을 우리에게 준다. 원하는 노래를 불러주었을 때, 정말 신나서 소리를 지르는 리액션이나,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내고서는 씩 웃어주는 살인미소,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모습은 그 모든 고충을 지워낼 만큼 짜릿하고 자극적이다.

 요즘 내가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어?"

"그러게"

"내가 평생 잘할게"

 아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느낄 때마다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속마음이다. 아내는 정말 뼈를 깎아 아이를 낳은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아픈 곳도 많고, 체력도 많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아이가 더 아내에게 매달릴 때마다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지곤 한다. 그렇게 뼈를 깎아 아이를 낳아 고생 고생하며 아이와 살고 있지만, 아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한다.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저 아이를 낳은 일 같아."

아무리 힘들어도 저 아이의 존재는 우리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다. 저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도 있다. 그래서 나는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도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 아내와 결혼해서 이 가정을 꾸린 일이다.라고.       

작가의 이전글 정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