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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an 13. 2021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아이 수신호 번역가

 아이가 또 부쩍 자랐다. 한동안 밤잠을 설치며 떼를 좀 쓰더니 갑자기 먹는 양이 확 늘었고, 어느 순간 키도 몸무게도 쑥 늘어 있었다. 그리고 더 신기한 것은 아이의 인지능력이 월등하게 높아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밥을 먹을 때 자신가 스스로 먹겠다는 고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본인이 좋아하는 반찬이 명확해졌다. 부족하면 더 달라는 몸짓도 하고, 싫으면 싫다는 표현도 정확하게 한다. 그래서 아직은 말을 못 하는데도 불구하고 의사소통 비슷한 것이 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재미있는 것은 바로 배고픔에 대한 표현이다. 주말에 과수원에 놀러 갔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무엇인가 짜증을 부리는 것이 느껴졌다. 뭘 원하는지를 정확히는 몰라서 두리번거리다가 때가 되어서 밥을 먹을지를 물어봤다.

"우리 아가 맘마 먹을까?"

"맘마!!!"

 그 순간 아이는 큰소리로 맘마라는 단어를 외쳤고, 아이가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아침을 아주 잘 먹었지만, 점심을 잘 안 먹었던 날이어서 다른 날보다 배가 더 고팠던 것 같다. 마음이 급해진 아내는 급하게 이것저것 밥을 차려줬고, 내가 아이를 의자에 앉히자마자, 아이는 그야말로 폭풍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먹는 양도 많이 늘어서 잘 먹는 날은 엄마보다도 많이 먹겠다 싶은 날도 있기 때문에 아이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밥을 정말 눈 감추듯이 먹어버렸다.

"우리 이쁜 아기, 다음부터 배가 고프면 엄마 아빠한테 배고프다고 말해줘야 해."

아내는 아이에게 차분히 알려주며 배가 고프면 두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라고 알려줬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아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배가 고프면 두 손으로 배를 만지기 시작했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고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지고 가서 먹고 싶다는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소통은 그것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안기고 싶을 때는 다른 아이들처럼 두 손을 벌려서 달려오는데, 내가 누워있을 때 달려와서 목을 감싸는 것은 앉아서 안아달라는 말이다. 또한 앉아서 안아도 다리로 내 배를 툭툭 차기도 하는데 그것은 일어나라는 말이다.

그래서 어느새 아이와 있다 보면 다는 아니어도 아이가 원하는 것을 거의 다 알아차리는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물론 이런 시기도 길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단어로 표현하는 것들도 있고, 본인 스스로 해나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고 중요한 것은 점점 더 아이의 생각과 의견이 생기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방법으로 표현해나가고 성취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영재 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님에게서 자란 아이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0.1%에 속하는 영재였던 것 같았는데, 수학이랑 과학에 엄청난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부모들의 태도였다. 청각장애를 가진 엄마와 아빠는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에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 아빠의 육아 태도에 대한 평가도 엄마는 상위 1%, 아빠도 상위 10% 안에 드는 점수가 나왔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가 아이의 성장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봐 아이에게 더 많이 집중을 했고, 그런 관계가 아이에게 자신감과 더 큰 재능을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이의 의사표현이 재미있어서 아이에게 더 많은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더 많은 것들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조금 지나면 아이의 의사표현 중에는 내가 귀찮은 것도 있을 것이고,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게 아이와의 소통을 건성으로 대하거나 무시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력하고 싶다. 조금 더 아이에게 집중해줄 수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아이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정말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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