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Jun 22. 2021

아이와 제주도 일주일 살이

1주일의 어학연수

 지난 1주일 동안 우리는 제주도에 있었다. 이른 휴가를 준비하기도 했었지만, 때마침 부부가 모두 제주도에 업무가 생겨서 출장 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은 마침 시간이 되는 처제네 가족도 함께 갔는데, 이미 여러 번 함께 여행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불편하지도 마냥 설레지도 않는 익숙한 여행이었다.

 다만 여행을 앞두고 우리를 걱정하게 만든 것은 아이의 감기였다. 얼마 전부터 흐르기 시작한 콧물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좋아지지 않았고, 병원에 들려 여행기간 내내 먹을 약을 미리 받기는 했지만, 아내의 걱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래도 제주도는 공기가 좋아서 좋아질 겁니다."

 그나마 의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나름의 위로 삼아 우리는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가 더 어릴 때 제주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어려서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잠이 들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내 잠만 자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어느새 쑥 커버려서 내 품에 안겨는 있지만 단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아이는 내내 부산스럽게 놀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아이를 달래며, 그렇게 우리의 제주도 1주일 살이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제주도에 머물렀던 기간 동안 날씨는 비가 오기도 하고, 흐리기도 했다. 우리가 기대하던 파란 하늘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우리는 덜 덥게 그리고 덜 뜨겁게 나름의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제주도 일주일 살이를 돌아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추억보다도 아주 많이 커버린 아이의 성장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 아이는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해서, 길게는 아니어도 조금의 문장 정도만 만들 수 있는 단계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가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적어서 주로 낑낑대는 소리로 의사표현을 하곤 했다. 특히, 아직 호칭도 잘 부르지 못해서 여행 가기 전주에 겨우 이모라는 말을 배웠지만, 아직 이모부라는 말을 배우지는 못해서 이모부와 친하기는 해도 부르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첫날부터 아이는 이모부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아이의 말은 정말 엄청나게 늘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 말을 거의 따라 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알려준 적이 없는 말들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16개월이 빠른 언니를 쫒았다니며 하루 종일 종알거리고 있었고, 엄마나 아빠, 이모나 이모부 말고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거침없이 다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성장은 그저 말을 하고 표현하는 것으로 한정된 것이 아니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나, 새로운 환경에 관심을 보이는 것, 아이와 함께 간 아쿠아리움과 놀이동산, 마술 공연에서도, 예전과는 다르게 집중력 있게 참여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이는 여행을 하는 내내 순간순간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고, 하루하루 아침을 맞이 할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내뿜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여행이 가장 좋았던 것은 아이가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여행 내내 아주 잘 먹고, 아주 잘 잤다. 잘 먹고 잘 잤기 때문에 놀 때는 더 신나게 놀 수 있었고, 또 그렇게 신나게 놀아서 더 잘 자고 잘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컨디션은 우리의 걱정과는 전혀 다르게 거의 매일 너무 좋았고, 매 순간 신나 있었다. 심지어 그런 감정이 애교로 이어진 건지, 아니면 애교를 부리는 것도 더 성장한 건지, 평소보다 더 많은 애교로 어른들의 심장을 들어다 놨다 했다.

 심지어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 아빠와 붙어 있는 시간도 좋았을 텐데, 중간에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 자리를 비운 시간에도 투정을 부리지 않고 너무나 즐겁게 잘 놀았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수많은 자극과 자신을 바라봐주는 많은 존재들이 너무 신나고 좋아서 스스로 자신의 뇌를 각성시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우리는 몰라보게 달라진 아이의 성장에 모두 크게 놀라고 있었다.

"잠깐만"

 아이는 공항에서 모두가 가던 방향과 다른 쪽으로 걸어가며,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저 말과 행동에 우리는 정말 쓰러졌다. 숫자는 겨우 둘까지만 따라 하던 아이가 여섯과 일곱까지도 혼자 하게 되었고, 동요도 혼자 중얼거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크게 작게의 개념도 생겨서 이름을 작게 불러달라 노래를 크게 불러달라는 요구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 아가는 제주도에 1주일 동안 어학연수 왔네. 엄청 늘었어."


 아이는 자극을 받고 자라는 것 같다. 모든 아이에게는 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어떤 자극을 받는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장은 모두 다른 것이다.  우리 아이는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어린이집 대신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다. 아이는 여행 내내 가족들과 붙어 다니며, 스킨십도 많이 하고, 대화도 많이 했다. 아이에게 주어진 1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새로운 자극들을 듬뿍 받은 것이다. 우리는 여행 내내 옆에서 함께 반응하며, 아이의 소감을 물어주고 함께 대화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아이와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하루를 정리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받아들여지고 아이를 성장시킨 것이다.  

 나는 이번 시간을 통해서 더욱더 아이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좋아해 주는 더 많은 사람들과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아이는 점점 더 빠르게 성장하고, 발달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말과 휴일이 100% 아이를 위한 시간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고 점점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우리도 새로운 행복을 느끼고 있다.

 아내와 단둘이 왔던 제주도는 맛있는 음식과 멋진 경치로 기억되어 있다. 우리는 경치 좋은 곳과 멋진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근사한 추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멋진 경치도 근사한 식당도 다녀오지 못했다. 예쁜 색의 바다에서도 우리는 아이만 보며, 조마조마 아이의 손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류의 여행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차이가 있다. 우리의 눈에 담겼던 멋진 경치보다, 아이가 눈이 반짝거리며 바라보는 제주도는 우리에게 훨씬 더 큰 기쁨을 주었기 때문이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린 일주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많은 것을 담아온 긴 여행이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면 생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