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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01. 2021

아이에게 소꿉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래서 이사가 고민되네

 우리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는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토박이시다. 중간에 다른 곳에서 사신적도 있고, 먼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적도 있다고는 하시지만, 그래도 삶의 대부분을 이 지역에서 살고 계시고 앞으로도 그러실 것이다. 그러다 보니 두 분은 이 지역에 참 많은 지인들이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두분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셨고, 그러니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어머니의 선배님들이고, 또 그 안에서의 다양한 연이 만들어져서 알고 지내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배고 후배고, 건너 건너 친구다. 게다가 아버지는 지금도 각종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시고, 어머니께서는 성당을 통해서 많은 교류가 이어져 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아버지께서 하시는 과수원의 주 고객은 주로 지역에서 알고 지내는 분들이다.

 나는 이런 상황이 참 낯설고 부럽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을 하고 나서 여러 지방을 거쳐 서울로 올라오셨고, 서울에 와서도 다양한 이유로 이사를 많이 다니셨다. 어머니 아버지의 대부분의 친구분들은 여전히 지방에 계셨고,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니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친구를 만나본적이 없고, 아버지의 친구도 거의 기억에 없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친구는 서울에 살던 분이셨는데, 아버지와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치시고 도망가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오랜 시절 연락이 안 되다 서울에서 만난 친구를 아버지는 꽤 믿으셨던 것 같고, 그 친구는 아버지를 잘 이용한 것 같다. (어쩌면 이 상황이 객관적이지 않다고 할 수도 있는데, 법적으로 그분은 처벌을 받으셨고,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금전적인 피해를 입었다.)

 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친구라는 존재는 보통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던 이웃들이었고, 그나마도 치열하게 이사를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수시로 바뀌던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이사를 많이 다니지 않았고, 이사를 다녀도 같은 지역에서 옮기다 보니 그 이후에는 사람들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

 부모님의 이런 상황은 나의 교우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는 없다. 초등학교 시절 전학은 몇 번 다니고 보니 그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은 남아 있지 않았고, 그래서 나에게 가장 어릴 적 친구들은 중학교 동창들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아내와 가끔 [응답하라 1988]라는 드라마를 다시보곤 하는데, 거기서 제일 부러운 것이 바로 한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이다. 서로의 가족관계도 잘 알고, 오랜 시간에서 오는 깊은 추억들도 많고,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보다도 더 끈끈한 가족 같은 이웃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사를 고민하고 있다. 처음 신혼집을 구할 때는 지금의 집도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생기고 점점 더 자라다 보니 집이 좁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조금은 더 넓은 집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인데, 그 마음이 나에게 고민이 된 것이다.  

 물론 내가 고민하는 것이 흔하게 예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좋은 학군이나, 학원가를 염두에 두는 것도 아니고, 무리해서라도 부촌으로 가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의 이사가 아이가 자라면서 생기는 아주 중요한 인연들을 만들어갈 곳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학군이 좋은 것도 좋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동네였으면 하고, 신도시나 아주 좋은 입지가 아니어도, 나의 직장생활을 고려해서 더는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동네였으면 한다. 그리고 당장 역세권이 아니어도 좋으니 그저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좋은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는 있다.  

 하지만 이런 조건만으로도 경우의 수는 너무도 많아진다. 특히, 나의 금전적인 상황과 지금의 부동산 시장의 흐름, 그리고 어쩌면 근무지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경우의 수까지 고려되다 보니 쉽게 집을 보러 다닐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민하고 수시로 부동산 사이트를 들어가는 이유는 아이에게 오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일 것이다.

 아내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친한 친구가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 마침 결혼한 시기도 비슷하고 아이도 같은 또래다 보니 생각만큼은 아니어도 볼 수 있는 상황이 생긴다. (물론, 처음에는 아주 좋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만큼 자주 볼 수는 없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이 지역에서 오래 사셨다는 말은, 아내도 역시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을 자주는 아니어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자주 보지는 못해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심리적 부담이 적다. 하지만 나는 아주 어릴 적 친구들은 이미 연락이 닿지 않고, 그나마 청소년 기를 함께 한 친구들도 너무 먼 곳에 살고 있어서, 진짜 마음을 먹고 봐도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나는 아이에게 좋은 소꿉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 일부 어른들이 말하는 친구를 가려 사귀라는 뜻이 아닌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을 만들어 주고 싶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뛰어놀며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친구들, 그래서 자라는 내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추억이 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 생겼으면 한다. 아이에게 그런 친구들을 만들어 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여기까지이겠지만, 그래서 더 나는 아이에게 좋은 동네와 좋은 친구들을 꼭 선문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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