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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14. 2021

"괜찮아, 손 털고, 옳지."

"괜찮아."

우리 아이가 무언가에 신나서 열심히 달려가다 넘어지면, 우리는 쫓아가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이는 넘어짐에 놀랐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는 엄마 아빠의 말을 듣고,, 정말 별거 아닌 일이 되어버려 울지 않는다.


"손 털고"


 우리는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일어나는 아이에게 손을 털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손에 은 흙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듯 가볍게 두 손을 툭툭 털어낸다.


"옳지"


 그런 아이가 마냥 대견한 우리는 큰소리로 이렇게 칭찬을 한다. 그럼 아이는 우리의 칭찬에 다시 또 기분이 좋아져서, 신나게 어디론가 뛰어간다.  


 아이에게 넘어짐은 어쩌면 참 아픈 일이다. 내가 원하던 행동이 멈춰지는 것이고, 나의 손이나 무릎도 아파지는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 순간에 화가 날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감정보다, 우선 놀란 가슴과 아파오는 통증이 스스로를 더 서럽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부모의 표정과 말이 아이에게 안심을 주는 것 같다. 나에게는 놀라고 아픈 일이었지만, 옆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괜찮다고 말해주는 부모를 보며, 정말 이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가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된다.


 우리는 살면서 참 많이도 넘어진다. 내 마음이 앞서 넘어지기도 하고, 내가 미쳐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가끔은 누군가가 일부러 내 다리를 걸어 넘어지게 하기도 하고, 함께 걷던 친구가 넘어지며 나의 옷깃을 잡아 함께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우리는 그 순간들이 참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참 많이 아프고, 더없이 쓰리고, 수많은 후회와 자책들이 마음에 남는다.


 하지만 괜찮다. 넘어지는 것 정도는. 그저 잠시 멈춰서는 것일 뿐. 지금 이 상처가 아무리 아프고 쓰려도 분명히 아문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지금 당장은 쓰리고 아프고, 내 손에 뭍은 흙도, 더러워진 옷도 속이 상하겠지만, 그뿐이다. 상처는 치료하면 되고, 흙은 툭툭 털어버리면 되고, 더러워진 옷은 빨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더 이상 "괜찮아, 손 털고, 옳지."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이제 스스로 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넘어진 숫자만큼 다시 일어났기에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서있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일어났던 기억을 잃지 말자. 스스로 툭툭 털어내던 경험을 잊지 말자. 우리는 누구나 넘어짐 정도에는 울지 않고, 짜증 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쿨하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리고 쿨하게 일어난 스스로에게 "옳지"라고 말할 자격도 있다.


 살아가면서 넘어지는 일은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스스로 괜찮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털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길 수 있다면, 그깟 넘어짐이야 다시 일어나면 되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니 또 넘어진다면 말하자. 스스로에게.


"괜찮아, "


"손 털고, "


"옳지."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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