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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28. 2021

내일 엄마 아빠 회사 가? 안가?

벌써 불금을 알아버리다니

 우리 집 저녁은 자연스럽게 생긴 루틴이 있다. 아이를 함께 데리고 집에 들어오면, 우리는 먼저 아이의 밥을 준비한다. 보통은 밥과 국은 미리 준비해놓고, 냉장고에 얼려 놓기 때문에 나머지 반찬만 준비해주는데, 요즘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생선이기 때문에 그날은 생선을 구워주었다. 한 명이 그렇게 아이의 밥을 준비해서 먹이는 동안, 나머지 한 명은 우리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에 간단히 먹는 경우도 있고, 라면이나 예전에 남은 음식들을 데워먹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쯤, 우리의 식사 준비도 마무리가 된다. 그러면 아이에게는 수박이나 키위 같은 간식을 주고, 우리는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한다. 아이는 우리가 먹는 음식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후식으로 준 과일을 먹거나 장난치는데 더 집중을 한다. 그렇게 모두의 식사가 끝나면 나는 아이와 함께 목욕한다.(지금 글에서는 단 한 줄로 쓰는 이 과정이, 실은 아이를 달래고, 함께 들어가고, 양치를 시키는 것만으로도 야근의 피로감을 느낄 정도의 노동강도라는 것은, 경험해보신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


 목욕을 마친 아이는 기저귀 차는 것을 싫어하거나, 머리를 말리는 것을 싫어하거나, 옷을 입는 것을 싫어하거나, 아니면 이 모든 걸 다 싫어하곤 한다. 그럼 우리는 다양한 아이템들을 통해서 아이를 달래서 한 단계씩 나아간다. 보통 마지막 머리를 말리는 단계에서는 선풍기 앞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말리고 있는데, 2~3권의 책을 2~3번 읽다 보면 머리가 다 마르곤 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아이는 거실에 있는 장난감들과 인사를 하고 잠을 자러 들어간다. 우리 아이는 자신의 베개와 이불도 좋아하고, 불을 끄고 엄마 아빠와 같이 누워서 장난치며 자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보통은 방에 들어가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손을 잡고 들어가거나, 가끔은 아이가 스스로 자기 방에 들어가서 눕기도 한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아이와 놀다 보면 아이는 잠이 들고 우리의 하루가 끝이 난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을 유난히 아이가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금요일이다 보니 우리도 아이와 함께 산책도 나가고, 아이가 좋아하는 달구경도해서 평소보다 늦게 자는 것인 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불을 끄는 것도 싫어하고 아이의 방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했다.


"도대체 오늘은 왜 그러지?"


 아이는 밤 10시가 지났는데도, 자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아니 잠을 자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고, 우리도 점점 체력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ㅇㅇ는 벌써 주말의 개념을 알아서,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밤에 자기 싫어한데, 그다음 날 늦잠자도 되는 걸 아는지, 밤에 안 자려고 엄청 떼를 쓴데."


 얼마 전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아내 친구의 아기 이야기다. 그 아이는 우리보다 3개월이 빠른데, 금요일 밤에는 잠을 안 자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순간 혹시 우리 아이도 오늘이 금요일인걸 아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에게 바로 물어봤다.


"내일 엄마 아빠 회사 가? 안가?"


"안가."


"그럼 오늘은 엄마 아빠 회사 갔어? 안 갔어?"


"갔어."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오늘이 금요일인 것도, 그래서 내일은 늦잠을 자도 된다는 것도, 그리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엄마 아빠랑 놀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우리는 저 대화를 나눈 뒤에 정말 한참을 웃었고, 다 알고 있는 아이에게 억지로 잠을 재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뒤로 아이는 몇 권의 책을 더 읽었고, 아빠에게 안겨 한참을 달구경을 했고, 그때서야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 아이는 스스로 자기의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요즘 우리는 아이 때문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우리가 가르쳐준 기억이 없는 말도 곧잘 하기도 한다. 심지어 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따라 부르기도 한다. 아이의 성장은 우리의 기대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고, 그 순간순간의 반짝임이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는 찬란하다. 생명이 생기는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이 순간까지도 단 한 번도 찬란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리는 매번 아이의 변화에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더 많이 깨닫고 있다.


 찬란한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고 하늘이다. 우리의 표정이, 우리의 말투가, 우리의 마음이, 아이에게는 그날의 날씨이고, 그 순간의 계절일 것이다. 우리가 불금을 기다리는 만큼 아이도 그 밤을 길게 누리고 싶은 것이고, 우리의 주말이 항상 짧듯이 아이에게도, 주말은 매번 아쉬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금은 늦게까지 놀아도 되는 금요일 밤. 나는 이제 조금 더 멀리 산책을 나가보고, 조금 더 오래 같이 하늘을 보고, 조금 더 많은 책을 읽어주고, 조금 더 오래 노래를 불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는 이미 다른 날들과는 다른, 금요일 밤의 추억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에게도 아이가 없는 금요일은 뜨겁게 불타오를 수 없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불타는 금요일은 아이도 항상 함께 우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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