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1
선록과 완수의 장인이 운영하고 있는 과수원은 이 도시의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이 도시는 과거의 농지들과 산업화의 산물인 산업단지, 그리고 새로운 교통편으로 인한 새로운 아파트 단지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이다.
그곳의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과수원은 대형마트와 커다란 제약회사 공장이 있는 큰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큰 교회를 끼고 있는 좁은 골목길로 1.5km 정도 들어가면 마치 숨겨져 있는 것 같은 곳에 존재한다. 좁은 길의 끝에서 코너를 돌고 커다란 나무들을 지나야 펼쳐지는 풍경은 가운데에 계단식으로 정리된 포도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창고와 집이 함께 있고, 오른쪽으로는 밤나무, 감나무, 호두나무, 모과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그리고 포도나무 맨 밑쪽에는 대추나무들과 각종 채소들이 심어저 있는 텃밭도 있다. 그 과수원 너머에는 오른쪽으로 포도밭과 비슷한 규모의 논이 있고, 왼쪽으로는 과수원의 규모보다 4배는 더 넓은 큰 밭이 있다. 그리고 그 밭 넘어로는 저 멀리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문제는 왼쪽에 있는 큰 밭인데, 저 밭에는 도대체 뭐가 심어져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과수원과 논은 흔한 농업지역의 특징들처럼, 계절에 맞는 과정들이 흘러간다. 봄이 되면 땅을 일구고 농작물들을 심기 위한 준비과정들이 시작되고, 여름이면 그 작물들이 자람으로 인한 일거리들이 생긴다. 심지어 보통의 자투리 땅에 심어진 옥수수도 잘 익어간다. 가을이 되면 수확을 하고, 겨울이 되면 다시 무채색의 겨울을 풍경이 그려진다. 그런데 저 큰 밭은 도대체가 그런 일반적인 과정들의 진행이 없다. 일 년의 대부분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계절에 상관없이 땅을 헤집기도 한다. 실은 이 과정까지만 보면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저 버려진 땅이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 땅을 놀리던, 뭘 심던 궁금하기는 해도, 상관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냄새다. 찬바람이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할 무렵 그 밭으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뭔가 이상한 냄새가 과수원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냄새는 뭔가 아주 생소한 것이어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분명한 것은 이 냄새가 몸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이유를 모르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이 사건의 심각성을 느끼기 것은 밤에 그 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목격하고 나서부터이다.
얼마 전에 과수원의 장인은 포도밭에 비닐 지붕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언젠가 얼굴 정도만 본 적이 있는 한 사내가 한 외국인 노동자를 데리고 과수원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통의 손님들이라고 하면 대형마트가 있는 큰길에서 교회를 끼고 들어오는 그 좁은 길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그 사내는 그 방향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문제의 밭의 방향에서 걸어온 것이다. 과수원의 입구 쪽에서 일을 하고 있던 장인은, 마치 그 사내들이 자신의 집에서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형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시죠?"
생각해보니 몇 년 전, 침목 계모임에서 인사는 나눈 기억이 났다.
"어!. 그래."
그 당시, 저 사내는 자신이 저 밭을 빌려서 농사를 지어보려고 한다는 인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을 가진 이후에도 저 밭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초봄을 흘려보냈고, 그러고도 몇 해나 저 밭을 저렇게 쓰고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무슨 일이야?, "
"뭐. 저기서 보니까 혼자 바쁘게 낑낑거리고 그러시길래요. 뭐 도와드릴 거 없나 해서 왔죠?"
"어? 거기는 안 바빠?"
"저희는 뭐, 도대체 뭘 심어야 할지도 몰라서요. 올해도 그냥 농업대학 다니면서 공부나 좀 하려고요."
"그래?"
"그래서 시간 많으니까? 일손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얘가 말은 안 통해도 일은 아주 잘해요."
"뭐야? 아직 뭘 심을지도 모르는데, 일꾼부터 뽑은 거?"
"아. 그거야. 뭐 꼭 뭘 안 심어도 일은 많으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그럼 뭐부터 좀 도와드릴까요?"
"아! 우선 오늘은 다 했어! 내가 나중에 필요하면 말할게"
" 아 그래요? 그럼 형님 전화번호나 하나 주세요."
그 사내가 내민 손에 장인은 자신도 모르게 과수원 명함 하나를 건넸다. 그리고 늦은 밤에 밭으로 대형트럭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것을 목격한 것은 며칠이 지나서였다.
아마 그들은 사람들의 눈이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늦은 밤에 무엇인가를 진행했던 것 같은데, 장인이 처음 트럭을 발견한 그날부터 3일 동안 매일 밤, 수많은 트럭들이 그 밭으로 왔다 갔다 하곤 했고, 어두워서 정확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땅을 파고 무엇인가를 묻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자 바람을 타고, 이상한 냄새가 바람에 날려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 저놈의 새끼들이 돈 받고 이상한 걸 땅에 파묻고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내가 시청에도 신고를 하고, 이 근처 땅주인들한테도 다 지랄을 했는데, 약을 얼마나 처 놨는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 새끼 편을 드는거야! 뭔가 있어! 아주 찝찝해!"
그 이후에도 그 사내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밤에 대형트럭을 불러들여 무엇인가를 땅에 묻었고, 어김없이 과수원으로 이상한 냄새가 넘어오곤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장인은 무엇인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일 다들 모여봐라. 다 같이 고기나 구워 먹자."
"안 그래도 내일 다들 과수원에 간다던데?"
"그럼 잘 됐네, 나도 할 말이 좀 있으니까. 다들 오라고 해."
"어. 알았어요."
장인은 자식들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상의를 하기 위해 과수원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자식들이 모이기로 한 전날 밤, 장인은 또 무엇인가를 목격했다.
그날은 유난히 달이 밝아서 저 멀리 있는 그 밭도 훤하게 보이는 날이었다. 포도나무에 물을 주는 장치를 끄기 위해 밖으로 나온 그는 우연히 그 밭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썩을 놈들. 땅에 저런 짓거리를 하면 천벌을 받을 거다! 분명히!"
그 밭을 보며 혼잣말을 하던 그는,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 때문에 다시 그 밭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보통은 그 밭에 드나드는 트럭들은 10톤이 넘는 대형이었는데, 오늘은 아주 작은 트럭이 서있는 것이다. 심지어 멀리서 보는것 이긴 하지만, 딱 보기에도 산업용 짐을 실는 트럭이 아니라, 식품을 실어 나르는 냉동탑차 같아 보였다. 근데 더 이상한 것은 바로 그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이 그 사내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장인이 그 사내에 대한 의심에 확신을 가진 이유도 아무리 멀리서 한눈에 본다고 해도 한 번에 알아볼 만한 커다란 체구 때문이었다. 키는 180cm 정도로 보이기는 했지만, 체구가 워낙 커서 몸무게가 대충 120kg은 넘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서 봐도 한 번에 딱 알아볼 수 있었는데, 오늘 그 트럭 옆에 서있는 사람은 그 사내가 아닌 것이다.
"어? 저 놈.. 그 새끼 아니야?"
장인이 알아본 것은 언젠가 그 사내가 과수원에 찾아왔을 때, 함께 따라온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 외국인은 그 사내와는 다르게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의미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새끼는 또 이 시간에 뭘 하는 거야? 혼자서?"
진짜 이상한 것은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차가 온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포클레인도 없이 차 한 대만 덩그러니 와서 내리지도 않은 운전기사와 뭔가를 얘기하는 것 같은 것이다.
"어? 근데 저건 또 뭐야?"
궁금해서 한참을 바라보던 장인은 그 외국인이 탑차를 열어 무엇인가를 꺼내는 것을 봤다. 그것은 느낌상 그 외국인의 키보다 큰 짐이었는데, 그는 힘들었는지 낑낑거리면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미 낮에 파놓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밭을 향해 굴리는 듯했는데,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곧 냉동탑차는 자리를 떠났고, 그 외국인은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장인은 그 모습이 너무 이상하고 궁금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때 문득 삽질을 하다가 잠시 숨을 돌리는 외국인이 자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비료포대 뒤로 몸을 숨겼다. 외국인은 한참을 이쪽 방향을 향해 보고 있었고, 숨어있는 장인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뛰는 심장을 잡으며 숨도 못 쉬고 숨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내밀어보자 어느새 그 외국인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한 밭만 보였다.
유난히 달이 밝은 그날은 장인의 심장에서 드럼이라도 연주하는 듯 쿵쾅대는 소리로 가득 찼고, 아무도 없는 밭을 보며, 나름 안심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집에서 나온 아내의 소리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그러고 앉아 있어요? 무슨 일 있어?"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질렀던 장인은 아내인 것을 깨닫자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아냐. 아무것도."
순간 아내에게도 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이게 무슨 일이든지 본인만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고 정신이 없었던 그는 잠시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고, 아내는 그런 그에게 진정하라고 물을 한잔 떠다 주었다.
"자 물 좀 마셔요."
"이거 말고 맥주나 한 캔 줘봐. 갑자기 갈증이 확 나네."
"참나. 핑계도 좋네."
아내는 들어가서 쟁반에 맥주 두 캔과 견과류를 조금 챙겨서 나왔고, 의자 옆에 있는 테이블에 놓아주고는 자신도 옆에 앉았다. 그때 갑자기.
"나.. 맥주.."
순간 어둠 속에서 그 외국인이 나타났다.
"우어어어아아아!"
장인은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고, 아내는 벌떡 일어나 과일 건조기 뒤로 숨었다. 외국인은 본인도 좀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너.. 뭐야?"
"나.... 맥주... 맥주...."
"뭐?!"
"나.. 목이.. 마르서.. 맥주... 가.. 먹..."
"예? 맥주가 먹고 싶다고요?"
"응.. 맥주..."
순간 장인의 머릿속은 전쟁이 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이 너무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 할지 아무런 감도 오지 않았다. 그때, 아내가 맥주 한 캔을 들어 외국인에게 건네려고 하고 있었다.
"잠깐! 자! 잠깐!"
장인의 소리에 어두운 과수원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