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7
"아버지, 아마 저 외국인 노동자는 저놈을 만나러 갔겠죠?"
"그렇겠지. 아무래도."
"그리고 동서. 저기 밭주인은 공무원들이랑 아직도 밥을 먹고 있을까?"
"글쎄요. 아까 밥 먹으러 간지는 꽤 됐는데, 그래도 술까지는 사주려고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지가 찔리는 게 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우선 저 밭에 당장 올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우선 저기부터 좀 파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네. 우선 저기에 뭔가가 있으니까. 다들 저 난리일 거 아냐?"
"그렇죠. 그러니까 우선 빨리 가서 뭔지 확인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우선 삽이랑 플래시 좀 챙겨 올게."
장인은 바로 선록의 말에 따라 땅을 파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완수도 장인을 따라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선록은 혹시 몰라 밭쪽을 주시하며,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다들 시간이 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사이에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준비가 다 된 그들은 장인을 선두로 해서 그쪽 밭으로 향했다. 과수원과 밭 사이에는 울타리나 경계가 없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은 없었다. 다만, 그만큼 오픈된 공간이라는 것이 그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와 갑자기 누가 나타나면 숨을 때도 없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놈들이 대담한 거야. 아 벌판에다가 뭘 그렇게 묻은 건지."
"우선, 오늘은 확인만 하는 것이 좋을 듯해요. 아마 저쪽에서도 다시 파내려고 오거나, 확인하려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그러자"
그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그들은 밭의 중간에 도착해 있었다. 그들은 대략 어디쯤인지는 알 수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요!"
조금 흩어져서 위치를 확인하던 그들은 완수의 낮은 외침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속하게 모였다.
"정신이 얼마나 없었는지 제대로 덮지도 않고 갔네요."
완수가 서있는 곳에는 흙이 파 해쳐져 있는 상태로 아래에 있는 의료용 폐기물 비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곳으로 걸어오는 동안에도 그들의 심장은 터지듯이 뛰고 있었지만, 막상 의료용 폐기물용 비닐까지 보고 나니 점점 빨리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빨리 확인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쉽게 움직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장인이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자 내가 좀 열어 볼 테니까. 한 명이 플래시를 비추고, 다른 한 명이 사진을 찍어."
" 예. 그럴게요"
장인은 막상 그렇게 말을 하기는 했지만, 쉽게 발이 떨어지지는 않는듯했다. 장인은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묻혀있는 비닐을 파 해치기 시작했다. 이미 외국인 노동자가 제대로 수습을 하지 않은 덕에 묻혀있는 것은 생각보다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얼핏 보기에 크기는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의 몸집과 비슷했지만, 사람의 형태라기보다는 커다란 비닐주머니에 무엇인가가 가득 담겨 있는 느낌이었다. 장인은 목장갑을 낀 상태로 비닐의 끝부분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한쪽 입구를 찾은 장인은 그 비닐을 벌려서 안쪽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어어어어어!"
그 순간 장인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그대로 과수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완수와 선록도 장인의 반응에 놀라서 같이 과수원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과수원을 향해 뛰는 그들은 마치 뒤돌아보면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을 것 같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고 과수원과 밭 사이에 있는 채리 나무 뒤로 숨고 나서야 그들은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아버지, 왜요?? 뭔데요?? 뭘 보신 거예요?"
그제야 숨을 좀 돌린 설록은 뒤돌아 그 밭은 살피며 장인에게 물었다. 장인은 사위들의 말에 반응도 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 있었다.
"장인어른 괜찮으세요?"
"아버지! 아버지?"
장인은 한동안 멍하게 앉아있었고, 작지만 다급하게 장인을 부르는 사위들의 목소리에 조금은 정신이 들었는지, 눈빛과 얼굴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큰 심호흡을 한 장인은 사위들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저 안에 정말 시체가 있는 거 같아..."
"예? 뭐라고요?"
"정말이에요?"
장인은 더 설명은 하지 않고 자신의 목장갑을 그들의 앞에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 장갑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그들은 이내 장갑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들이 처음 장인이 내민 목장갑을 보고 바로 놀라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은 장인이 흔히들 쓰는 빨간색 방수장갑을 낀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조금 자세히 보니 그것은 흰 목장갑에 빨간색 피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이었고, 심지어 손가락 사이에는 머리카락 뭉치도 있는 것 같았다. 장인의 장갑에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그들은 너무 놀라 장인처럼 한동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정말 그 외국인이 저기다가 시체를 묻었다는 거예요?"
"그런 거 같아."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지 않았어?"
"뭐 꼭 어른이라는 법도 없잖아."
순간, 장인의 말에 사위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선록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말을 이어갔다.
"근데 우리요. 저대로 두고 오면 걸리는 거 아닌가요? 저게 사람이든 뭐든, 이대로 두면 다음에 오는 사람이 누가 왔다 간 걸 알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럼 진짜 다시 가서 수습을 해야죠. 이왕이면 사진도 좀 찍고요."
"그래야지.. 내가 혼자 갔다 올게. 어차피 나는 한번 봤으니까. 내가 혼자 다녀오는 게 나을 거야."
정신을 좀 차린 장인은 자신이 다녀오겠다며, 무릎을 짚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장인의 손을 본 완수가 장인을 말리며 말을 했다.
"장인어른 잠시만요. 이거 사람 머리카락이 아닌 것이 같은데요?"
"뭐?"
"아까는 너무 놀라기도 하고, 얼핏 머리카락 같아서 놀란 건데, 보세요. 이거 동물 털이예요."
완수의 말에 장인은 플래시를 켜고 자신의 손에 묻어있는 털을 살펴봤다. 그리고 장갑에 묻어있는 피의 냄새도 맡아보던 장인은 뭔가 알아낸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선 이게 하나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내가 만진 거는 고라니 같다."
"고라니요?"
"어. 생각해보니까 아까 사이즈도 그렇고, 지금 이 털이나 냄새를 봐도 고라니야. 고라니."
"고라니라고요?"
"그럼 진짜 다행히도 사람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근데 아버지는 고라니 피 냄새도 알세요?"
"그럼 대충은 알지. 고라니야 이 근처에 많은데, 뭐. 대충 고라니나 멧돼지. 토끼나 두더지 정도는 알아. 털이나 피 냄새는. 많이 잡기도 하고, 먹기도 했으니까."
장인은 이 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지금이야 야생동물의 포획이 금지되어 있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는 덫을 놓아 잡기도 했고, 길에 죽어있는 동물들을 잡아다가 먹기도 했다. 그러니 흔한 동물들의 털이나 피 냄새 정도는 대충 구분할 수 있었다. 장인은 사람의 시체로만 알았던 것이 고라니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서야 뭔가 몸에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우선 사람은 아니라고 하니까. 아버지는 여기서 잠시 계세요. 저랑 동서가 빨리 처리하고 올게요."
"아니야. 고라니면 내가 더 가봐야지. 뭔 짓을 한 건지 봐야 하니."
"예?"
"생각해봐. 고라니는 지금도 많이 나오고 또 그만큼 많이 죽어. 벌써 요 앞에 큰 길만 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밤에 차에 치인 녀석들이 누워있다고."
"맞아요. 저도 얼마 전에 요 근처에서 봤어요."
"그래. 근데 그렇게 죽은 건 어떻게 하는 줄 알아?"
"뭐 요즘에야 시청에 신고해서 가지고 가라고 하지 않아요?"
"그래. 그렇지. 요즘 세상에 죽은 고라니 먹을 사람도 없고, 먹어도 안된다고. 근데 그런 고라니를 저렇게 잘 담아서 땅에 묻는다고?"
"이상한 거네요."
"그렇지. 이상한 거야. 그럼 진짜 뭐가 있다는 얘기지."
"진짜 뭐가 있나?"
그들은 다시 그 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했기 때문에 움직임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은 아까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고, 주저할 틈도 없이 빠르게 그 비닐 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완수는 플래시를 비춰서 비닐에 담겨있는 것을 비추고 있었고, 선록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장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비닐을 열어 장갑을 낀 손으로 안에 들은 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참을 살펴보던 장인은 선록이 동영상을 찍기 좋게 안에 있는 것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장인은 신호에 따라 빠르게 아까와 같이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들이 살펴보고 정리하는 동안에 아무런 기척도 나지 않았고, 그들은 빠르게 과수원으로 돌아왔다.
과수원에 돌아온 그들은 밭 사이를 지나가며 묻은 흙먼지 들을 털어냈고, 장인은 피 묻은 장갑을 쓰레기 봉지 안쪽에 깊숙이 버린 뒤에 밖에 있는 수돗가에서 손과 얼굴을 씻었다. 장인이 씻는 모습을 본 사위들도 자연스레 수돗가로 모여서 씻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원두막으로 모였다.
"아버지. 고라니 맞아요?"
"어. 맞아 고라니는 맞고, 내가 보니까. 그게"
"뭐하고 왔어?"
"으어어!!!"
그때, 갑자기 장모와 두 딸이 원두막 옆에 큰 도토리나무 뒤에서 나왔다. 어둠 속에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들 때문에 그들은 정말 아주 크게 놀랐고, 선록은 원두막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 그녀들을 웃으며, 나무 옆에 서있었지만, 어두운 분위기와 흐릿한 조명 덕분에 뭔가 소름 끼치는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뭐야! 왜 거기서 나와!"
"아 깜짝 놀랐잖아."
"왜. 왜. 왜. 무슨 나쁜 짓들이라도 했어? 왜 이렇게 깜짝 놀라?"
"무슨 나쁜 짓이야!"
"요즘 이상해. 자꾸 이렇게 남자들끼리 뭉치고 다니고."
"뭐가 또! 왜!"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남자들은 본인들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었고, 그런 모습이 더 이상하게 느낀 여자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남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장모는 장이에게 다가가 한마디 했다.
" 저 밭에는 왜 갔어?"
"어?"
"다 봤어! 거기다가 뭘 묻고 온 거냐고? 삽까지 들고 가서!"
"아니 그게.."
갑자기 대상을 바꿔서 선록에게 다가가 장모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불었다.
"그럼 자네가 말해봐. 저기 가서 뭘 하고 온 거야?"
"어머니.. 그게요.."
선록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장인과 장모의 얼굴만 번갈아보며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