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9
장인은 아침부터 친구들을 만나러 나갔다. 굳이 왜 만나는지를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장모는 이미 알고 있었다. 큰사위가 말했던 폐공장들에 대해서 알아보러 갔을 것이라는 것을. 남편이 서둘러서 나가자, 본인도 선록이 부탁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모는 그들의 전화번호도 모르고, 워낙 왕래를 하지 않고 살던 사이라서 무언가의 명분이 없으면 무작정 찾아가기도 너무 어려웠다. 그때 때마침 눈앞에 잔뜩 쌓여있는 비료가 보였다. 실은 그 비료 때문에 아침부터 장인과 다툼이 조금 있었다. 장인은 선록이 부탁한 것부터 하고 와서 치우겠다고 했고, 장모는 지금 다른 일을 할 때, 너무 걸리적거리니 이것부터 치워달라고 했다. 장인은 결국 친구들을 만나러 그냥 나갔고, 장모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비료가 뭔가 좋은 명분이 될 것 같았다.
"저 혹시 시간 되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장모가 쟁반에 쑥떡 한 접시를 들고, 불쑥 찾아오자 밭주인과 외국인 노동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일이신지?"
"우리 집 양반이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아침부터 급하게 나갔는데, 글쎄 어제 배달 온 비료를 길목에다 딱 막아놔서 말이에요. 오늘 내가 할 일이 많은데, 저기에 저렇게 있음 하루 종일 거슬릴꺼같고, 우리 집 양반은 나가서 언제 올지도 모르니까. 부탁 좀 하려고요."
"아.. 그러세요.. 제크 갔다 와"
"제이크요."
"그러니까 제크 갔다 오라고."
"예.. 알았겠습니다."
장모는 밭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앞장을 섰다. 외국인 노동자는 조용히 장모의 뒤를 따라서 왔다. 장모는 이 외국인 노동자가 한 행동과 지금의 사건들 때문에 너무 겁이 났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장인이 있을 때 불러볼까도 했지만, 그래도 선록의 말대로 오히려 우리가 모든 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가 더 섣불리 무엇인가를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그래서 그런지, 뒤에 쫓아오는 외국인 노동자의 표정이 아주 많이 불안해 보였다.
"이름이 제이크예요?"
"예.. 제이크"
"가족은요?"
"가족.. 없어요. 혼자예요."
"아. 미안해요."
"아닙니다.. 다 너무 어릴 때 죽어서요. 괜찮아요."
순간 장모의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에게 뭔가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껴져서 인 것 같다. 장모는 그래서 더 이상 무엇인가 말을 하지 못했고, 그렇게 말없이 과수원에 도착했다. 과수원에 도착한 제이크는 말도 없이 비료부터 들었다. 순간 당황한 장모가 한쪽 구석을 가리키자, 그는 말없이 그곳으로 비료를 옮기기 시작했다. 장모가 바라보는 그는 눈치도 빠르고 손도 빨랐다.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30개가 넘는 20kg짜리 비료를 순식간에 다 옮긴 것이다.
"밥은 먹었어요?"
"아뇨."
"제이크, 그럼 밥 먹고 가요."
"사장님도.. 밥.."
"내가 갈 때, 좀 싸줄 테니까 제이크는 먼저 먹고 가요."
"예."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우리말 잘하는 거 알아요."
"예?"
"어쩌다 보니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편하게 말해요."
제이크는 장모의 태도에 마음이 좀 풀렸는지 조금 마음이 편해진 듯 보였다. 장모는 처음에 집에서 밥을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막상 집안으로 들인다고 하니 겁이 났다. 그리고 그가 거실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보면 더 불안해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밖에 있는 테이블에 밥상을 차렸다.
"우리는 날이 좋으면 여기서 먹어요. 경치도 좋고 하니까."
"예. 감사합니다."
"뭐 좋아해요?"
"저 한국음식 다 좋아합니다."
"그럼, 필리핀에서는 누구랑 살았어요?"
"선교원이요. 학교 다닐 때까지는 삼촌하고 살았는데, 조카들이 많아서 나왔어요."
"의대생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거기 어떻게 갔어요? 아 무시하는 건 아니에요."
"의사 선생님이 도와줬어요."
"의사 선생님?"
"그때 저한테 전화한, 김민철 선생님."
"예?"
"다 들었어요. 그날 제가 하던 거 다 봤다고요."
장모는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선록에 말에 따라 무언인가를 알아내거나, 그놈에게 자극을 주려고 했던 거였는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또 장모가 구석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어.. 그게.."
"알아요.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뭐가 어쩔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 제 은인이에요. 제가 학교 관두고 관광객들 소매치기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구해줬어요."
"소매치기였다고요?"
"삼촌집에서 나와서 갈 때가 없었어요. 친구들이랑 클럽 같은데 옆에서 관광객들한테 돈을 훔쳤어요. 그러다 그 의사 선생님이랑 친구들 만났고요. 내 손을 보더니 재주가 많다고. 눈을 보더니 머리도 똑똑한 거 같다고, 갑자기 데리고 가더니 선교원에 보냈어요. 그리고 공부하라고, 내가 오늘부터 네 아빠라고. 앞으로 네가 공부하는데 들어가는 돈은 다 줄테니까. 하고 싶은 공부 해보라고. 대신 꼭 공부를 잘해야지 주는 거 아니니까. 하다가 하기 싫으면 그만둬도 되고, 바꿔도 된다고. 여기가 싫으면 한국에 와도 되니까. 우선 뭘 하고 싶은지 찾아보라고 했어요."
"그 의사 선생님이요? 갑자기요?"
"예. 자기도 그랬다고, 그래서 진짜 죽어라고 공부했어요. 한국어 공부도 그때 하고요. 나보고 아들이라는데,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한국말로 대화하고 싶어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의대에 갔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교환학생으로 왔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까, 선생님도 부자가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제가 여기서 일하겠다고 한 거예요."
"대단하네... 둘 다.."
장모는 지금 무슨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선 제이크가 얘기 한 이 상황도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온 가족이 생각하던 나쁜 놈의 실체가 이렇다는 사실도 믿기지가 않았다. 장모는 들으면서 둘 중에 하나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이크가 거짓말을 잘하는 것이던가. 아니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던가. 머릿속으로는 이 모든 게 제이크의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은 너무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근데 그러면 저기다 뭘 그렇게 묻은 거예요."
"죄송합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대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선생님도 나도 나쁜 사람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아.. 알았어요.."
"진짜예요."
"알았다고요.. 밥 식겠다. 내가 밥을 주고 말을 너무 시켰네. 어서 먹어요."
말을 다한 제이크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고, 장모는 문득 맥주를 달라고 찾아왔던 그 밤이 생각났다. 장인과 장모는 그날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밤에 무엇인가를 몰래 묻다가 과수원으로 와서 맥주를 찾던 모습. 어쩌면 지금 이 모습과 비교해보니, 그는 그 순간 정말 누군가가 주는 시원한 캔맥주가 간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크는 밥을 두 그릇이나 해치운뒤에 밭주인의 몫까지 들고 돌아갔다. 음식이 쏟아질까 조심스럽게 가고 있는 제이크의 뒷모습을 보면서 장모는 뭔가 짠한 감정이 느껴졌다.
"우리가 혹시 뭔가를 오해하고 있나?"
장모가 제이크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인이 친구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우리 밥 좀 줘."
"예? 식사 약속 가신 거 아니었어요?"
"거기 코다리 집 가서 먹으려고 했는데, 오늘 장사 안 한데, 근데 이놈들이 당신이 해준 청국장이 갑자기 먹고 싶다길래, 그냥 데리고 왔어. 뭐야? 근데 누가 왔었어?"
"저 밭에서 왔다 갔어요. 애들이 불러서 밥 한번 먹으라고 했잖아요."
"아! 왔다 갔어? 비료는 언제 치웠데?"
"와서 다 치워주고 갔어요."
"그래?"
장인도 제이크에 대한 감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날의 상황들이 아직도 소름 끼치기는 했지만, 그날의 제이크의 표정에서도 자신도 느껴봤던 간절함이 느꼈기 때문이다.
"아! 우선 그 얘기부터 해봐. 거기가 지금 임대가 나갔다고?"
"그래. 거기 임대 나간 지 꽤 됐어. 한 일 년은 다돼갈걸?"
"그럼 거기 공장이 돌아가는 거야?"
"아니, 그게 신기해. 빌리긴 했는데, 공장은 안 돌아가. 여전히 불도 안 켜고, 비어있는 거 같아."
"아. 그래? 거기 혹시 도박장이나 뭐 그런 거 아냐?"
"나도 좀 찝찝한 게 그럼 거기 차라도 다녀야 되는데, 내가 거기에 차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없거든. 내 사무실이 딱 보이잖아. 뭐 내가 하루 종일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비슷한 것도 안다녀."
"아 그럼, 그냥 빌려서 비워둔다. 월세만 내면서?"
"그러니까, 이게 아무리 폐공장이라고 주인이 엄청 싸게 줬다고 해도, 비용이 만만치는 않거든, 근데 그러더라고, 아! 맞다. 더 이상한 게 있네!"
"뭔데? 뭐야?"
"얼마 전에 전기기사가 사무실에 왔는데, 묻더라고 저기 뭐 하냐고? 임대는 됐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했더니, 신기해하더라? 저기가 전기는 계속 쓴데, 것도 만만치 않게. 그래서 그 전기기사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니까 봤는데, 공장이라고 하기에는 전기를 적게 쓰고, 그렇다고 가정집보다는 많이 전기를 쓰니까, 궁금해서 물어봤다는 거지."
"뭐가 있네... 있기는."
"뭐.. 그렇긴 한데. 뭐 알 수는 없지. 임대 계약했으니까 맘대로 막 가볼 수도 없고."
"거기 주인이 누군데?"
"그 철물점 할배야. 그 혼자 사는."
"거기 아들이 뭔 사업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직 공장 안 준 거야?"
"다 줬데, 이미 다 줬는데, 그거 하나만 자기가 맘대로 쓰겠다고 남겨 뒀다 하더라고."
"그 망해져 가는 공장은 뭐하려고?"
"근데 그 할배가 가끔 가긴 해. 거기."
"그 공장에?"
"어 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가더라고."
"그건 또 뭐야? 그 임대 인하고 원래 알던 사람 아니야?"
"에이 어떻게 알아? 서울에서 내려온 의사라던데, "
"뭐? 거기 임대한 게? 의사라고?"
"어. 말 안 했나? 저 옆동네에서 소아과 하는 의사라던데, 뭐하려고 하냐니까, 암말도 안 하고."
장인은 순간 소름이 돋았고, 장모는 들고 오던 청국장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렇게 불러서 물어본 거지만, 막상 이렇게 명확하게 답이 나오니까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궁금했던 내용이 모두 풀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 현실이 두려워서 그런 건지. 장인과 장모는 더 이상 그들과 폐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한 대화들과 함께 식사가 끝났고, 둘은 찬구들이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제이크래."
"뭐?"
"저 외국인."
의자에 앉아 멍하게 있던 장모는 그들의 시야에 제이크가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장인은 장모의 말을 들으면서,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와 그놈에 대해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도대체 뭐지? 뭐가 진실인 거지. 그들은 너무나도 많은 사실들이 조각처럼 머리로 들어오고 있어서 마치 손녀들이 좋아하는 퍼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나하나의 조각들은 도대체 어떤 진실을 만들려고 하는 건지, 장인은 조각이 많아지고 선명해질수록 점점 더 겁이 나고 있었다. 그때, 이 모든 퍼즐을 맞출 수 있는 틀이라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선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오늘 저희 다 갈게요. 아무래도 좀 같이 봐야 할 게 있어요."
"뭘 봐?, 아니 그보다 여기도 할 말이 많아."
"다들 그런 거 같아요. 전화로 길게 말씀드리긴 그러니까요. 제가 이따가 가서 말씀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어머니 지금 밥하시고 그럴 정신없으실 거 같으니까, 그냥 시켜드시자고 말씀 좀 전해주세요."
"그래."
전화기 너머로 이미 이야기를 들은 장모는 선록이 참 세심하다 생각했다. 아침에야 뭔 정신으로 두 번이나 밥상을 차렸나 싶었는데, 지금은 뭔가 마음도 복잡하고 심란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모와 장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