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3억이야. 3억! 내일까지 준비해."
나는 아직도 저 말이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유치원에 엄마를 대신해서 데리러 왔던 이모. 아니 내가 이모라고 부르던 엄마의 친구. 평소에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이모는 나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이모의 손을 잡는 순간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되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지금. 세세한 과정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 갇혀버린 어두운 작은 방. 창문도 없던 그곳에는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이상한 냄새와 너무나 차가웠던 바닥의 촉감만이 남아 있다.
시간의 흐름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할 나이였던 나에게, 그곳에서의 시간은 영원처럼 길고 두려웠다. 이모는 가끔 문을 열고 들어와 나의 얼굴을 만져보고, 내가 좋아하던 빵과 우유를 주고 나갔다. 7살의 아이에게는 두려움이 먼저일까? 배고픔이 먼저일까? 나는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무엇 하나 삼킬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모가 들어올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쳤고, 그렇게 물러서다 차가운 벽에 몸이 막히고 나면, 더 큰 공포에 짓눌려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이모는 뭐가 그리 간절했을까? 내 기억 속에서, 어둠을 가르고 들어오는 이모의 그림자는 아주 많이 무서웠지만, 이모가 내 얼굴을 만지던 손길에는 걱정이 묻어있었다. 그래서 무섭고 겁도 났지만, 지금 나를 엄마와 아빠에게서 떼어놓은 것이 이모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이모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이모는 나를 3일 동안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이모는 갑자기 사업이 망한 남편과 큰 수술이 필요한 어머니 때문에 나쁜 생각을 했다고 했다. 평소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나를 정말 친딸처럼 아끼던 사람이라, 삶에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나를 어쩌지는 못했다고 했다. 특히, 처음부터 나를 가두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 얌전히 데리고만 있으려고 했는데, 막상 같이 있다 보니 마음이 너무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지하실에 가둬 두었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하는 것을 사다 줘도 먹지도 않고, 자신을 보며 울기만 하는 내가 조금씩 겁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점점 지하실에 가던 횟수도 줄어들고, 결국에는 내가 너무 걱정이 돼서 자수를 했다고 했다. 자수를 하고 나서도 이모는 나를 직접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의 상태만을 묻고는 그대로 경찰서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 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로 폐소 공포증을 앓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회전 관람차나 케이블카 같이 좁은 공간이라고 해도 창문이 있는 공간은 괜찮지만, 엘리베이터나 작은 창고, 옷 가게의 피팅룸은 나에게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곳에 들어가는 순간,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이곳에 빛이 없어지고 캄캄해지는 것이 상상이 되면, 그대로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나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겨준 그날. 신기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이모가 오지 않는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을 때, 내 공포는 어둠이라는 것에서 홀로 남겨짐에 대한 것까지 더해지고 있었다. 이모가 들어오는 순간도 겁이 났지만,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저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극심한 공포로 인한 환청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악기였는데, 그 악기로 연주되는 멜로디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다만, 그 음색이나 멜로디가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나는 우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 몸을 안아주듯이 들려오던 음악소리는 어느 순간, 남자아이의 작은 목소리로 바뀌었다.
"안녕."
"안녕."
그렇게 오랫동안 공포에 떨고 있었지만, 나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아이처럼 그 아이의 인사에 답을 했다. 그 음악소리가 나의 마음을 달랜 건지, 아니면 그 아이의 존재가 나를 안심시킨 건지 모르지만, 나는 울음을 그치고 진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은 시간을 견딜 수, 아니 기다릴 수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곳에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가끔 들려오는 따뜻한 음악소리가 나를 달래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음이 진정이 되고 나자 나는 배가 고프기 시작했고, 이모가 사다 준 빵과 우유를 먹었다. 2개쯤 먹었을 때, 긴장이 풀린 건지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너무 무섭고 겁이 났을 때, 그렇게 차갑게 느껴졌던 그 바닥은, 진정을 하고 배를 채우고 나니,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잠이 들었을 때, 흐릿한 내 기억으로는 누군가가 나를 따듯하게 안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긴 잠에 들었고, 즐거운 꿈도 꿨다. 얼굴이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와 넓은 들판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신나게 뛰어가는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나는 눈부신 햇빛을 맞으며 마냥 즐겁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화 같던 꿈에 그때 들었던 그 멜로디가 BGM으로 깔려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 그때 들었던 그 멜로디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데, 왠지 그날의 꿈을 떠올리면 그 멜로디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자다가 일어나서 빵과 우유를 먹고, 다시 또 잠들기를 반복했고, 엄마와 경찰 아저씨가 그 지하실 문을 열었을 때도 나는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잠들어 있는 나를 보고 너무 놀랐던 엄마는 달려와서 나를 안았는데, 입 주변에 묻어 있는 크림들과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나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너무 믿었던 친구에게 이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엄마도, 너무 건강하게 돌아온 나의 모습과, 내가 걱정돼서 결국에는 스스로 자수를 한 이모의 마음에, 결국 용서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는 꽤 오랜 시간을 감옥에 있어야만 했고, 출소한 뒤에는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겪은 일에 비해서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엄마는, 그 이후로 주변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참 외롭게 나를 기르셨다. 그리고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오랫동안 고민하고 결정한 거라며 힘든 이야기를 꺼내셨다.
" 너한테 낯선 환경을 다시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네가 다 크기를 기다렸지. 근데 우리 딸 이렇게 잘 컸잖아. 이제 엄마랑 아빠는 이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을 좀 떠나고 싶어. 우리 딸은 잘 고민하고 결정해줘. 지금처럼 이대로 이곳에서 잘 살아줘도 좋고, 엄마 아빠를 따라서 같이 가줘도 좋아. "
나는 이곳에 남고 싶었다. 엘리베이터만 아니라면, 나에게는 큰 문제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을 나를 위해 이곳에서 남아준 엄마를 위해, 이번에는 내가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합격했던 한국의 대학을 포기하고 엄마가 이민을 준비하고 있던 캐나다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4년 동안 낯설지만 새로운 삶을 살았고, 엄마와 아빠가 그곳에서 적응하는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처음 입학하려고 했던 그 대학의 대학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 꿈과 미래도 그랬지만, 내 마음도 다시 이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혼자 한국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