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계-1

세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1. 하늘


캐나다의 하늘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해 주었다. 오타와 공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눈이 부시게 파랬던 하늘의 모습, 이질적인 느낌의 냄새와 공기의 촉감은 나를 설레게 했었다. 낯선 공간과 만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 다시 돌아오던 날. 다시 만난 한국의 하늘은 캐나다와는 비교되지 않는 반가움이 있었다.

나에게 하늘은 언제나 다른 세계의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한국과는 너무 다른 캐나다의 새로운 공간에서,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상황도 결국은 현실이라는 것이 항상 느껴졌다. 하지만 하늘은 다르다. 매번 보는 하늘이고, 언제든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언제나 나에게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준다.

어쩌면 이것도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영향을 준 것일까? 그 순간 그곳에 하늘이 보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을 아주 많이 좋아한다. 어떤 계절이나, 특정한 날씨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보이는 모든 하늘을 좋아한다. 푸르스름하게 동이 차오는 이른 새벽의 하늘도 좋아하고, 구름이 하나도 없는 쨍한 한여름의 하늘도 좋아한다. 구름은 흰색이든, 회색이든, 그 모양이 어떻든지 간에 다 예쁘고 다 매력적이다.

비가 오는 하늘을 보는 것도,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해서,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우산과 함께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다녔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은 꼭 맞으니까. 그런 것도 면역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내내 감기를 달고 살던 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왠 만큼 비를 맞아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감기만큼은 정말 잘 걸리지 않는다.


“또 하늘을 보고 계시나요?”


희연이는 내 단짝이었다. 내가 그 일을 겪기 전부터, 내가 부모님을 따라 캐나다로 가겠다 했을 때까지, 우리는 거의 매일을 붙어 다녔다. 엄마는 어쩌면 그런 우리의 사이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데려갔던 이모도 엄마에게는 그런 친구였으니. 하지만 엄마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희연이에게 누구보다 잘 대해주었다. 아마 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소꿉친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친구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전화를 했을 때, 희연이는 쇼핑을 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고 했다. 너무 좋아서. 내가 돌아오는 것을 그렇게까지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안심하게 만들었다. 희연이는 나와 같은 대학에 합격을 했었다. 전공은 달랐지만, 희망하는 대학이 같아서 우리는 대학생활도 함께 할 것이라도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함께 하지 못했고, 희연이는 우리가 함께 희망했던 학교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희연이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고, 희연이의 전공도 우리 학교가 꽤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대학 생활을 함께 하지 못한 대신 대학원을 함께 다니게 되었다.


“또 하늘을 보고 계시냐고요?”


틈만 나면 하늘을 보던 습관은 아주 어릴 적부터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희연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늘을 보고 있는 나에게 항상 타박을 하기도 하고, 놀리기도 했지만, 나한테 옮아버린 건지, 어느 순간부터는 말은 그렇게 해도 항상 내 옆에서 함께 하늘을 봐주고 있다.


희연이와는 한국에 다시 돌아오면서부터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님께서는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하시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처분을 하지 않으셨다. 나의 증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은, 내가 그 사건을 겪은 뒤로 바로 이사를 하셨다. 길이 어둡지 않은 번화가와 가까운 아파트 단지, 1층으로 집을 구하신 것이다. 동의 위치도 관리실과 가장 가까워서 버스에 내리기만 하면 바로 관리실이 보이고, 관리실만 돌아가면 바로 우리 집 창문이 보이는 곳이었다. 이 집의 장점은 항상 부모님께서 데리고 다니던 초등학교 때까지는 잘 몰랐지만, 혼자 학교를 다녀야 하고, 학원이나 도서관도 다녀야 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던 부모님은 이민을 계획하면서도 이 집은 나의 몫으로 남겨 주셨고, 내가 따라간다고 했지만, 다시 돌아올 것을 아셨는지, 전세를 주고, 팔지는 않으셨다.

희연이는 내가 그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듣자마자, 부모님을 설득해서 나와 함께 살기로 했다. 비록 같은 동네이기 때문에 여전히 부모님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거지만, 그래도 그리 징글징글하다던 동생들과 떨어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잔뜩 신나 있었다.


“ 야 근데 너 스팀다리미는 끄고 나왔지? 아침부터 그 니트 주름 편다고 난리였잖아.”


“ 어? 내가 껐나? , 껐겠지?”


“그거야 나는 모르지. 아이고 이 칠칠아. 불나면 너 어쩔 거야?”


“그래도 아직 관리반장님이 전화를 주신 건 아니니까, 괜찮은 거 아닐까?”


희연이와 같이 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아무리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다고 해도, 참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이다. 나는 희연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덤벙대는 성격이었고, 깜박깜박하는 것이 많았다. 나의 이런 성격을 희연이가 몰랐던 건, 엄마가 어릴 때의 사건으로 나를 더 끔찍하게 챙기셨던 것 때문이었고, 거기에 원래 자상하시던 아빠가 외동인 나를 유난히도 예뻐하고 아꼈던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보통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거나, 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내가 희연이에 대해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훨씬 꼼꼼하고 다정하다는 것이었다. 희연이가 동생과 있는 모습들은 언제나 툴툴거리고, 투덜대는 모습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은 무뚝뚝하고 시크한 성격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외모를 가꾸거나 연예인들에게도 관심이 많아서, 조금은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희연이는 툴툴거림 뒤에 숨어있는 따스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항상 타박을 하면서도 나를 살피고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틱틱거리듯이 던지는 말투 속에도, 작은 것들마저도 세세하게 신경 써주는 섬세함이 있었다. 심지어 본인을 가꾸고 연예인을 좋아하던 모습마저도 많은 가족들과 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 함께 살기로 했을 때는 자신의 독립을 도와준 나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한 그녀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되어 오히려 내가 그녀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내가 집을 나오면, 내 몸 하나만 챙기면 되는 아주 심플한 삶이 펼쳐질 줄 알았어. 근데 이쯤 되면 이게 나의 업보인가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희연이는 엄마와 아빠만큼은 아니지만, 그 빈자리를 참 야무지게 채워주는 룸메이트고, 나의 외로움마저도 감싸주는 소중한 친구다.


그런데 나에게는 희연이와는 다르게 누군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신기한 일들이 생긴다. 가스 불에 무엇인가를 올려놓고 졸고 있다거나, 드라이기나 다리미 같은 것에 전원을 내리지 않았을 때, 심지어 밤새 준비한 수업 자료를 가방에 넣지 않고 나왔을 때도 나에게는 신기한 일들이 생긴다. 졸다가 깜짝 놀라 깨 보면 불이 꺼져있고, 드라이나 다리미는 분명히 내가 끄지 않았는데도 코드가 빠져있다. 심지어 집에 놓고 온 걸 확신하고 가방을 열어보면, 내가 넣지도 않은 자료가 들어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희연이가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희연이는 아니었다.


“내가 초능력자니? 어떻게 너보다 빨리 나왔는데, 그 교육자료를 넣어줘?”


착각일 수도 있고, 망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자라는 내내 이런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당연히 엄마가 해준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물어볼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또 일어났다. 마치 내가 항상 보고 있는 하늘처럼, 나와 무척 가까이 있는 판타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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