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희연이와는 전공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붙어 다니지 않는다. 특히, 대학원생의 신분은 워낙 할 일도 많고, 할 공부도 많아서, 보통은 아침에 각자 스케줄에 맞게 나갔다가, 학교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맞추기가 어려운 날이 많아서, 보통은 늦은 저녁에 같이 맥주를 한잔 하는 것이 하루 중에 둘이 보내는 시간의 다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만약 대학생이 되어서 이렇게 같이 살게 되고, 각자의 삶이 바빠서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들이 적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서운하거나, 같이 사는 의미가 없다고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서로가 잘 모르는 대학 생활의 공백이 있었고, 그 공백이 우리의 이 상황들과 서로가 느끼는 적절한 거리감을 불편해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스케줄을 확인하거나, 따로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다가 서로 겹치는 순간들이 오면, 아주 반갑게 그 상황을 맞이 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희연이가 유독 나를 신경 써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명이었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항상 부모님과 같이 살았고, 엄마는 내가 그 일을 겪은 후로는 회사를 그만두시고, 항상 집에 계셨다. 다행히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하시던 엄마는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으셨고, 그 사건으로 인해 약간의 대인기피증도 있으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래서 나는 항상 집에 돌아오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 늦은 시간이라도 버스에서 내리면 24시간 관리반장님이 계시는 관리실이 보였고, 그분들과 인사를 하고 코너를 돌기만 하면, 언제나 불이 켜있는 우리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도 엄마는 주로 집에 계셨기 때문에 항상 조명이 켜있는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늦게 되면 항상 아버지가 데리러 와주시고는 했다.
하지만 희연이와 둘이 살게 되면서 더 이상 항상 조명이 켜진 채 나를 기다려주는 집은 기대할 수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희연이가 먼저 그냥 항상 불을 켜놓고 다니자는 제안을 했지만, 우선 나의 트라우마로 인해 불필요한 낭비를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평범하게 살자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연이는 되도록이면 나보다 먼저 집에 들어오려고 항상 노력을 했고, 본인이 조금이라도 늦을 것 같으면 나보고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가자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희연이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무리하는 것 같지만 않으면 그녀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희연이가 중요한 세미나가 있어서 교수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지방에 내려갔다. 나에게는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첫 번째 날인 것이다. 새벽부터 캐리어를 들고나가던 희연이는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지 계속 내 걱정을 했다.
“오늘은 그냥 불 켜놓고 가. 관리비 더 내라는 말 안 할 테니까. 알았지?”
“알았어.”
“그리고 잘 때도 무서우면 불 다 켜놓고 자던가.”
“알겠다고요.”
“아님 차라리 정 안 되겠으면 그냥 나가지 말고 집에..”
“아가씨! 저 괜찮아요. 이제 정말 괜찮다고. 걱정 마요.”
솔직히 나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아주 오래전 일이고, 우리 집에는 창문이 아주 많다. 나는 창이 없는 좁은 공간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이지, 무조건 어둠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평소처럼 등교 준비를 했다. 새벽부터 나간 희연이와의 실랑이 때문인지, 잠에서 일찍 깬 덕에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우선 거실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한 나는, 아직은 좀 쌀쌀하지만, 맑은 공기를 쐬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안에 들어온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따뜻한 커피를 한잔 내렸다.
“아 좋다.”
오늘따라 날씨는 아주 맑았고, 공기도 상쾌했다. 오늘 하루 희연이가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란 게 없으니까.
평소처럼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나는 다행히 과에서도 특별한 일은 없어서,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미뤄놨던 공부들을 더하려고 도서관에 갈까도 했지만, 시간만 나면 걸려오는 희연이의 전화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희연아! 나 이러면 너 어디 못 보내!, 안 바빠? 왜 이렇게 전화를 하는 거야?”
“걱정되니까. 그렇지! 이모한테 전화하니까. 너 집에 혼자 있는 거 처음이라며?”
“그게 뭐! 제 나이가 몇인데요?, 내가 그런 것도 각오 안 하고 한국에 왔을 까 봐?”
“아는데.. 그래도 처음이니까 걱정돼서 그렇지. 내가 바로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안 오셔 돼요. 아무 일도 없거든요. 그동안 못 본 영화나 실컷 보다 잘 거니까. 걱정 말고 잘하고 오세요.”
“그래도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희진이랑 희동이 불러! 내가 말해놨으니까.”
“뭐라고요? 아가씨!”
“아 걔네들이 시끄러운 건 짱이잖아. 여하튼 잡생각을 싹 날려줄 거야!”
“괜한 청춘들까지 써먹지 마시고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끊어요.”
희연이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아까 엄마한테도 전화가 와서, 한 30분 동안 괜찮다는 말만 했으니까. 이상한 걸까? 아무리 어릴 적 큰 트라우마가 있다고 해도 24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집에 혼자 있어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
나는 평소와는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어차피 집에는 무사히 왔기 때문에, 평소처럼 거실에 조명만 하나 켜고, 거실에서 TV를 틀었다. 저녁은 무엇인가를 해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뭔가 오늘은 많이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피자를 시키기로 했다.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하고는 거실 소파에 누워 영화를 고르고 있었다. 시간이 이제 6시가 조금 넘은 것을 생각하니, 영화를 고르는 것보다 드라마를 하나 시작하는 것이 시간도 잘 가고 좋을 듯해서 드라마를 고르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이미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할 때, 결제를 다 하고 문 앞에 두고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겨 놓았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초인종을 누른 것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인터폰을 통해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헬멧을 쓴 채, 고개를 숙이고 뭔가 초조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순간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아 저기요. 피자배달 왔는데요.”
“아.. 예.. 그냥 두고 가주세요..”
그는 나의 말에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순간 너무 겁이 나서 그대로 인터폰을 통해 그를 보고 있었다. 그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그 초인종 소리에 너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뻔했다. 하지만 겨우 참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누.. 누구세요? “
“아.. 저.. 피자 덴요…아 그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예? 무슨? 저 결제 다 했는데요?”
“아.. 그게……”
“무슨 일이신데요…?”
“저.. 제가 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피자가 좀 쏠린 거 같아서요.
“예?”
“실은 이게 매장에 말씀하시면 제가 피자 값을 물어야 돼서… 혹시 괜찮으실까 해서요..”
“예?”
“제가 넘어지면서도 피자는 던지지 않고 잘 잡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뒤집어지지는 않았고요… 한쪽으로 조금 밀린 거 같기는 한데..”
나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를 향해 날카롭게 세웠던 경계가 별거 아니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고, 동시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 순간 잠시 떠오르던 모습이 있었다.
“혹시 현관문 들어오자마자 넘어지신 거예요?”
“예. 맞아요. 거기에 물기가 있었는지, 갑자기 미끄러졌어요.”
나도 들어오다가 넘어질 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넘어질뻔했다기보다는 그전에 무엇인가에 의해 밀려서 휘청거리는 바람에 넘어지지는 않고, 그곳에 무엇인가 쏟아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들어오자마자 경비실에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깜빡한 것이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거기서 넘어질뻔해서 경비실에 말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걱정 안 하셔도 되니까. 그냥 두고 가주세요. 괜찮아요.”
“아. 정말이요? 진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갈 때까지 헬멧을 벗지 않던 배달원은, 헬멧을 벗지 않은 채 연신 인사를 하고 그대로 피자를 두고 돌아갔고, 피자를 받아서 들어온 나는, 그가 왜 그렇게 곤란해하고 있었고, 왜 그렇게까지 고마워했는지를, 피자를 열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거의 반달이네..”
피자는 배달원 말과는 다르게 아주 많이 밀려서 거의 반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런 피자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처음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아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구겨진 피자를 먹으며, 나는 오래된 드라마를 한편 틀었다. 오늘은 왠지 진지하고 무거운 것도 싫었고, 머리를 쓰며 스토리를 쫓아 가는 것도 싫어서, 오래전에 봤던, 그래서 새롭지는 않지만 익숙해서 여전히 좋은 그런 드라마를 하나 골랐다. 피자를 먹으며 소파에 거의 눕듯이 기대서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잠이 쏟아졌다. 원래대로라면 일어나 씻고, 침대로 갔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조금은 게으르게 TV를 보며 잠이 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렇게 드라마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자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나 졸았는지, 드라마는 3부가 끝나고 4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 여기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 나오는데,”
순간,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일어났다. 짧은 시간에 숙면을 한 건지 정신도 개운했다. 마침 TV에서 나오는 부분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보니, 제대로 다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피자와 먹은 콜라의 달큰함 때문에 맥주를 한잔하면서 볼까도 생각했지만, 왠지 갑자기 따뜻한 민트 티가 마시고 싶어졌다. 나는 TV에 시선을 그대로 둔 채, 주방으로 가서 전기포트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전원을 누르고 다시 소파로 왔다. 잠시 후 나는 TV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집안에 불이 갑자기 모두 나갔다.
“뭐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참 그렇지 않은가? 마치 짠 것처럼 평소에는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 정전이 꼭 이런 날, 이렇게 혼자 있을 때, 일어나는 것.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까 이미 피자배달원 때문에 한번 놀라서인지, 지금은 생각보다 많이 놀라진 않았다. 그때 마치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민우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오빠?”
“야. 너 괜찮아? 혼자라면서?”
“엄마야?”
“그래, 이모가 너 혼자 있다고.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좀 가보라고.”
“무슨 일은 있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뭔데?”
“정전이 됐어. 우리 집에 그런 일 별로 없었는데. 꼭 이런 날 이래요.”
“뭐? 진짜 괜찮아?”
“괜찮다니까. 나 창문 있고, 넓은 데는 괜찮아. 걱정 마.”
“그럼 혹시 창밖에 가볼 수 있어?”
“어! 왜?”
“아파트는 정전되면 다 같이 되니까. 혹시 다른 집도 불이 꺼졌나 봐 봐.”
나는 민우 오빠의 말에 나는 창가로 가봤다. 밖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로 보이는 관리사무소부터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아파트들도 모두 빛이 밝혀져 있었다.
“다른 집은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럼 뭐 때문에 누전차단기가 떨어진 거 같은데, 지금 뭐 전기 쓴 거 있어?”
순간 나는 민트 티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이던 전기포트가 생각났다.
“전기포트.”
나는 바로 주방으로 가보니 전기포트에 물이 넘쳐서 옆에 있던 멀티탭에 물이 묻어있었다. 아마도 범인은 나인 것 같았다.
“전기포트에서 물이 넘쳤나 봐. 멀티탭에 튀어서 그런 거 같아.”
“뭐? 지금 거기다 뭘 하려고 했는데? 물이 넘치게 끓인 거야?”
“민트 티…”
“거기 한 2리터 들어가지 않아? 민트 티를 2리터씩 마셔? 원래?”
“아니야.. 어쩌다 보니 그랬어.”
“너도 참 여전하구나.”
민우 오빠는 나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 중 하나다. 엄마의 또 다른 절친 중에 한 명인 미숙 이모의 딸이었는데, 내가 그 일을 겪은 후로 미숙 이모도 큰 충격에 빠졌었다. 원래 가깝게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서 놀던 사이었는데, 미숙 이모네가 먼저 캐나다로 떠났다. 엄마에게 이유를 듣지는 못했지만, 크면서 생각한 것은 있다. 아마 이모는 그 사건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 미안했던 것 같다. 세명이 단짝이었던 엄마와 이모들이었기에, 그녀가 나쁜 맘을 먹었을 때, 후보는 당연히 나와 오빠, 둘이 었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그 일을 겪었을 때, 미숙 이모는 엄마만큼 충격을 받았고, 나에게 말은 안 했지만. 미안하기도 하고 나를 보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아니었다면, 민우 오빠였을 테니까. 그렇게 미숙 이모네는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갔을 때가 되어서야, 서로 웃으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우리는 미숙 이모네와 아주 가깝게 살았다. 학교도 오빠가 알아봐 줘서 같이 다녔기 때문에, 부모님이 없는 학교에서는 나의 보호자가 되어준 사람이었다. 그러던 오빠는 학위를 마치고, 나보다 1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고, 내가 다니는 학교에 시간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너 혹시 누전차단기 올려본.. 적,.,? 없겠지?”
“그렇지..”
“그럼 내가 지금 가면 한 50분 정도 걸릴 거 같으니까..’
“아니야. 괜찮아. 그냥 알려줘. 뭘 와.”
“아니 나 어차피 일도 다 끝나서..”
“그냥 좀 알려주면 안돼요? 저도 여기서 이제 살아야 하는데…”
나는 혼자 살아가기 위해 한국에 왔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의 보호 속에서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우선 보통의 아파트라면 현관 쪽에 신발장 안이나, 거울 뒤에 있을 거야. 가봐.”
나는 민우 오빠의 말에 따라 현관 쪽으로 갔고, 오빠의 말에 따라 신발장부터 열어봤다.
“여기는 없는 거 같은데..”
“그럼 혹시 거울 있어? 신발장 앞에?”
“어! 있지! 전신 거울”
“그 거울 밑쪽을 보면 손잡이 같은 게 있을 거야. 그럼 열 수 있어.”
“거울이 열린다고?”
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면서 저 거울 뒤에 벽이 아닌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서 오빠의 말을 따라서 전신 거울의 밑부분을 만져봤다. 그리고 그곳에는 진짜 손잡이처럼 생긴 홈이 있었고, 그걸 당기니 거울이 움직였다.
“우와! 진짜네?”
“그럼 진짜지! 너 그럼 그 집에 사는 동안 한 번도 그걸 안 열어본 거야?”
“그렇지! 이런 건 어차피 아빠가 하니까…”
“참나. 거기 배전함 보이지.”
“어!”
“그거 열어보면 스위치가 OFF로 되어있는 게 있을 거야.”
“어! 맞아!”
“그거 올리면 들어오니까. 괜찮을 거야.”
“응 알았어., 오빠 대박.”
나는 오빠랑 전화통화를 끊고, 오빠가 시키는 대로 스위치를 올렸다. 그런데 스위치는 올라가자마자 바로 떨어지곤 했다. 몇 번을 해도 스위치는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순간 당황을 했고, 다시 오빠한테 전화를 하려는 순간,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초인종 소리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때 놓친 전화기가 저 거실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나는 아주 많이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진정을 하고 다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현관 앞에 센서등이 꺼지면서 모든 공간이 깜깜해졌다. 나는 몸이 굳고,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순간, 나에게는 공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뒷면에는 현관문이 있었고, 왼쪽에는 닫힌 신발장이, 오른쪽에는 전신 거울이 있었다. 그리고 전면에는 거실로 향하는 복도였지만, 거실도 주방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저 멀리에 있는 벽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어두운 좁은 방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떡하지?"
그때 갑자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꽝! 꽝! 꽝!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잠시 후 또다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들렸다. 꽝! 꽝! 꽝! 나는 너무 겁이 났지만, 누군가 그곳에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차마 인터폰이 있는 곳으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현관문에 기대앉은 채로 그 사람에게 물어봤다.
“누.. 누구세요?”
인터폰 소리가 아닌 문 건너편에서 나는 소리인걸 눈치챈 그도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저기요.. 제가 할 말이 있어서요..”
순간, 나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아까 그 피자배달원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두드리는 소리로 조금 진정됐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내가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그는 다시 꽝! 꽝! 꽝!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예. 말씀하세요.”
나는 너무 겁이 나고 떨렸지만, 지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그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너무 무서워서.
“제가요. 일을 관뒀어요. 다음 달까지는 어떻게든 하려고 했는데, 오늘..짤렸어요.”
“예…?”
“다른 집에 배달을 갔다가 일이 좀 있었거든요. 분명히 제 잘못은 아닌데, 저보고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들은 말만으로도, 그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도 가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손님은 아무 잘 못 없는 거 알아요. 아뇨. 제가 잘못했죠. 아까는 그냥 넘어갔지만, 그 피자 아마 엉망이 됐을 거라는 거 알았으니까요.”
“아.. 예..”
“그래서 미안하단 말 하려고 왔어요. 원래는 다음에 올 때, 주방에 말해서 스파게티라도 하나 더 가져다 줄려고 했는데.. 제가 일을 관두게 되었으니까요.
“아.. 예..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지금 내가 마음이 좀 그래서요. 그런데 오늘 손님이 저한테 제일 친절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안 되는 거 아는데, 이러고 싶었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그는 마지막 말을 하고 나서 나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한 10분 정도를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나는 왠지 갑자기 마음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 작은 행동에 나를 찾아왔고, 나에게 어떤 위안을 받고 싶어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그가 그렇게 10분을 울고 떠나는 그의 소리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그가 떠나자 다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현관문 너머의 그가 나에게도 위안이었나 보다. 그의 울음소리 덕에 아무렇지 않았던 내가, 그가 떠나자마자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을 줄 알았다. 이제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또 갇혀있다. 내 집. 내 신발장 앞에서. 피자 배달부가 떠나는 순간부터 나는 다시 또 갇혀버린 것이다.
“어떻게 해…..”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센서등이 켜진다는 것을, 조금만 기어가면 휴대폰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숨통은 점점 막혀오기 시작했고, 나는 두려움에 점점 더 몸의 떨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 일이 겪은 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공포와 마주한 적은 없었다. 내 손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조금씩 내 심장을 쥐어짜고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죽는 건가?
그때,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내가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멜로디와 소리였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나의 모든 시간이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놓은 듯했다.
“안녕”
아는 목소리였다. 아니 아는 목소리 같았다. 그때 들었던 그 남자아이의 목소리. 내가 지금 들은 목소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나에게 그 목소리는 그 남자아이의 목소리 같았다. 그 목소리는 현관문 건너편에서 들리는 듯했다.
“안녕”
누구세요?라고 물으려고 했다. 어떻게 온 거냐고? 어떻게 알았냐고?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볼 말이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정작 입에서 나온 건 단 한마디였다.
“안녕”
나는 거짓말처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고, 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어나 밖에 누가 있는지. 열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날처럼. 나는 그저 BGM처럼 들려오는 그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있었다. 그저 가만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