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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14. 2021

해시계-3

세 번째 장편소설

민우


나는 그렇게 한참을 신발장 앞에 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멜로디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다만,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때, 또 초인종이 울렸다.


“선아. 이선!”


민우 오빠의 목소리였다.


“선아 집에 있니?”


“어 잠깐만.”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문을 열어줬다. 오빠는 나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를 부축했다.


“야. 괜찮아?”


“어 괜찮아. 왜 왔어. 지금 이 시간에.”


오빠는 나의 말은 듣지도 않고 집안부터 살폈다. 여전히 들어오지 않는 조명과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폰을 보고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우선 거실에 좀 있자. 방도 어두울 테니까. “


오빠는 나를 부축해서 거실 소파에 앉혔다.


“괜찮아? 진짜?”


“어 그냥 좀 기운이 빠져서 그래. 오빠 안 왔어도 곧 일어나서 오려고 했어.”


“물 한 잔 줄까?”


“어. 고마워.”


오빠는 물을 가지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서 나에게 가져다줬다. 그리고는 다시 가서 전기포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왠지 이럴 거 같았어, 이게 문제가 되는 것부터 처리하고 누전차단기를 올려야 하는데, 이건 그대로 있으니까 누전차단기가 다시 안 올라가지. 전화 끊고 나니까 그 생각이 나더라고. 그래서 바로 전화했더니 전화를 안 받고. 미안하다 오빠가 처음부터 잘 알려줬어야 하는데.”


오빠는 나에게 말을 하면서 물기가 있는 멀티 탭을 키친타월 위에 뒤집어 놓고, 물이 가득 담겨있는 전기포트는 물을 버리고 뒤집어 놨다. 그냥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고민 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는 그대로 현관으로 가서 누전차단기를 올렸고, 거짓말처럼 거실의 조명이 켜지고, TV도 켜졌다.


“보통 냉장고는 전원의 배선이 따로 되어 있어서 다른 데가 다 떨어져도 꺼지진 않았을 거야., 봐봐 그대로네. 그러니까 다른 걱정은 더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오빠.”


“어?”


“난 냉장고는 생각도 안 했어.”


 나의 말에 순간 정적이 되었던 분위기는 나와 오빠가 동시에 웃음이 터지면서 달라졌다.


“그렇지! 그래. 왠지 네가 냉장고 걱정을 하고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


둘이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서는 오빠도 소파에 앉았다.


“뭐 마실 것 좀 줄까?”


“민트 티?


“놀리지 마.”


“됐어. 민트 티도 카페인이 있어서 지금 마시면 안 좋아. 그냥 아까 물 마셨으니까 됐어.”


“여하튼 고마워. 오빠 아니었음. 아직도 깜깜하게 있었을 텐데.”


“됐어. 무슨,…


오빠는 순간 망설이는 듯하다가 그냥 말을 이어갔다.


“근데 아직 그런 거지?”


“나도 이제 괜찮겠지 했는데, 갑자기 확 이상한 느낌이 오면 감당이 안되더라고,”


“꼭 억지로 빨리 괜찮아지려고 노력하지 마. 그냥 시간이 더 필요한 걸지도 모르니까”


나는 어떻게 괜찮아진 건지, 아까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다 말하자니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이고, 빼고 말하려니 너무 할 말이 없어져서.


“그래도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아서…”


오빠는 참 세심한 사람이다. 지금도 내가 거실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쿠션을 무릎 위에 놓아주고, 담요도 가져다주었다. 우리 집에 참 오랜만에 와보는 것인데도, 마치 어제도 왔던 사람인 것처럼 모든 걸 자연스럽게 챙겨준다. 생각해보면 오빠의 존재는 나에게 항상 그랬다. 내가 갑자기 캐나다로 갔을 때도, 오빠는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던 것처럼 나를 위한 것들을 하나씩 해결해주곤 했었다.


“오빠, 이렇게 와도 돼? 요즘 진짜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바쁘지. 진짜 바쁜데, 그렇다고 여길 어떻게 안 와 봐.”


“그럼 이제 됐으니까. 빨리 가봐.


“걱정 마. 혹시 몰라서 다 바리바리 싸왔으니까.”


“뭐? 자고 가려고?”


“아니 못 자고 가죠! 할게 너무 많아서.”


“아. 괜찮아? 여기서 해도?”


“그건 상관이 없는데, 대신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해도 될 말인가 싶기는 한데..”


“뭔데?”


“ 나 이번 학회가 진짜 중요한 거거든, 그래서 지금 한 달째 밤새면서 준비하는데도 뭔가 진척이 안돼.”


“아 그래? 뭐 도와주는 사람 없어?”


“어. 나야 뭐. 조교도 없는 시간 강사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


“네가 나 좀 도와주는 건 어때? 내가 알바비는 거하게 쳐줄게, 어차피 주 전공은 달라도, 너도 대충 흐름은 알잖아.”


“그렇기는 한데. 대학원 1학년이 도와줘도 되는 수준이야? 이번 학회가?”


“아니지. 그게 아니라, 실은 자료 조사하고, 관련 참고 문헌 조사하고, 기논문들 대조하고, 이런 거 하다 보니까. 정작 내 거는 손도 못 대고 있어서…”


“벌써 싸들고 왔다는 말은 오늘부터 바로 하자는 속셈인 거야?”


“아니야. 오늘은 아니지. 그냥 온 김에 물어보려고 한 거지.”


나는 기운이 좀 돌아와서 그런지, 오빠가 좀 곤란해하는 모습도 재미있었고, 장난도 좀 치고 싶었다.


“근데. 내가 이렇게 몸도 좀 그렇고, 대학원도 이제 적응해야 하다 보니, 공부할 것도 많고 그런데, 막 이렇게 갑자기 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밤늦게 달려왔다는 핑계로 부탁을 하고 하니까.. 거절도 못하고… 그러니까. 좀 해줘야 할 것 같기는 하고…


하지만 오빠는 이미 내 장난을 눈치챈 듯했다. 곤란하던 표정은 이미 미소로 쓱 바뀌고 있었고, 같이 장난을 받아주려는 듯 장난기가 퍼지고 있었다.


“각설하고,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오빠의 되지도 않는 드라마 주인공의 흉내로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무슨 부탁을 하던지 들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웃음으로 동의를 해주었다.  


“아. 진짜!”


“좀 도와줘. 이제 2주 남았으니까.”


“아이고 참. 그럼요. 도와드려야죠. 우선 자료들부터 가지고 와.”


“야. 오늘은 좀 쉬어.”


“괜찮습니다. 아까 좀 자서 그런지. 정신이 말짱해. 할 만큼만 할게요.”


오빠는 못 이기는 척 주차장으로 자료를 가지러 갔고, 나는 식탁에 일을 하면서 먹을 만한 주전부리와 커피를 타 놓았다. 오빠는 정말 싸들고 왔다는 표현에 어울리게 어마어마한 양의 책과 자료를 들고 왔고, 그 덕에 우리 집은 오빠의 사무실이 된 듯했다.


“근데, 나 좀 이상한데?”


“뭐가?”


“지금 시간에 너무 이상한 사람이 돌아다녀서.”


“뭐? 누구 봤어?”


“아니 그냥, 내 걱정일 수는 있는데, 나갈 때는 현관 앞에서 누 앉아 있기래, 뭐지 했는데, 짐 들고 올 때는 보니까. 저기 창문 쪽 벤치에 앉아 있더라고.”


“누가?”


“몰라. 무슨 검은색 긴 야상 같은 걸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어. 체구도 애매해서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하고,”


“뭐.. 이 아파트 사는 사람이겠지?”


나는 순간 그 오토바이 배달원이 생각났다. 비록 내가 인터폰을 통해서 본모습으로는 아무것도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까 그런 일이 있었고, 펑펑 울다 간 상황이 생각나니 왠지 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빠는 생각보다 침착한 나한테 좀 놀란듯하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근데 제일 이상한 게 내가 짐이 많아서 차에 왔다 갔다 하는데, 나를 뭔가 쳐다보는 기분이 들더라고, 모자를 써서 얼굴이 안 보이는데도, 뭔가 모자의 각도가 나를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아서, 소름이 좀 돋더라.”


“아. 진짜?”


“뭐. 동네에 소문 없었어? 이상한 사람이 돌아다닌다고?”


“나야 모르지, 내가 동네 사람들하고 교류가 있지는 않아서, 나중에 희연이 오면 물어봐야겠다. 희연이 어머니께서 이 동네는 워낙 꽉 잡고 계셔서”


나는 그런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오빠가 말한 창문 쪽을 보게 되었다. 우리 집은 1층이라 원래는 두꺼운 커튼을 쳐야 했지만, 희연이의 배려로 우리는 그냥 시폰 커튼만 쳐놓고 살았다. 다만, 창문 앞쪽에는 시야를 가려줄 만큼의 나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우리 집을 훔쳐보기는 쉽지 않다. 뭐. 그래도 여자들만 사는 집이다 보니, 희연이와 우리는 모두 집에서도 옷차림을 조심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런데 오빠의 말 때문인지 그쪽을 바라보자 정말 오빠의 말처럼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무 틈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물체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처럼 보이고, 아니라고 하면 아닌 듯 보였다.


“선아?”


나는 오빠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


“왜 뭐가 있어?”


“아니야. 있기는 뭐가 있어.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보게 되잖아.”


“미안해.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오빠는 가볍게 사과를 했지만, 그 역시도 자꾸 그쪽을 신경 쓰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 말은 하지 않고 가끔씩 창문을 보면서 일을 하게 되었고, 해가 뜰 때쯤 되어서야. 겨우 신경 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뜨고 나서야 우리는 목표했던 분량을 마칠 수 있었고, 피곤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쉴 수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도 오후에 강의가 있어서 좀 쉬었다 가야겠어요.”


“그래, 집에서 몇 시간이라도 푹 자고 가!”


“그래도 네 덕에 이제 좀 살 것 같다. 나 자료는 여기 두고 갈게. 어차피 여기서 하는 게 너도 더 좋을 듯하니까.”


“어? 교수님? 이렇게 은근히 사무실까지 차리시는 겁니까?”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고 있었다. 오빠가 내가 걱정돼서 이곳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그 검은 옷의 사람을 신경 쓰고 있었고, 많이 피곤해서 잊은 척했지만, 정체를 알지 못하면 계속 찝찝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냉장고 좀 팍팍 채우면 되겠습니까?”


“콜!”


오빠는 그렇게 자료들은 그대로 둔 채, 집으로 갔고, 나는 간단히 식탁 정리만 하고 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오빠한테 전화가 왔다.


“선아. 뭐 대단한 건 아닌데,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가면서 그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에 가봤거든. 근데 거기에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거야. 마치 누가 거기서 밤이라도 새운 것처럼.


“뭐? 정말?


 “혹시 모르니까. 희연이 오면 꼭 경비실이랑 동네 사람들한테 좀 물어보라고. 여하튼 나도 오늘부터는 퇴근하면 그쪽으로 갈 테니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나는 오빠의 전화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누군가 내 주위를 맴돈다는 느낌은 예전부터 자주 느꼈었지만, 지금 이 느낌은 그것과는 다르게 공포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진짜. 그 피자 배달원일까?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수록, 인터폰 화면에 불안해하면서 있던 그 헬멧 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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