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Dec 16. 2021

해시계-4

세 번째 장편소설

핑계


요즘 민우오빠는 우리 집으로 퇴근을 하고 있다. 내가 집에 혼자 있던 날부터 시작된 아르바이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때 목격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날 저녁에 희연이가 오자마자 나는 전날 있었던 이야기 중에, 희연이가 걱정하지 않을 만한 부분들만 편집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연이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고, 나름 동네에서 마당발이신 엄마를 통해서 정보를 구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최근에 그와 관련된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신고나, 사건이 있지는 않았다고 하고, 희연이 엄마의 말에 따르면, 우리 집의 위치가 관리실 바로 앞이라 그런 수상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우리집을 노리는 것은 꺼려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어쩌면 오빠의 입에서는 더 찝찝했을 수 있다. 본인은 직접 목격한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고 하고, 심지어 관리실 근처니 진짜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거기서 우리 집을 훔쳐볼 이유는 없다는 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오빠가 더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난 저기서 우리를 훔쳐보는 거나, 거실에서 우리를 감시하는 거나 비슷한 거 같은데?”


며칠 사이에 조금 친해진 희연이는 민우 오빠에게 자주 장난을 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오빠는 누가 걱정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기서 하는 게 편해서 그런 거라고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희연이도 결국은 민우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마음인 것 같았다.


학회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급해진 오빠는 결국, 희연이도 끌어들이게 되고, 우리는 매일 밤마다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을 지새우는 사이가 되었다.


“이쯤 되면 우리 이름도 넣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필요해? 그럼 넣어줄게. 근데 그쪽 교수님은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 괜찮겠어?”


“그러니까요? 이게 뭐예요? 우리 교수님 맘에 들기도 바쁜데, 남의 교수님 수발이나 들고, 아르바이트비 많이 안 주기만 해 봐라.”


“슬슬 반말까지 하시겠다 그거죠?”


그렇게 며칠을 밤마다 붙어서 일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사이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지켜보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의 존재는 점점 잊혀 갔다.


학회를 이틀 전에, 우리는 집에 모여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희연이에게 우리의 상황을 들으신 희연이 어머니가 우리에게 간식을 싸주신다고 해서 희연이는 잠시 집에 가 있었고, 나는 오빠와 단 둘이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었다.


“야. 그래도 어느 정도 정리가 좀 됐다.”


“그러니까? 대단하다 오빠. 하다 보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됐어.”


“같이 한 거지, 니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지금도 그냥 내 머릿속에만 있는 거였지 뭐.”


“여하튼 고생했다. 고마워.”


“내가 이번 학회 끝나면 진짜 맛있는 거 쏠게.”


“그래,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자!”


“그래. 다 같이도 먹고, 둘이도 먹자.”


나는 순간, 너무 어색했다.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냈던 친한 오빠였지만, 성장기에 떨어져 있어서 그랬는지,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만난 민우 오빠는 근사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항상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대신해주고 배려해주던 오빠의 모습은 캐나다에서 나를 항상 설레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오빠를 남자로 보 시작했을 때, 오빠에게는 너무 예쁜 여자 친구가 있었다. 그 여자 친구도 나의 존재를 굉장히 신경 쓰여하며 나를 경계했지만, 오빠는 몇 번이나 나를 친동생 같은 존재라고 말하곤 했었다.


“진짜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선이는 그냥 내 친동생이나 다름없어. 그런 관계가 절대 될 수 없는 사이라고,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그걸 세상 모든 사람이 알만큼 이렇게 티가 나는데,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 난 너밖에 없어.”


내가 오빠에 대한 마음이 아주 많이 커가고 있을 때, 학교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오빠의 말이었다. 나는 오빠의 ‘그런 관계가 될 수 없어.’라는 말보다, 여자 친구를 향해 너밖에 없다고 말하는 오빠의 말에 더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그 뒤로 나를 좋다고 했던 잘 기억에도 남지 않는 한국인 유학생과 연애를 했고, 그 핑계로 오빠의 곁에서 조금은 멀어지게 되었다.


그 뒤로 오빠와 내가 어떤 사이로 지냈는지는 딱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내가 아는 한 오빠는 캐나다에 있는 동안 계속 그 여자 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나는 얼마 가지 않아 헤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나는 오빠가 한국에 간다고 했을 때도, 내가 한국에 왔을 때도 오빠의 여자 친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래서 저 말이 나에게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한 것이었다.  


“어허. 누구 혼사 길을 막으려고 밥까지 단둘이 먹어요? 이렇게 금남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문 것도 모라라서.”


나는 오빠 말을 핑계로 오빠의 연애사를 물어볼까도 했지만, 그냥 안 하기로 했다. 분명히 지금은 그때에 비해 오빠를 향한 나의 마음이 많이 정리된 이유도 있었고, 이제 와서 다시 오빠를 향한 나의 마음을 꺼내는 것이 막상 겁이 나기도 했던 것 같다. 오빠는 나의 대답에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듯하다가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희연이가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엄청난 양의 음식이 들려 있었다.


“야? 어디 잔치 해?”


“나는 우리 엄마가 날 부를 때부터 알고 있었어. 진짜 놀라운 건 이것도 내가 반은 고 온 거라는 거야.”


“야. 우리 저녁을 안 먹었었나? 간식이라고 하신 거 아니야?”


 “간식 맞아요. 종류가 떡볶이, 순대, 튀김, 쫄면, 만두, 피자, 치킨, 어.. 그리고 뭐가 있더라?”


“아. 진짜 미쳐.”


희연이 어머니는 종갓집의 맏며느리다. 육 형제가 있는 집에 첫째인 희연이 아버지는 대를 이어야 했다. 그래서 희연이의 어머니는 딸을 둘이나 낳고도 기어코 희동이를 낳아야 했고, 가족이 많아졌다. 기본적으로도 다섯 식구의 살림을 꾸리다 보니 뭐든지 많이 사고 많이 만드셔야 했고, 일 년에 4번이나 되는 제사 때마다 대 식구의 음식들을 마련하시는 것이 습관이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희연이 어머니의 손은 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먹을 만큼 먹어. 나머지는 어떻게든 처리할 테니까.”


“버리게?”


“아니요. 우리 희동이 부르면 이거 혼자 다 먹어요. 요즘 먹방 BJ 되겠다고 설치는 중이라 충분히 처리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뷔페 같은 야식을 먹어야만 했고, 거의 다 먹은 뒤에 최종 마무리 작업을 했다. 마무리라고 했지만, 결국 일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꽉 찬 배에 피곤하기까지 하자 모두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를 모두 잠에서 깨운 것은 오빠의 전화 벨소리였다.


“뭐? 진짜? 지금?”


오빠는 너무 심각하게 전화를 받았고, 통화가 길어질수록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오빠, 왜? 무슨 일 있어?”


“나 원영이 아버지께서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데, 이 놈이 외동에 친구도 많이 없는 놈이라, 내가 좀 바로 가봐야 할거 같거든,.”


“근데 그럼 오빠 학회는?


“어제 돌아가신 건데, 사고처리 때문에 이제야 장례식장을 잡았나 봐. 발인은 내일 새벽에 한다고 하니까. 내가 발인까지만 보고 바로 가면 될 거 같은데,”


“그래?”


“그래서 말인데? 니들이 나 대신 좀 먼저 가 있으면 안 될까? 어차피 준비는 다 끝나서 행사 준비만 좀 체크해주고 하면 될듯한데..”


“어?. 난 안 되는데, 우리 교수님도 다른데 학회 있다고, 대학원생들 다 참석하라고 했거든요.”


너무 조심스럽게 부탁을 하고 있는 오빠는 희연의 말을 듣고 오히려 미안해하고 있었다.


“난 괜찮기는 한데… 혼자도 괜찮을까?”


오빠는 나의 말에 순간, 고민을 하는듯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상황도 너무 급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했다.


“선아. 그럼 진짜 미안한데 부탁 좀 할게. 내가 담당자들하고는 다 연락해 놓을 테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돼. 방도 너 걱정 안 할만한 대로 바꿔달라고 할게. 자료는 내가 아까 다 실어놨으니까. 이거 타고 가고. 나는 어차피 가까워서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오빠는 나의 손에 자신의 차키를 쥐어주었다.


“어. 알았어.”


“그럼 진짜 미안해. 부탁할게.”


오빠는 정신없이 옷을 챙겨 뛰어나갔다. 나는 민우오빠 친구어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너무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마치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빠가 저렇게 허둥지둥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오빠에게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 것 같았다.


“진짜 친한 친군가 봐.”


“어. 맞아. 우리처럼.”


“뭐래?”


희연은 장난치듯 정색을 했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아마 본인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희연의 폭풍 걱정이 시작 됐다. 너 진짜 혼자 갈 수 있냐? 내가 못 봐서 그러는데 면허는 있냐? 그냥 내가 교수님한테 찍혀도 되니까 같이 갈까? 등등 그녀가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걱정과 모든 경우의 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 이번엔 진짜 괜찮을 거야.”


무엇이 나에게 이런 마음을 들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막연한 자신감이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희연이는 나를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얼마 전에 큰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는 나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내가 혼자 지내는 두 번째 밤은 홍성의 한 호텔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