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동이 트고 나서야 잠이 들었던 희연과 나는 정오가 지나서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희연이는 교수님의 학회가 내일이지만, 지역이 서울이어서 오늘 오후 늦게나 나가면 된다고 했고, 나도 서둘러서 가려고 했지만, 민우 오빠가 전화가 와서 학회 준비는 다 마쳤으니 오늘 저녁에 가서 미리 자료 확인이랑, 파일 체크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관계자에게 말을 해놔서 조금 늦게 가도 된다고, 푹 자고 천천히 출발하라고 했다. 그 덕에 나는 충분히 자고, 허기도 채우고 여유 있게 출발할 수 있었다. 학회가 있는 홍천까지는 내비게이션 상으로 2시간 30분이 찍혔다. 나는 이것저것 좀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3시가 넘어서야 출발 준비를 마칠 수가 있었다.
“아! 또라이 새끼!”
“왜 또?”
“아. 또라이 같은 조교가 어제 분명히 한 5시쯤 모여서 정리만 하고 저녁이나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 전화 와서 왜 3시가 넘었는데 안 오냐고, 특히, 1학년은 미리미리 와있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잖아. 아! 미친놈. 그럴 거면 미리 3시까지 오라고 하던가!”
“조교들이 다 그렇지 뭐. 빨리 가. 어서.”
“아! 또 언제 가냐고! 지금 가도 4시는 넘는데.”
“내가 데려다주고 갈게!’
나는 희연이를 향해 민우 오빠의 차키를 돌리며 보여줬다. 희연의 표정은 순간 아주 밝게 변했다가 다시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 안돼. 너 늦어! 지금도 가다가 좀 헤매면 바로 깜깜 해질 텐데.”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헤매긴 뭘 해메! 나 캐나다 베스트 드라이버였어!”
희연은 딱히 신뢰가 가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본인의 상황이 너무 급해서 인지 순순히 받아들이고 내 차를 타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시간은 넘게 걸릴 수도 있지만, 차로 가면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우와. 49분.”
“왜? 그래도 지하철 타고 온 거보단 빨랐잖아.”
“택시보단 느렸고요!”
“어허! 아가씨가 낭비가 심하네! 택시라니요!”
“예. 예. 죄송합니다. 야! 너 그보다 조심히 가!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또 지금처럼 여기저기 헤매지 좀 말고, 내비게이션 언니 말에 잘 집중하고 잘 듣다가,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야!”
“네.네. 알겠습니다!”
한국에서의 운전이 처음이었던 나는, 희연이의 목적지까지 가는데 2번이나 길을 잘 못 들어서, 시간이 늦어졌고, 길을 잘못 들었을 때마다. 희연이는 계속 나에게 ‘여기서 내릴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뭐. 결국은 지하철보다는 빠르게 도착했고, 충분한 경험도 쌓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홍천까지 가는 길은 서울 시내처럼 복잡한 길도 아니니, 큰 걱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홍천을 가기 위해 시내를 빠져나오는 구간에서, 한강이 보이는 곳의 복잡한 도로에서, 톨게이트로 빠지기 위한 구간까지, 내 귀에는 계속 같은 소리가 들렸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결국, 나는 두 시간을 더 넘기고서야 겨우 서울을 빠져나올 수 있었고, 그렇게 고속도로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라탄 나는 그때서야 휴게소를 들려서 화장실도 해결하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출발한 나는 이제 좀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급하던 화장실도 해결하고 배도 든든해서 나른해진 건지. 졸음이 쏟아지며 또 다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겨우겨우 졸음을 이겨가며 홍천 IC를 빠져나와서는, 역시나 또 바로 길을 잘못 들어섰고, 결국 또 내비게이션 언니의 차가운 질책을 들어야 했다.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들어선 곳은 이미 외길이었고, 후진으로 들어온 길을 다시 나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이 길을 하염없이 가고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거의 다 왔는데….”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는데, 나의 불안함은 길을 잃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뭔가 깜깜한 어둠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증상은 확실히 심리적인 것이어서, 분명히 창이 있는 자동차고, 창밖으로 하늘까지 보이는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환경과 길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은 점점 나에게 갇힌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
그 순간 나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 길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분명히 길을 돌리거나 다른 길로 연결되어 있는 곳이 나와야 할 텐데, 그저 나는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끌려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안함이 마음속에 찾아들기 시작하자, 공포는 한순간에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땀으로 시작된 나의 신체적 변화는 결국, 호흡이 가파지고, 손이 떨리고 다리가 굳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내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차를 멈추고 핸들에 기대서 엎드렸다. 떨리는 손을 멈춰보기 위해 핸들을 있는 힘껏 잡고 있었지만, 떨리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해.”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고개를 드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벽으로 느껴질 것만 같아서 눈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공포는 공포를 불러들여 나는 점점 더 증세가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손만 내밀어도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데, 그 조금의 움직임도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엎드린 채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곧 어쩌면 혹시 나에게 도움을 주러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만으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 용기가 생겼다.
내가 천천히 눈을 들어 창을 바라보자, 누군가가 내 창에 얼굴을 아주 가까이 대고, 썬텐으로 잘 보이지 않는 차안을 보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마자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은 나를 더 놀라게 만들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을 때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악~!!”
“저기요! 저기요.”
나는 너무 놀라서 소리를 계속 지르고 있었고, 그런 나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당황한 듯 창 밖에서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잠시 후 내가 좀 진정하고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에 시선이 좀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혹시 내가 실수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급하게 문을 열고 내렸는데, 그 상황을 인지 하지 못한 그 사람은 갑자기 열리는 차문에 정강이를 부딪쳤고, 고통에 어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어떡해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그에게 어쩌지 못하고 있었고, 그는 아픈 표정을 억지로 감추며 웃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 이미 아주 많이 아프다는 티가 나고 있었다. 나는 순간 그의 그런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풉”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웃음에 나는 많이 당황했고, 그는 오히려 내 웃음에 반응하여 더크게 웃고 있었다. 우리 둘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한참을 웃었고, 웃음이 멈추자 그가 나에게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가요?”
나는 그 순간 그가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 미숙한 사람이어서 그런지, 막상 이런 상황에서 시각장애인을 만나고 나니, 그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뭔가 이상하고, 어색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답을 해버렸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라니, 괜찮다니, 나는 누가 봐도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그는 그런 나에게 본인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움을 주겠다고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의 장애만으로 판단을 해서 괜찮다는 대답을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의 마음을 모두 읽고 있는 것처럼, 아주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저는 시각장애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 제가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그쪽 입장에서는 오히려 제가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완전한 실명은 아닙니다. 시력이 아주 많이 안 좋아서 30cm 이내에 있는 사물만 어느 정도의 확인이 가능하고요.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의 경우는 일반적인 분들이 불투명한 유리창을 앞에 두고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살아온 지 꽤 오래된 사람이라, 운전을 대신해드릴 수는 없어도, 길 정도는 안내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가요?”
나는 지금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더 이상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의 도움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한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저는 지금 누군가의 도움이 너무 많이 필요합니다. 실례가 될수도 있겠지만,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그에게 내가 가야 하는 목적지를 말했다. 그는 다행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자신이 안내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운전을 할 수는 없으니, 괜찮으면 걸어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이곳의 온 목적이 당연히 그 차에 있는 자료들과 발표 준비였기 때문에 차가 꼭 필요하기는 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차를 고집부릴 수는 없었다. 그냥 나중에 호텔에 부탁해서라도 다시 가지고 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가 가던 방향으로 손을 뻗으며 저쪽으로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은 아무런 조명도 없는 어두운 산길이었고, 나는 만약에 혼자 가라고 하면 절대 혼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어두운데요?”
“다행이죠?”
“예?”
“저한테는 그 차이가 크지 않으니까 말이에요.”
“아. 죄송합니다.”
“농담인데 그렇게 정색하면 제가 더 민망해요. 어두워도 저는 길을 알고 있어서 괜찮아요. 그러니까 저만 잘 따라오시면 됩니다.”
나는 순간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 사람의 등장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증상들은 모두 좋아졌지만, 그래도 어두운 산속의 좁을 길을 조명도 없이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많이 겁이 나는 건 어쩔수 없었다.그래서 아무리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나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고, 나의 손에는 땀이 흔건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손이 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어둠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해서. 그래서 나는 핑계를 찾아 그의 손을 잡았다.
“너무 어두우니까요. 길을 잘 알아도 넘어질 수는 있으니 이렇게 잡고 가요. 괜찮죠?”
“예. 괜찮습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조금은 당황한듯했지만, 그래도 이내 평정심을 가지고 그 어두운 길로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나도 낯선 사람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 길이 너무 어둡고 무서웠지만, 그의 손은 나에게 분명히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우리가 가던 길은 처음에 침묵으로 시작되었다. 어둠, 두 손을 잡은 어색함, 산길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것들이 모두 목적지를 향한 집중력으로 쓰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모든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나도 모르게 수다쟁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의 상태를 이야기하려다 보니 결국은 나의 유괴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캐나다에 가게 된 이야기부터, 지금 이 호텔에는 왜 가야 하는지까지, 나는 구구절절 어느새 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내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사람에 이 얘기를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내 말에 잘 반응해주고 대답을 해주던 그 사람의 배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30분이나 걸린다는그 어두운 산길을 전혀 무섭지 않게 걸어올 수 있었고, 저기 멀리서 그 호텔의 화려한 조명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와! 보여요? 벌써 다 왔어요!”
“아뇨. 보이지는 않죠. 그래도 대충 어느 정도까지 왔는지는 알아요.”
“아 미안해요. 근데 저는 정말 한 10분밖에 안 온 것 같은데, 벌써 도착할 줄은 몰랐어요! 진짜 신기해요!”
“아마 10분은 훨씬 넘었을 거예요. 그 앞쪽에 보면 호텔 쪽으로 향하는 계단 보이죠?”
“예. 맞아요. 보여요.”
“그쪽으로 가면 돼요. 저는 이제 다른 길이라.”
나는 다른 길을 간다는 말에 뭔가 갑자기 아쉬움이 밀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로 인해 큰 도움을 받았고, 그 도움은 나에게 위안이 되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같이 호텔에 가서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럴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야! 이선!”
그때였다. 호텔 쪽에서 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민우 오빠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민우 오빠의 목소리에 너무 놀라서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그는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어?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지?”
순간, 나는 나를 데려다준 그 남자가 생각나서 바로 뒤돌아 봤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가 말한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서 그의 뒷모습이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어느새 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도착한 민우 오빠는 거침 숨을 몰아 쉬며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야. 너 인마. 헉헉.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빠! 웬일이야? 장례식장은?”
“지금 그게 문제야? 너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고!. 또 왜 이제야 오는 건데?”
“오빠가 천천히 와도 된다면서.”
“그렇다고 12시가 다 돼서 오란 말은 아니었지!”
“뭐? 12시? 12시라고?”
“그래! 12시 10분 전이야! 너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하다 온 거야? ”
“아니 그게 내가 길을 좀 잃어서 헤매다 보니까 좀 늦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 9시~10시나 된 줄 알았는데?”
“야 인마. 나는 희연이가 6시에 고속도로 탔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그 뒤로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인마.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아니 그게 고속도로 타면 금방이겠다 싶었는데, 다 와서 이상한 길로 빠지는 바람에 좀 더 헤맸거든. 그러다 보니까 좀 늦어졌는데.. 나도 이렇게 늦은 줄은 몰랐지.”
오빠는 희연이가 연락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친구의 차를 빌려서 바로 왔다고 했다. 오면서도 나한테 전화를 계속했는데, 나는 받지를 않았다고, 아마 그때는 내가 좁은 길로 넘어가면서 공포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못하던 때인 듯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나는 차에서 나설 때 핸드폰도 들고 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 오빠. 나 차 가지고 와야 되는데…”
“그것도 이상해 인마. 왜 내 차가 먼저 와 있는 거야? 호텔에?”
“뭐?”
“내가 와서 널 찾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 차를 빼 달라고. 무슨 소리냐고 갔더니, 호텔 건물 옆에 내차가 서있었다고, 거기에 니 핸드폰이랑 짐도 다 그대로 있고,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놀랐겠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오다가 길을 잃어서 그냥 걸어서 온 건데.. 차는 분명히 그 자리에 두고…. 어?”
나는 지금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건 뭐지? 누구지?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순간, 나는 나를 데려다준 시각장애인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은 못한다고 했어…..”
“뭐?”
“오빠, 그럼 그 차 누가 가지고 왔는지 몰라?”
“아니 그게! 블랙박스에 찍혔나 봤는데, 정말 교묘하게 사각으로만 사라졌고, 호텔에 얘기해서 CCTV를 확인해보니까. 검은색 야상 같은 걸 입어서 누군지 전혀 모르겠더라고.”
“검은색 야상?”
“그래! 맞아. CCTV를 봤더니, 그 너희 집 앞에서 봤던 그 사람이랑 비슷해.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심장이 쪼그라드는지. 너 근데 진짜 아무 일 없었어? 괜찮아?”
“어.. 괜찮아..”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길을 잃고 들어선 길에서 한 남자를 만나서 이곳까지 걸어왔는데, 와서 보니 내 차는 이미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와있었고, 시간은 아주 많이 흘러 있었다. 그리고 그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은 우리 집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다. 나는 지금 도대체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단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10분은 훨씬 넘었을 거예요. 아마”
나는 순간, 마지막의 그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는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막상 그에 대한 얘기를 오빠에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마음속의 핑계는 그의 존재와 지금의 상황이 어차피 말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솔직한 마음은 그냥 왠지 오빠에게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하기 싫었던 것 같았다.
나의 표정은 너무 심각했고, 오랜 시간을 어두운 산길을 혼자 걸어와서 많이 지쳐있을것이라고 생각한 오빠는 나를 바로 방으로 바로 안내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과 담요를 덮어주며, 좀 쉬라고 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그러니까요? 설마 데자뷔인가요?”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리고 도움도 못 돼서.”
“아니야.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 해. 막상 가보니까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나는 내가 그놈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만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더라고. 그놈도 그놈 나름대로 꽤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던 게, 오늘 보니까 다 보이더라. 그래서 나도 니 핑계 대고 쿨하게 나왔으니까 걱정은 하지 마.”
“어. 알았어. 근데 학회 준비는?”
“어. 아까 보니까. 내가 늦어서 자기네가 우선 발표 준비랑 자료는 다 정리해뒀데, 이제 내려가서 이상 없는 지만 체크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푹 쉬세요.”
나는 오빠가 나간 호텔방에서 잠시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방에도 오빠의 배려는 가득 담겨있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넓은 방에 이미 모든 커튼과 방문은 열려있었다. 그리고 내가 저녁을 먹지 못한 걸 알고 있었는지, 식탁에는 죽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그때 마침 오빠한테 메시지가 왔다.
“식탁에 죽 있으니까 먹어. 밤이기도 하고, 너무 빈속에 과한 거 먹으면 안 좋을 것 같아서 홍성한우 대신 소고기 죽으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빈속에는 원래 홍성한우가 최곤데? 여하튼 고마워.”
나는 죽 그릇 앞에 앉아서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이렇게 세심하게 나를 신경 써주는 민우 오빠의 존재와 내가 너무 힘들 때, 갑자기 등장한 이름도 모르는 그 남자,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계속해서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검은 야상의 사람이 나의 모든 삶을 감싸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동일한데, 나의 상황, 나의 마음에 따라서 참 다른 느낌들을 받는 다고 말이다. 누가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같은 행동이지만, 꼭 같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하니, 뭔가 쓸쓸해지기도 하고, 슬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그 검은 야상의 사람이 내 현관 앞에서 한참을 울고 간 그 피자배달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오빠. 아까 차가 호텔에 있었던 게 몇 시였어?”
“아. 9시 반쯤 돼서 차가 들어오던데?
“뭐?”
그럼 내가 그 차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간이다. 그럼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 남자는 절대 차를 가져다 놓을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 저 검은 야상의 사람은 정말 내 뒤를 몰래 쫓아 오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그 사람이 내가 호텔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그냥 혼자 차를 호텔에 가져다 두었다는 말이 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그것만큼이나 더 놀라운 것은, 그럼 나는 그 남자와 이 산길을 2시간을 넘게 걸어왔다는 말이 된다. 나는 정말 귀신에라도 홀린 느낌이었다.
“뭐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