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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Dec 31. 2021

해시계-9

세 번째 장편소설

캔커피


그날도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그저 다른 날과 다른 것이 있었다면, 민우 오빠가 갑자기 교수님들 모임이 잡혀서 나를 못 데려다준다는 것과, 희연이가 조교에게 잡혀서 늦게까지 작업을 도와야 한다는 것 정도. 예전 같았으면 이미 난리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하냐? 희동이까지 소환하며 방법들을 찾았겠지만, 이제 진짜 괜찮아진 나를 믿는 건지, 걱정은 했지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나도 과에서 이런저런 일이 많다 보니 생각보다 조금 더 늦게 집에 오게 되었다. 내가 이른 저녁에 집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민우 오빠와 희연은 나의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호들갑들을 떨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그냥 그 아파트 건너편에 커피숍에서 기다려. 나 곧 갈 테니까!”


“너 그 조교한테는 뭐라고 하게?”


“엄마 아프다고 하지. 뭐.”


“야! 뭔 그런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와? 됐다고!”


“아 그럼 오빠는? 왜 이런 날 하필이면 없냐고!”


“거기도 윗분들한테 잡혀 계신데요. 그리고 오빠는 우리 집에 안 살아요!”


“아! 그래도. 알았어. 우선 알겠으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그거 무섭지 않겠어? 내 연락받는 거?”


“야!”


“무슨 일 없이 잘 들어가서 연락할게요. 걱정 마세요!”


때마침 민우 오빠의 메시지도 시작되었다. 아마 불편한 교수님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전화하는 것도 힘드니까, 식탁 밑으로 몰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은데, 희연이랑 레퍼토리가 너무 똑같아서 웃음이 났다.


[뭐라고 하고 나오게?]


[엄마가 아프다고 하지 뭐!]


[아. 그래서 공항으로 가신다고 하게요?]


[아. 그렇지]


[괜히 캐나다에 계신 이모까지 아프게 하지 마시고, 맛있게 드세요.]


나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혼자인 것도, 어두운 것도 더 이상 나에게는 무서운 기억이 아니어서, 그저 밤일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우스운 것은 밤이 되고 혼자 집에 가려고 하니, 시우의 생각이 더 많이 났다는 것이다. 홍천을 떠나 온 후에 그와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연락이 될 수는 없었지만, 한 번도 그가 보고 싶다거나, 그의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적은 없었다. 그냥 문득문득 그가 떠올랐을 뿐이고, 그렇게 잠깐 혹은 꽤 오래 그의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지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혼자 남는 시간이 되고 보니, 그가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기도 했다.


“잘 있나?”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말이 마치 신호라도 된 것처럼, 내 뒤에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시우의 생각이 나기 시작해서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오기로 했었다. 이 길이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은 길이기도 하고 아직은 많이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아무런 걱정도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공간에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인지되기 시작하자, 등 뒤에서 쫓아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의 인기척에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직 집까지는 10분은 더 걸어가야 하고, 이 길도 아직은 500mm는 더 남은 듯했다. 양쪽으로 빌라들과 다세대 주택들이 가득한 이 골목은 꽤 넓은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빠르게 걷기 시작하며, 양 옆에 있는 집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은 그 집들에도 사람들이 아직 귀가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듯했다. 빌라의 불들은 거의 드문드문하게만 켜 있었고, 심지어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거의 없었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내 뒤를 따라오는 그 발걸음도 나의 속도에 맞게 빨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오가고 있었다. 확 뒤돌아 볼까? 아니면 뛰어갈까? 민우 오빠나 희연이에게 전화를 걸까도 생각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내야 하는데,  순간 왠지 그가 달려들 것만 같은 불안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순간에도 나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고, 손은 점점 가방으로 가고 있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전화기는 손이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나는 어떻게든 가방을 끌어당겨 휴대폰을 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순간적으로 하늘에서 굉음이 들렸다. 펑!


나는 그 소리에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사이에 다시 한번 하늘에서는 여러 번의 굉음이 이어졌다. 펑! 펑! 펑! 펑! 순간 옆에 있는 건물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구민들을 위한 여름맞이 불꽃축제]


이 거리에 사람이 없었던 것도, 유난히 집에 불이 많이 안 켜있던 것도 모두 저 축제 때문인 것 같았다. 하늘은 그 굉음소리와 함께 터지는 불꽃의 잔영으로 얼룩덜룩해 보였고, 나는 그때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일이 지나간 일인 듯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긴장이 풀리는 순간 아까부터 뒤를 따라 쫓아오던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순간이지만 그는 검은색 긴 야상을 입고 있었다.


“저기요”


그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려는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남자가 가깝게 다가온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소리를 지르고 눈을 감았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놀라서 눈을 떠보니 바로 눈앞에 있던 그 남자가 저 멀리 넘어져 있었다. 그 남자도 뭔가에 놀랐는지 멍하게 있다가 다시 나를 보더니 나에게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또 그 모습이 두려워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저기요.”


나는 그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들었지만, 눈을 감고 엎드려 있자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자 다시 그 남자는 저 멀리에 넘어져 있었고, 다시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순간의 상황을 보고 도망을 가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그를 둘러싼 바람에 도망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상황이 되자 나에게 소리쳤다.


“저기요.”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건 경찰서에서였다. 나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혼자서 가보려고 했지만, 절대 혼자 가지 말라는 희연이의 말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희연이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서에 잡혀 온 그는 무엇인가 아주 억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다가오려고 했다.


“저기요.”


나는 순간 알았다. 그가 그 피자 배달부라는 사실을. 아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이제 밝은 경찰서에서 그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 배달원이 맞았다.


“봐봐요! 맞잖아요. 검은 야상!”


희연은 나에게 말을 거는 그 남자의 옷을 보고 경찰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가 이상하다고 말했을 때. 그때 뭔가를 했으면 오늘 같은 일은 없잖아요!”


“아니 그게요….”


경찰이 희연이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그가 갑자기 더 큰소리로 나에게 소리를 지르듯이 말했다.


“저예요. 피자! 저 그 피자 넘어져서 그 그 사람이라고요.”


“알아요.”


“놀라게 해서 미안한데, 미안해서 그런 거예요. 지나가다 봤는데, 미안해서 저 이제 편의점에서 일하거든요. 그래서 이거라도 드리려고. 쫓아간 거라고요.


그는 한 손에 꼭 쥐고 있던 비닐봉지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경찰관이 대신 건네준 그 봉지에는 식어버린 캔커피가 2개 담겨 있었다.


“이 사람 아니에요. 이 사람 역 근처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거 맞고요. 아가씨들이 주장하는 그날에 근무했던 근무기록이랑 CCTV도 다 확인했어요. 지금도 상황을 보니까 충분히 오해를 할 만한 상황이고, 잘못한 것도 맞는데, 악의는 없었더 고요. 그냥 오늘이 유난히 그놈의 불꽃놀이 때문에 사람이 없었던 거고요. 그래서 그쪽이 눈에 들어왔나 봐요. 퇴근길에.”


나는 경찰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준 커피를 보고 있었다. 그 커피는 이미 많이 식어 있었지만, 그래도 왠지 따뜻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했다. 그때도 지금도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오해를 하고, 착각을 하고, 실수를 해서 그에게 상처만 주고 있다. 그런데 그때,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나를 본 적이 없었다.


“근데 저를 어떻게 아세요? 그쪽은 저를 본 적이 없잖아요?”


순간 나의 말에 경찰서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나의 말에 많이 놀랐는지 순간 정지화면처럼 굳어버렸고, 사람들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다시 소름이 돋았다. 순간순간이 나를 점점 옥죄여오는 기분이었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다시 모두 환영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뒤로 딱 한 번 찾아갔었어요.”


“뭐?”


“그 뒤로 딱 한 번. 얼굴을 알고 있고 싶었어요. 내가 너무 미안한 사람이고, 그날 너무 고마웠던 사람이라. 그냥 얼굴만 알고 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딱 한번 찾아가서 기다렸어요. 그리고 친구분이랑 들어오는 걸 봤고요. 그때 알았어요.”


“그런데 쟤인걸 어떻게 딱 알아요? 나도 있었는데?”


“목소리요. 나는 목소리만 알았으니까.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들으니까 딱 알겠더라고요.”


그는 그 이후에 경찰과 나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그날 억울한 일을 당해서 피자집에서 잘렸고,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잘린 거라, 미안한 마음도 전하지 못했다고, 그 뒤로 다시 일자리를 찾고, 나중에라도 꼭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찾아왔던 거라고. 그런데 그런 내가 오늘 딱 눈앞에서 지나갔고, 퇴근길이던 그는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 1+1을 하는 캔커피를 사 가지고 와서 나를 급하게 쫓아온 거라고 했다.


경찰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또 같았다. 많이 놀란 건 알겠지만, 특별히 피해 본 것은 없고, 본인도 본인이 잘못한 것을 알고 있으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일은 그냥 잘 넘어갔으면 한다. 경찰의 의견에 나도 큰 이견은 없었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도 알 것 같았고, 나도 그를 오해한 것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연이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검은 야상에 대한 것을 경찰에게 더 부각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의 재재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는 나에게 정중하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하고 경찰서를 떠났다. 그리고 우리도 막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막 도착한 택시에서 민우 오빠가 내렸다.


“야! 이선!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어 나 괜찮아.”


나의 몸과 얼굴 표정을 훑어본 민우 오빠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이는지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희연이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응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희연이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척을 하고 있었다.     


“근데 아까 그 사람이 너한테 덤벼들려고 그랬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괜찮아?”


“어? 맞네? 네가 나한테 전화해서도 그랬잖아?”


“어.. 맞긴 맞는데.. 덤벼들지는 못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덤벼들려고 했는데, 덤벼들지는 못 했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


“아니야. 그런 게 있어. 뭐 안 다쳤으면 됐지. 뭐.”


실은 내가 그 피자배달원에게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분명히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는데, 내가 눈을 감았다 뜨면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나는 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그 사람과 나만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내가 3번이나 비명을 지르자 그때서야 사람들이 뛰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이미 사람들이 나를 목격했을 때는 그가 저 멀리로 넘어졌을 때 상황인 것이다. 나는 아무리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이건 상식적으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도대체 그 사람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우선은 그 상황을 아무리 말해줘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고, 설사 그 상황을 그 사람이 같이 말해준다고 해도 그 상황이 그 사람에게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밤 나는 꿈속에서 내내 그 피자배달원이 내 등 뒤에서 튕겨서 날아가는 장면이 반목되어 나타났다. 마치 히어로 영화 속의 악당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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