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그날의 사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다만 그 피자배달원이 주고 간 캔커피 2개는 마시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채, 거실 테이블에 그대로 놓여있다. 희연이가 몇 번인가 버리려고 했지만, 나는 그 피자 배달원이 나를 발견하고 그 커피를 사서 들고 달려왔을 마음을 생각하니, 그 마음을 가볍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쉽게 버릴 수 없었다.
그 이후의 우리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검은 야상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피자배달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오히려 그 검은 야상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커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서로 비슷한 건지, 민우 오빠는 예전보다 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있었고, 희연이는 항상 집에 오는 길에 연락을 해서 함께 들어오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우리는 그 검은 야상의 사람에게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고, 거실에 쳐있던 얇은 시폰 커튼을 두꺼운 암막커튼으로 바꾼 것이 그에게는 일종의 도발이 된 듯했다.
1층이지만 얇은 시폰 커튼을 치고 있었던 것은 나의 증상 때문이었지만, 증상 자체는 많이 좋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 커튼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 커튼을 바꾼 다음날,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우리가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던 시폰 커튼이 찢어진 채 놓여있었고, CCTV를 확인한 결과 그 검은 야상의 사람의 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이거 뭐지?”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SNS의 DM에 밖에서 우리 집 거실 창문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에는 약간 커튼이 벌어진 틈새로 나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나는 순간 온몸이 굳어가는 듯했고, 희연은 그 사진을 보자마자 창가로 뛰어가 커튼을 틈이 없이 치고 있었다.
“이거 점점 더 미친놈이 되어가네?, 이쯤 되면 경찰에 얘기해도 되겠는데?”
희연이는 바로 경찰서에 전화를 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 확인해보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우리는 나름 그 계정에 가서 무엇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해봤지만, 이제 막 만들어진 계정인지 그의 계정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나에게는 다양한 사진들로 나를 보고 있다는 신호가 날아오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집안으로, 방안으로 점점 더 좁은 공간 속으로 구겨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나를 도와준 것은 바로 민우 오빠였다. 민우 오빠는 시간만 나면 우리 집에 놀러 와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다. 가끔은 다 함께 술을 마시고 자고 가는 경우들도 있었는데, 항상 희연이와 함께이다 보니 이상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빠의 마음이 궁금해지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도 나 거실에서 자고 가도 돼?”
“그럼 자고 가야지. 술 마셨는데.. 대리비 비싸.”
“맞아요. 오빠는 하루 이틀도 아니면서 왜 그래요? 내가 이불 갖다 줄께요 기다려요.”
희연이는 거실에서 자겠다는 민우 오빠를 위해 이불을 가지러 방에 들어갔다. 나는 그동안 잠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물을 한잔 마시려고 하는데, 주방으로 민우 오빠가 따라와서 식탁에 앉았다.
“요즘 힘들지?”
“뭐 안 힘든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비슷한 것 같아 예전이랑.”
“예전?”
“응.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작은 공간과 어두움에 대해서 불안함이 있었잖아. 그게 신기한 건 언제 나한테 그런 상황이 발생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제일 큰 거였거든, 근데 지금도 그렇잖아.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가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내가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제일 불안한 거니까.”
“그러니까. 왠지 내가 다 미안하네. 내가 뭔가 널 잘 지켜줘야 하는데..”
“오빠가 왜?, 나 내가 이겨 낼 거야! 내가 꼭 누군지 찾아서 밝혀내고 다시 당당하게 살 건데?”
“그래. 그러자. 그런데 그래도 여하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꼭 도와달라고 해.”
“그럼. 이미 오빠는 아주 큰 힘이 되어주고 있어요.”
나는 순간 공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빠의 눈빛도 나의 심장소리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나는 민우 오빠를 좋아했었다. 아니 지금도 아주 많이 좋아하고 있다. 그런데 민우 오빠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면 뭔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선아.”
“ 어? 희연이는 왜 안 오지?”
나는 순간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희연이를 찾으러 방에 가려고 했는데, 그때 민우 오빠가 지나가는 나의 손을 잡았다.
“선아.”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순간 집안에 조명이 번뜩하더니 불이 나가 버렸던 것이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고, 나의 비명소리에 희연이도 깜짝 놀라서 거실로 뛰쳐나왔다.
“뭐야?”
“왜 그래요? 이게 왜 그러지?”
“잠깐만 내가 좀 볼게.”
민우 오빠는 바로 창문을 통해, 다른 집들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을 해보고, 바로 배점함으로 가서 우리 집의 상태도 체크했다.
“이상하네. 다 이상이 없는데? 이 거실 등만 나간 건가?”
“원래 이렇게 조명이 나갈 때 파드득거리고 그래?”
“아니, 나도 그건 잘 모르지.”
“왜? 무슨 일인데?”
희연이는 불이 꺼져버린 거실을 보며 무슨 일인지 묻고 있었다.
“넌 이불 가지러 가서 잔 거야?”
“어. 이불이 너무 푹신해서.”
우리는 희연의 말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민우 오빠는 의자에 올라가서 거실조명을 살펴보았고, 나랑 희연이는 오빠가 잘 보일 수 있도록 휴대폰 플래시로 천장을 비추고 있었다.
“아. 미안한데, 안 보여. 더 밝은 플래시 없어?”
“없는데?”
“오빠 잠시만요. 선이가 올라가서 비추면 되죠.”
희연이는 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같이 의자에 올라가라고 했지만, 나는 식탁으로 가서 의자를 하나 더 들고 온 뒤에 그 의자에 올라가서 플래시를 비춰주었다. 희연이는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내 밑에서 종아리를 쿡쿡 찌르고 있었지만, 나는 모르는척하고 아무 말 없이 플래시만 비췄다.
“어. 좋다. 훨씬 잘 보이네. 고마워.”
“그래도 더 좀 가까이 비춰줘!”
희연이가 능청스럽게 보텐 말 때문은 아니었지만, 오빠가 조명 커버를 벗기고 내부에 있는 전구들을 살펴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점점 가깝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고,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워지자 뭔가 심장이 더 크게 뛰는 듯했다. 민우 오빠도 나와 비슷한 걸 느꼈는지, 민우 오빠도 자꾸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이마에 땀도 맺히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나가는 조명이 아닐 텐데?”
“그렇죠? 이거 우리 이사 들어올 때, 다 공사 새로 한 건데..”
“여기 좀 비춰줄래?”
나는 오빠의 말에 따라 나는 조금 더 오빠 쪽으로 가깝게 몸을 붙였고, 그러다 보니 오빠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심장도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거짓말처럼 불이 들어왔다.
“어?”
“뭐지?”
“나는 이게 뭔가 LED 모듈이 나간 건가 했는데? 들어왔네?”
조명이 들어와 버리자 나와 민우 오빠는 어색하게 의자에서 내려왔고, 그 모습을 환한 상태에서 지켜보는 희연은 얼굴에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순간 너무 어색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를 옮기고 있었다. 민우 오빠도 어색한지 나를 따라 의자를 들고 쫓아 왔고, 희연이는 뒤에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찰칵”
“야!”
“우리 술을 좀 더 마셔야 하지 않겠어?”
우리는 이미 자야 할 시간이 지났지만, 금요일이라는 핑계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순간의 어색함을 지워보려고 다시 시작된 술자리였지만, 어느새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그 술자리에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자꾸 집안의 곳곳에 시선을 잠깐씩 두고 있었다.
“야. 너 왜 그래 자꾸?”
“아니, 그냥 왠지.. 뭔가 있는 거 같아서”
“야! 너 왜 그래 무섭게!”
“아니 그런 호러는 그냥 느낌이.”
“왜? 좀 불안한 느낌이 있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괜히 분위기가 다시 이상해질까 봐 화제를 바꾸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날은 우리가 이미 많이 마셨던 상태였기 때문에 술자리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의 사건이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은 며칠 후에 알 수 있었다. 나의 말을 호러가 아닌 범죄물로 해석한 민우 오빠는 인터넷을 통해 몰래카메라 검사기기를 구매했고, 그 기계를 통해 조사한 결과, 우리 집 거실에 몰카가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몰카가 설치된 곳이 바로 거실의 조명이었고, 아파트 CCTV를 조사한 결과 그 몰카도 그날 낮에 검은 야상을 입은 사람이 우리 집에 들어오는 장면이 찍혀있어서 그 사람으로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보통 이런 스토킹 범죄의 경우 여러 곳에 몰카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검은 야상은 오로지 거실 조명에만 하나를 설치했을 뿐이고, 그 마저도 그날 그 사건으로 인해 바로 고장이 나서 실제로 촬영된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들어와서 거실 천장에 하나만 설치하고 갔다는 말은 뭔가 은밀한 동영상을 찍어서 관음 하거나 판매하려는 목적보다는 아무래도 이곳에 사시는 분들의 동선을 파악하려고 하는 경우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어쩌면 단순한 몰카 범죄라기보다는 더 심각한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으니 한동안은 더 조심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몰카가 발견이 돼서야 집에 방문한 경찰은 굉장히 덤덤하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고, CCTV에 찍힌 모습으로 인근 CCTV까지 파악해서 최대한 수사는 하겠지만, 우선은 본인들이 조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
우리는 경찰이 돌아가자마자, 비밀번호를 바꾸고, 도어록을 하나 더 설치했다. 그리고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선 한동안 희연이네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민우 오빠는 자기네 집으로 오라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뭔가 더 불편할 것 같은 생각에 가까운 곳으로 우선 옮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차피 곧 방학이 되면 홍천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 잠시 몇 주만 희연이네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집을 싸는 순간에도 나는 그 검은 야상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곧 홍천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설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너무 어색한 일이지만 나는 점점 내 마음의 변화를 솔직하게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