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시계와 작심삼일

2022년

by 박희종

수동 시계와 작심삼일

나에게는 수동 시계가 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자만, 어쩌다 보니 나는 수동 시계를 몇 년 채 차고 있는 수동 시계 유저다. 나도 처음부터 수동 시계를 사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몇 년 전에 사고 싶던 시계가 수동 시계만 재고가 있다고 해서 얼떨결에 사게 된 것이다.


수동 시계의 단점은 아주 명확하다. 일명 밥을 줘야 한다. 보통은 태엽을 한번 감아주면 3~4일은 가기 때문에 막상 차다 보면 큰 불편함을 못 느끼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시계가 그것 말고도 있어서 좀 돌려가며 차는 편인데, 다른 시계를 며칠 차다가 그 시계를 다시 꺼내면 어김없이 시계를 다시 맞춰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사람이 참 간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처음에는 그 시계가 너무 갖고 싶었기 때문에 괜찮아. 수동이면 어때?라고 생각을 했지만, 어쩌다 한번 시계가 멈춰버리거나, 바쁜 아침시간에 그 시계를 차기 위해 밥을 주고 있을 때는 불쑥 화가 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 내가 수동 시계를 왜 사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 중에 가장 열심히 차고 있는 시계를 고르라고 하면 이상하게 나는 그 수동 시계를 꼽는다.(물론 내가 시계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이 시계가 아주 비싼 시계인 것도 아니다.)


굳이 내가 억지로 찾아본 수동 시계의 장점은 리셋이다. 뭔가 멈춰있는 시계를 보고 있자면, 나 대신 잠시 쉬고 있는 느낌. 그래서 내가 다시 의욕을 불 테우면 다시 열심히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태엽을 감고 다시 손목에 차는 순간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 뭔가 나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배터리로 돌아가는 쿼츠 시계의 편리함이나 손에 차고만 있어도 자동으로 태엽이 감기는 오토메틱 시계의 매력과 비교해도 뭔지 모를 끌림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1월 첫날부터 홈트레이닝을 하기로 다짐했다. 1월 1일부터 시작된 우리의 계획은 솔직히 며칠 가지 못하고 멈춰 있다. 그런데 나는 문득 우리의 계획이 나의 수동 시계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쿼츠시계처럼 오래가는 배터리를 가지고 꾸준히 자신의 계획을 실행해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오토메틱 시계처럼 다양한 것(책, 강연, 여행, 등)들로 스스로의 동기를 부여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처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태엽을 돌려보지만 오래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태엽을 다시 감는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멈췄으면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고, 잃어버렸다면 다시 찾으면 되는 것이다. 굳이 멈춰있다고, 나의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의 시계가 고장 나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잠시 멈춰있을 뿐이고, 언제든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떤 방식이던 우리는 우리의 시간들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내가 수동 시계를 차고 있을 때, 아무도 내가 차고 있는 시계가 수동 시계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계가 좀 멈춰있어도 시간이 안 맞아서 조금 느리거나 빠르다고 해도, 생각보다 내 손목에 감겨있는 시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 시계가 조금 멈춰있다고 해도, 내 시계가 조금 느리게 가고 있다고 해도, 굳이 남들과 비교해서 무언가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시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각자의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나는 멈춰있는 시계를 들어 시계의 밥을 줄 때, 뭔가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다른 시계를 보며 수동 시계의 시간을 맞출 때, 뭔가 내 자리로 찾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수동 시계의 가장 큰 매력은 어쩌면 나에게 다시 시작한다는 시작점을 매번 만들어 주는 것이다.


1월 1일이라고 꼭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1월 1일이 아니라도 우리는 언제든지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다시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는 수동 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언제라도 다시 태엽을 감고 3일짜리 멋진 계획을 시작해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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