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첫눈을 기다리던 시기가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를 기다리며 첫눈을 기다렸다.
첫눈의 감상을 나누고픈 사람이 있었던 적도 있고, 그저 첫눈의 낭만을 핑계로 친구들과 술잔을 나누고파 했던 마음도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는 어쩌면 핑계가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내리는 눈은 찬란했던 젊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기에. 그저 그 눈만으로도 무엇을 하든지 모두 근사하게 만드는 마법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은 달라졌다. 첫눈에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삶이 너무 치열해졌고, 마냥 낭만에 젖기에는 눈으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불편함이 먼저 다가왔다.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근사했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포근하지도 새하얗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눈의 의미가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예쁘게 내리는 하얀 눈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졌고, 그 하얀 세상에서 아이에게 눈썰매도 태워주고, 눈사람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 것이다. 그리고 하얀 눈을 바라보며 반짝거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내와 나에게는 첫눈보다 더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첫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첫눈을 여유롭게 기다리기보다는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더 많아서, 그리고 첫눈을 내리는 것을 즐기기보다는 아이가 눈 속에서 놀아도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돌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으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첫눈보다는 마지막 눈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눈은 내리는 순간 알고 있다. 이게 올해의 첫눈이라는 것을. 그래서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눈은 다르다. 내가 누군가와 마지막 눈을 함께 보고 싶다고 한다면, 2월부터는 매번 눈이 올 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눈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에게는 봄이 다가와 있고, 마지막 눈을 추억하며 그날이 우리가 보낸 마지막 눈이 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늘 내리고 있는 눈이 마지막 눈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눈을 기다린다. 매번 눈이 올 때마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생명 같은 아이와 함께 보내며, 이게 마지막 눈 일지 생각할 것이고, 그렇게 봄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내려오지만, 쌓이는 것은 눈만은 아니다. 하얀 눈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도 수북이 추억이 쌓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신남도, 젊은 시절의 설렘도 없지만, 내 계절에 맞는 새로운 감정으로 나는 다시 마지막 눈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