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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Feb 17. 2020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 다 영혼 팔고 일해

스토브리그 뼈 때리는 명대사

 주말에 즐겨 보던 드라마가 끝이 났다. 만년 꼴찌 구단에 새로운 단장이 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여주었던 "스토브리그"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보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직장으로서의 구단의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드라마 내내 주요 갈등은 새로운 단장과 구단의 스폰서 기업 임원과의 마찰이었는데 마지막 회에서 갈등 절정의 순간 작은 술집에서 그 둘이 마주치게 된다. 뒤늦게 들어온 단장이 쓸쓸하게 혼자 술 마시는 임원에게 물었다.

" 영혼까지 팔아서 일하는 사람이 가끔씩 즐기는 여흥이 이런 곳이라면 조금 아쉬울 것 같습니다.

" 너는 영혼 안 팔고 일해?"
 
"네"

"그게 잘못된 거야.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 다 영혼 팔고 일해"

 이 드라마는 영혼을 팔고 일하는 임원이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새로운 단장을 도와주며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저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직장인들 다 영혼 팔고 일해"

 어릴 때 봤던 만화나 영화에서는 영혼을 팔아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고 마지막에 지옥으로 끌려가는 내용이 있었다. 어릴 때는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그래 영혼을 팔아서 무엇을 얻은들 영혼이 없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살면서 현실 속에 힘이 부칠 대면 영혼이라도 팔아 잘 살아볼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저 주인공의 말은 충격적이다. 모든 직장인들은 영혼을 팔고 일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만약 저말 이 사실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내가 무려 영혼까지 팔았는데 나에게 남은 게 고작 가끔 지옥처럼 느껴지는 직장이라니..... 분명히 영화에서는 부와 명예가 있었는데..."

 이 보다 슬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저들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영혼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좀 다른 것이 아닐까? 단장이 이야기한 영혼은 아마 자존심과 직업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일 것이다. 쉽게 말해 드라마상의 배경으로 임원은 재벌가인 큰집에 무릎까지 꿇고 등록금을 빌려가며 학업을 마치고 그렇게 그 큰집의 하수인이 되어 그들의 눈에 띄기 위해 자존심도 직업윤리도 없이 오직 시키는 일과 성과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게는 자존심도 무엇도 필요 없었다. 오로지 그들에게 잘 보이는 것과 인정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가 말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영혼은 그와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1차원적으로는 자존심이나 부당한 대우에서 견뎌야 하는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비슷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그 안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혼 없이 일하고 있는 많은 직장인들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저 대사 속에서 이야기하는 판다라는 것은 "sell"의 의미보다 "lose"의 의미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세장 모든 직장인들 다 영혼을 잃어버린 채 일해"

 나는 얼마 전에 새로운 팀원들을 뽑기 위해 면접을 봤다. 3명의 지원자를 1명씩 면접을 진행했는데, 면접 내내 모든 지원자가 의욕적이었고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긍정적인 대답만을 했다. 나 역시 무수한 면접을 거쳐왔기에 이해가 가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항상 지원자의 당락을 결정하게 되는 것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나는 면접에서 고정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 혹시 인생의 목표가 있으십니까? "

 이 질문에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당황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지금의 목표는 합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은 지금 면접을 보는 회사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곳이 아니고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눈앞의 목표를 위해 상대방이 원할만한 대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 이것 역시 영혼을 팔고 잇는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던진 질문은 그 이후의 이야기이거나 아직은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당황을 하고 얼버무리거나 그 순간에 무엇인가를 급하게 지어서 답을 한다. 그런데 그중에 자신의 목표를 명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앞뒤가 좀 안 맞을지는 몰라도 자신감과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답을 듣고 나서 앞선 질문들의 대답을 다시 곱씹어보면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가 더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았던 지원자들의 대답은 일관성이 없거나 그럴싸한 대답들이라는 것이 더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나의 편견일 수도 있고 선입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경험상 그렇게 자신감 있고 목표가 뚜렷했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할 때 팀워크도 좋았고, 성과도 더 잘 내곤 했다. 그러니 나는 내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만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견디거나 버티는 일에는 영혼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나에게 교육을 받던 한 교육생은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었다. (그곳은 베이커리 프랜차이즈의 베이킹 기사를 양성하는 교육과정이었다. ) 자신은 고등학교 때 스노보드 국가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데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1학년 때 부상을 당해서 선수생명이 끝났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이 제일 좋아하고 잘하던 일을 잃고는 할 것이 없어서 그냥 공부만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할 때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의 권유로 9급 공무원을 준비하게 되었고, 고작 1년 만에 합격했다고 한다. 주변의 엄청난 축하를 받으며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시작했는데, 막상 자신에게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 업무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고, 가만히 앉아 있는 삶도 너무 싫었다고 했다. 특히 사직을 결심한 가장 결정적인 상황은 너무 답답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의 10년 선배가 자신과 같은 일을 무표정하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순간

' 10년 후에 나도 저렇게 있겠구나"

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사직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 결코 9급 공무원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하던 그 친구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이라는 말이다. 나중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자신을 그렇게 할 자신은 없었다고 했다. ) 그리고 자신의 기억에서 마지막 날 짐을 싸고 나와 운전하며 오던 그 길이 인생에서 최고로 신났던 순간이라고 했다. 그가 새로 찾은 직업은 공무원에 비하면 조건도 좋지 않고, 몸이 편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빵을 너무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재미있어서 너무 기대가 된다고 했다. 물론 그가 영혼을 담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은 건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그곳도 금세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찾으려는 의지도 있고, 포기하는 용기도 있다. 그러니 무엇인가 결국 찾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직장인들은 영혼을 팔아 일한다고 말을 했지만, 나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름 영혼을 붙들어가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 주의에서 자신의 일에 보람과 즐거움을 가지고 정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비록 지금은 영혼이 잠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직 늦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영혼과 함께 했지만 매너리즘 빠져 영혼과 이별한 사람들이나 지금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잠시 놓아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건 간에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하는 일이 내 영혼과 함께 하는 일이 아니라면 한 번쯤 고민해 봤으면 한다. 물론 지금 당장 바꿀 수는 없어도 지금부터라도 찾고 노력한다면 정말 용기내야 하는 순간에 덜 망설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인생은 점점 더 길어지고 우리의 삶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그러니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미래를 위해서 조금씩 집 나간 나의 영혼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어디선가 다시 돌아오고 싶어 쭈그려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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