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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Feb 16. 2022

해시계-12

세 번째 장편소설

눈물


누군가에 품에 안겨 울어본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그 사건이 있었던 이후에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항상 과보호를 받으며 성장해왔고, 내가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 괜찮지 않은 것처럼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또 그만큼 스스로 남아있던 진짜 공포에 대한 부분은 정말 꽁꽁 숨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주거나,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 나에게 몰렸던 괜찮냐는 질문에 나는 항상 웃으며 괜찮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흐르는 눈물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닦아내기 바빴고, 뛰는 심장을 숨기고 웃음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시우를 보자마자, 그의 품에 안기자마자, 피자배달원이 우리 집 현관에 기대어 울었던 것처럼, 어린아이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는 마치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아니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나를 그렇게 가만히 안아주고만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지도 모른 만큼 한참을 울고 난 나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 사이에 그의 등을 비추던 햇빛은 붉은 노을이 되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고, 나는 속도 없이 그 하늘이 너무 예뻐서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뭐죠? 바로 웃어요?”


“웃다가 웃으면 같은 말도 안 되는 농담은 하지 마요.”


내 말에 멋쩍은 척 미소를 지은 그는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왜 이렇게 안색이 안 좋아 보여요? 어디 아파요?”


“아니요.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래요. 그보다 그쪽은 다 울었어요?”


“예. 근데 왜 울었는지 안 물어봐요?”


“그냥 울고 싶은 일이 있었겠죠.”

     

그냥 그의 그 말이 나에게는 다 알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마치 더 할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꼭 기침감기에 걸린 거 같아요. 뭔가 하루 종일 목이 간질 가질 거리는 것 같은데, 한번 기침이 나면 정말 힘든 걸 아니까. 언제 기침이 나올까 너무 불안해요.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모르는 척 살아가기 하는데, 조금이라도 간질거리기 시작하면 또 불안하고, 겁이 나고. ”


“건조해서 그래요.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고, 생활하는 곳에 습도 관리를 잘하면 훨씬 좋아져요.”


“진짜 기침감기라는 말은 아니고요.”


그는 내 말에 살짝 웃으며 말을 했다.


“알아요. 그런데 같을 거 같아서. 지금 그쪽 마음이 아픈 게 기침감기 같다면 서요. 치료법도 비슷할 거 같은데.. 주변에서 신경 써주는 그 따뜻한 마음을 잘 받고요. 괜찮은 척 마음을 너무 건조하게 하지 말고요. 가끔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기대서 좀 울어도 된다는 말이에요.”


나는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듣고 싶어서 찾아 헤매던 답을 찾은 느낌이 든다. 그는 항상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 같았다.   


“이렇게 듣고 나니 참 쉬운 일 같네요.”


“아니잖아요.”


“예?”


“쉬운 거 아니잖아요? 매번 멈추지 않는 기침이 나올 때마다 죽을 것처럼 괴롭고, 견디기도 힘들고, 그런데 그것만큼 힘든 게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주변에서 보고 더 걱정하고 같이 힘들어할까 봐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괜찮은 척하고, 그래서 더 웃고 더 밝게는 살고 있고, 그런데 아픈 거잖아요. 맞죠?”


“맞아요.”


나는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눈물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순간, 그가 나의 눈물이 안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잠시 후 그러면 내 눈물이 보였다고 해도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또 그렇게 한참을 울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아파하며 살잖아요. 그게 손가락이나 발가락일 수도 있고, 위나 간일 수도 있고, 저처럼 눈 일수도 있고요. 그쪽처럼 마음일 수도 있죠. 아이들은 아프면 울어요. 그리고 말하죠. 치료해달라고. 그런데 실은 그 과정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내가 어디가 아픈지를 알고, 그 아픔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그래야 나을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상처들이 덫 날까 봐 혼자 꽁꽁 동여놨다면 적어도 내 앞에서는 조금 풀어둬도 돼요. 공기도 좀 통하고 그래야지.”


그는 또 정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끔은 그런 말들이 참 심심하고 재미없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결코 싫지 않았다. 그의 정답은 언제나 담백했고,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이야기할 일이 있으면 상대방의 반응은 항상 비슷했다. 너무 과하게 반응을 하고 동정을 하거나, 혹은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어색한 표정과 말들을 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두거나, 그런데 그는 그냥 담담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그의 말이 조금은 뻔하고 심심한 말들이어도 그게 좋았다.


“그쪽은 괜찮아요?”


“저고 특별한 일이 아니에요. 전 아주 오래 아팠으니까요. 혹시 어디 데어 본 적 있어요? 화상이요.”


“예. 있죠. 여기가 어릴 때 엄마가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데인 흉터예요.”


나는 종아리를 걷어서 보여주며 그에게 말을 했다. 그는 내 흉터를 보지도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많이 울었겠네요. 꽤 오래갔을 거 같고, 근데 그거 알아요? 화상은 다 치료가 돼도 그 흉터에 기억도 남는 거. 왠지 뜨거운 불 근처에 가깝게 가면 거기만 좀 간지러운 거 같기도 하고, 화기가 다시 올라오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맞아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진짜 오래됐는데도, 꼭 불 근처만 가면 거기가 좀 이상해요.”


“지금 제가 몸이 안 좋은 게 그런 거예요. 이미 오래전에 아문 상처인데, 여전히 내 몸은 그 통증을 기억하고 있는 거.”


나는 순간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먼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에 뭔가 깊은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아서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다만, 그럴 수만 있다면 그도 내 앞에서 무엇인가를 훌훌 털어 낼 수 있을 만큼 펑펑 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많이 괜찮아졌어요. 고마워요. 그쪽도 이제 들어가서 좀 쉬어요,”


“예. 그래요.”


“우리 이렇게 계속 만날 수 있는 거죠?”


“그러죠. 뭐.”


“뭐야? 너무 거만한 거 아니에요?”


“우리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요. 그쪽이 원한다면. 그리고 난 언제든지 준비하고 있어요. 그쪽이 날 필요로 하는 순간에 달려갈 수 있도록. 그러니까 좀 거만해도 참아요.”


나는 그가 하는 말이 따뜻한 보리차 같았다. 내 마음이 간질간질거릴 때, 그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줄 수 있는 따뜻한 보리차. 나는 삼촌의 펜션으로 돌아와 침대에 기대앉았다. 삼촌이 와서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서 따뜻한 보리차가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삼촌은 가볍게 웃으며 밑으로 내려갔고, 얼마 후에 하얀색 머그 컵에 따뜻한 보리차를 한 잔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한 잔의 보리차를 마시며, 그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보리차를 다 마시고 나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들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니, 마치 새로운 세상인 것 같았다. 마치 어제 있었던 모든 일이 밤늦게까지 봤던 스릴러 영화 같았다. 맑은 날씨와 개운한 정신은 새삼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 놓여있던 보리차를 마셨던 하얀색 머그잔은 나를 다시 한번 미소 짓게 만들었다. 나는 오픈 준비를 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그곳에는 삼촌이 앞치마를 매고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촌, 뭐해요? 아침에 약속 없어요?”


“아. 오늘은 취소했어.”


“왜요? 나 괜찮은데. 지금이라도 나가요. 나 진짜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그래도 내가 삼촌인데,”


웃고 있었지만, 삼촌의 얼굴에서 미안함이 비쳤다. 나는 이런 표정에 익숙했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가 나한테 이런 표정을 지을수록 더 괜찮은 척 웃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문득 저 표정의 답이 나의 웃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삼촌에게 가서 삼촌을 안았다.


“어허. 다 큰 아가씨가 왜 그래?”


“삼촌, 나 어제 진짜 많이 놀랐어.”


“알아. 삼촌이 늦게 가서 미안해.”


“근데 이제 진짜 괜찮아요. 삼촌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괜찮아졌어.”


“그래? 다행이다.”


“응 그러니까, 오늘만 이렇게 오붓하게 같이 오픈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팍팍 부려먹어도 돼요.”


삼촌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더 이상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닌, 포근한 삼촌의 눈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한걸음에 너한테 달려갔었어. 그리고 네가 엄마 품에 안겨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근데 나는 그때 너한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 네 맘이 어떨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거든. 근데 삼촌은 지금도 그런 거 같아. 어제 너한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일어나서 또 힘들어했을 너를 생각하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삼촌은 지금도 너한테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삼촌, 누가 그러더라. 내 병도 기침감기랑 똑같은 거라,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건조하기 않게 잘 관리하면 금방 괜찮아질 수 있다고. 그러니까 삼촌은 어제처럼 따뜻한 보리차만 끓여줘. 내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건 내가 열심히 할게요.”


“누군지 삼촌보다 나은데? 너 혹시 삼촌보다 나이 많은 사람 만나는 건 아니지?”


“왜 안돼?”


“야. 그건 안되지. 서로 불편하잖아.”


삼촌이랑 나는 그렇게 웃으며 손님들의 조식 서비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삼촌은 정민이 출근을 하자 급하게 나갔다. 나는 삼촌이 조급해하며 나가면서도 내 눈치를 보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평소와 같은 하루가 지나가자 나는 다시 슬슬 그의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삼촌 나 주방 좀 써도 돼?”


“어. 그럼.”


오후가 되자 매장이 조금 한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삼촌이 들어왔다. 나는 문득 그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에 삼촌에게 허락을 맡고 주방에 들어왔다. 한창 요리를 배우고 있는 삼촌 덕에 주방에는 조리도구와 식재료들이 부족할 것 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주방을 살펴보며 무엇을 하면 좋을지를 고민했다. 요리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와 아빠가 요리할 때마다 주방에서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할 줄 하는 것은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처음 대접하는 요리이기에 메뉴에 고민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삼촌 이 새우 써도 돼요?”


“어 써도 돼! 남은 거야.”


나는 냉장고에 해동이 되어있는 새우를 보고 감바스를 하기로 했다. 요리를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해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요리를 하면서 설렌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요리를 하면서 따뜻할 때 먹는 것이 좋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어제 그가 한 말도 있었고, 그의 말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고 싶을 때는 항상 나타나 주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뭔지 모를 믿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프라이팬에서 감바스가 익어가는 동안 작은 바구니에 와인과 와인잔도 챙겼다. 그리고 다 된 감바스를 유리로 된 밀폐용기에 옮겨 담은 뒤에 카페에 있는 마늘빵도 한 봉지 챙겼다. 삼촌은 나의 이런 모습이 신기한지 계속 웃고만 있었고, 정민은 여전히 무심하지만 친절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나는 감바스가 식을까 봐 외투도 채 입지 못하고 서둘러 골목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뛰어가면서 왠지 이 소리도 그가 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더 예쁘게 뛰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따뜻하게 주고 싶었던 욕심이었는지 쉬지도 않고 뛰는 바람에 나는 숨을 몰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벤치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려 했지만, 금세 그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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