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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Mar 22. 2022

입덧, 대신해줄 수 있는 거라면.

 아내의 입덧이 심하다. 첫째 때보다도 더 심해진 입덧은 하루 종일 그녀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남겨두었던 육아휴직을 써버린 아내를 집에 혼자 두는 것도 걱정이 돼서 결국, 처갓집에 보냈다.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에, 아내는 그곳에서 머물고, 나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처갓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아내의 입덧은 정말 대중도 없고, 패턴도 없어서, 어느 날은 조금 괜찮아서 거실로 나와 몸을 좀 움직이기도 하고,


이것저것 음식들을 잘 먹기도 하지만, 또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너무 심해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너무 힘들어서 밥을 하는 동안이나, 나머지 가족들이 밥을 먹는 동안에도 방문을 열지 못한다.


그나마 속이 좀 편안해지고 나면 나와서 먹기는 하는데, 정말 아주 조금의 음식을 겨우 먹는다.


메스꺼움을 참지 못하고 토하는 경우도 많은데, 내가 옆에 있을 때는 들어가서 아내를 잡아준다.


그 순간 아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아내의 몸에 얼마나 기력이 없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대신해줄 수 있는 거라면."


첫째 때, 아내가 농담처럼 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입덧이랑 출산이랑 모유수유 중에 하나는 대신해줘야 하지 않아?"


 그 당시에는 입덧과 출산의 과정을 겪고 나서 모유수유의 고됨을 느낄 때여서 그나마 여유가 좀 있는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짐 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5명의 조카가 생기는 동안 나름 누나들이 아이를 갖고 기르는 삶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겪어보는 출산의 과정은 그 어떤 영화나 다큐멘터리보다 어마어마하고 찬란하다.


아내가 길러낸 눈에 넣도 아프지 않을 지금의 딸아이는 아내의 뼈를 깎고, 살은 나누고, 피를 섞어서 태어났다. 남편은 그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오로지 지켜보는 것뿐이다.


나는 그 과정을 바보처럼 다 잊었고, 또 방심했다. 둘째는 다를지도 모를 거라는 헛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내는 또 하나의 생명을 자신의 삶을 녹여가며 길러내고 있다.


"유튜브만 2시간째 인가 봐"


"그렇지. 뭐."


"진짜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흘려보낸다."


"뱃속이 생산적인데 ㅎㅎ"



"그렇긴 하네"


아내의 삶이 커다란 추를 달고 물속에 잠겨가고 있다. 그 추가 무엇인지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탓도 후회도 없다.


다만, 제발 조금만 수월하게 넘어가길 바라고 있다. 그 추의 무게가 얼마이든지 나오기만 하면 내가 다 짊어질 테니.


제발 조금만 수월하기를. 조금만 덜 힘들기를. 제발 모두 무사하기를.


새로운 생명이 찾아와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은 아직도 실감되지 않을 만큼 떨리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러했듯이. 이 역시 지나가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대신할 수 없는 무력한 아빠로서 오직 바라고 바란다.


제발 다 스쳐 지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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