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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pr 11. 2022

벚꽃 사진 한 장 없는 벚꽃놀이라니.

그래도 좋아서 괜찮아

 우리는 항상 봄을 기다린다. 하나씩 피어나는 꽃들에 설레기 시작하는 마음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벚꽃엔딩"과 화사해지는 옷들로 점점 정점을 향해간다.


 그런데 원래 벚꽃놀이는 항상 추웠던 기억이 많았다. 생각보다 꽃이 만발하는 시기는 항상 아직은 추운 경우가 많았고, 나름 근사하게 옷을 입고 나가도 매서운 바람에 오들오들 떠는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주는 달랐다. 아침부터 따뜻한 기온은 한낮에는 얇은 옷만으로도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고, 심지어 신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니 나는 어느새 반팔티만 입고 있었다.


하지만 기온보다 이번 봄나들이가 더 달랐던 이유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나서는 봄나들이 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입덧이 아직 심해서 겨우 가까운 곳으로 나온 우리는, 그나마 사람도 적고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잔디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의 손에는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캠핑의자와 다양한 간식과 음료가 들어있는 아이스박스, 아이의 짐이 들어 있는 가방에, 아이의 싱싱 카와 공까지 들려 있었다.


그래도 그늘이 있는 좋은 자리를 잡은 우리는 나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아이는 쉬지 않고 비눗방울 놀이와 공놀이와 싱싱 카를 돌아가며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옆에서 캐어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입덧이 심한 아내가 의자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꽃도 좋았고, 날씨도 좋았고, 아이도 좋아하고, 오랜만에 외출한 아내의 기분도 좋았다. 누구보다 나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여유는 없었다. 아내의 휴식과 아이의 즐거움에는 나의 분주함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길지 않은 벚꽃놀이가 끝나자, 나는 다시 또 짐을 챙겨 차에 실어야 했고, 아직 여운이 남은 아이와 조금 더 놀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우리의 봄나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린 아이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집에 도착한 나는 아내는 먼저 집에 들여보내고, 아이는 차에서 조금 더 재우기로 했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아이는 차에서 2시간이 넘게 낮잠을 잤고, 그 덕에 나도 기분 좋은 낮잠을 잤다.


예쁜 옷을 입고, 즐거운 봄노래를 들으며 설레는 걸음으로 꽃길을 걷는 봄나들이는 이제 없다. 내 손에는 수많은 짐들이 들려있고, 내 발걸음은 아이를 케어하느라 조급하기만 하다.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그런 달달한 봄꽃놀이. 그 설렘이 얼마나 좋은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비교할 상대가 안되기 때문이다. 꽃보다 예쁜 아이가 뛰어다니고, 새로운 생명을 담고 있는 아내가 쉬고 있다. 내 어깨에 얼마나 많은 짐이 매달려 있건 그건 모두 우리 가족의 행복이다.


 정말 다행인 건, 어느새 우리나라는 어디에 가도 벚꽃이 많다. 굳이 명소를 가지 않아도 동네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은 있다. 나는 예전과는 다른 마음이지만,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행복으로 또 다른 봄꽃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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