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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Apr 05. 2022

싫어 싫어 날에는 초콜릿 한 조각.

돌팔이 아빠의 엉터리 처방


오늘 우리 아이는 싫어 싫어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기분이 좀 안 좋았던 아이는, 옷을 입는 것도, 감기약을 먹는 것도, 머리를 묶는 것도 다 싫다고 했다. 이런 날은 솔직히 아이보다 부모가 더 곤란하다. 다행히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고, 아이는 조금 늦게 일어났기 때문에 아이가 자는 동안 대부분의 아침 준비가 끝나서 조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이가 모든 것을 싫다고 하는 이 순간은 땀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분이 안 좋아?"


"어!"


"오늘은 다 싫은 날이야?"


"어!"


"그럴 수 있어. 살다 보면 다 싫은 날이 있어. 괜찮아."


아이는 처음에는 내 품에 안기는 것도 싫다고 버텼지만, 다행히도 다그치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니까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거 먹을까?"


나는 입덧을 하는 아내를 위해 사다 놓은 초콜릿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그리고 아이에게 흔들며 말했다.


"그게 뭔데?"


"초콜릿!"


"먹을래."


"오늘처럼 싫어 싫어 날에는 달콤한 초콜릿을 한 조각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그냥 순간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였지만, 평소에 군것질거리를 많이 주지 않은 덕인지, 아이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려 초콜릿 조각을 하나 받아먹더니 웃기 시작했다.


"맛있어?"


"응."


"기분이 좋아졌어?"


"응"


"그럼 우리 이제 옷 입을까?"


"응"


 아이는 초콜릿 한 조각에 입기 싫다던 어린이집 운동복을 입었고, 또 한 조각에 안 먹고 버티던 약을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으로 머리까지 묶고는 어린이집 갈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집을 나서는 시간이 늦지도 않았고, 아이의 기분도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오늘처럼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져."


"한 조각을 더 먹으면?"


"더 기분이 좋아지지."


"한 조각을 더 먹으면?"


"에이 대신 너무 많이 먹으면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어."


"응."


아이의 싫어 싫어 날은 작은 초콜릿으로 좋아 좋아 날로 변했다. 그 덕에 아이는 차에서 노래를 부르며 어린이집으로 갔고, 아주 기분이 좋은 상태로 선생님들을 만났다.


 나는 아이에게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안 좋은 날에는 아주 작은 노력으로도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은 날들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안 좋은 날들도 있다. 누구나 매일매일을 행복하게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감정의 기복은 생긴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의 나. 마음이 아픈 순간의 나. 그래서 세상이 무채색으로 느껴지는 날의 나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을 살아가는 나도 결국은 나이고,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어서, 작은 초콜릿 한 조각으로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엄청난 양의 초콜릿을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기는 커녕, 거북한 속 때문에 더 기분이 안 좋아질 수 도 있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다면? 해보는 것을 어떨까? 이유도 없이 기분이 안 좋다면, 아침부터 기분이 처진다면, 어차피 안 좋은 거, 초콜릿 한 조각을 먹는다고 더 나빠질 것은 없으니 말이다.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변덕이 심해서 이유도 없이 나빠지기도 쳐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도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텐션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니 어차피 방법이 없다면 해보는 거다.


기억하자. 세상이 다 싫어지는 싫어 싫어 날에는 작은 초콜릿 한 조각 처방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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