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귀여움은 생존본능이다
딸바보의 쓸데없는 이야기
120일 딸아이를 기르는 우리 부부의 대화는 두 가지 말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다.
"아! 진짜 피곤해!"
"와! 정말 귀여워!"
딸아이의 탄생은 우리 부부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딸이 우리 집에 오는 순간부터 우리 집의 모든 공간은 딸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내가 정말 고민하며 꾸민 나름 북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도 온갖 원색이 난무하는 어린이집 버전으로 달라졌다. 우리의 시간은 우리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었고, 함께하는 식사는 우리에게 사치였다. 세상의 모든 부모를 존경하게 되는 이 시기에 우리 부부를 견디게 해 준 것은 우리 딸의 사랑스러움이었다.
나는 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딸바보로 예약되어 있었고, 내 주변의 모든 지인들이 나는 딸바보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이미 내가 준비하고 받아들여야 할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아빠가 된 순간은 내가 상상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만큼 압도적인 파괴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예를 들자면 비가 온다고 예상해서 우산을 준비하고 나갔는데 하늘에서 머리 위로 바다가 쏟아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로 나에게는 충격적인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결국 아이들의 귀여움은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삶의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고, 부모의 뼈와 살을 깎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지만 그 모든 희생이 힘들어도 거부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 눈앞의 아이가 그 이상 귀엽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만약에 세상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이 정도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그 어떤 보상과 명예를 준다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매력 앞에서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이 모든 변화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어버리는 강력한 파워 아니겠는가? 이것은 결국 아이가 온전하게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도록 이 아이를 사랑하고 보호할 수밖에 없는 통제불능의 상태로 만들어서 비이성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희생할 수 있도록 만든 엄청난 계획이나 음모인 것이다.(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귀여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이론의 근거는 바로
"모든 아이는 귀엽다"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모든 아이가 예쁘지는 않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아이들도 예쁜 아이들도 있고 예쁘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더 이쁘고 더 잘생긴 아이들이 모델을 하기도 하고 미디어에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실제로 내 주변의 한 아이는 너무나도 예쁜 외모로 태어나서 탄생과 동시에 SNS에서 화제가 되고, 각종 모델을 하며 돈을 벌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귀엽다에 기준으로는 모두 다 포함되는 것 같다. 예쁘지는 않을 수는 있어도 귀엽지 않을 수는 없다. 정말 모든 아이는 다 귀엽다. 즉, 모든 아이는 무사히 성장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생존본능으로 최선을 다해서 귀여운 것이다. 솔직히 이런 말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이유도 아이를 기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 아니 어떻게 이렇게까지 귀여울 수가 있지?"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와이프가 정말 많이 지치고 힘든 순간에도 아이의 미소 한방에 모든 게 날아가는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귀여움의 강력함은 부모가 아닌 타인에게도 먹히기 때문에 가끔 가족모임에 가서 그 강력한 귀여움으로 다른 이들을 홀려서 부모들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효도를 하기도 한다.
혹시 출산의 공포로 인하여 아이를 좋아는 하지만 갖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나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공포를 넘으면 비교도 안 되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를 지나며 많이 힘들어하고 우울해하는 부모가 있다면 조금만 더 아이의 귀여움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충분히 힘을 내고 있고, 이미 최선을 다해서 견디고 있겠지만 아이가 웃어주는 것만큼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도 없지 않은가?
내가 생각할 때 아이의 귀여움은 그가 세상의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본능적인 몸부림이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고통을 견디는 최고의 진통제로 마음껏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육아로 힘들고 우울할 때마다 마음껏 이뻐하고 마음껏 귀여워하며 소중한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