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May 03. 2022

이팝나무를 아시나요?

지금은 엄연히 이팝나무의 시간입니다.


화려한 벚꽃의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거리는 푸릇푸릇하게 변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마저 빗물에 쓸려가고 나면, 우리는 아쉽게 봄을 보내며 여름을 기다리죠. 그 사이, 벚꽃이 지나가버린 거리에 소리 없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하얀 꽃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이 계절에 거리를 채웁니다. 가을 단풍에는 물들인다는 표현이 어울리듯이, 이 계절의 이팝나무에는 채운다는 말이 어울립니다. 벚꽃이 사라진 자리에 풍성하게 차오르는 이팝나무는 멀리서 보면 초록빛과 하얀 꽃이 어울린 것이 마치 맛있는 쑥버무리가 가득 올려져 있는 것처럼 풍성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소쿠리 가득 담겨 있는 쑥버무리 같은 이 꽃나무를 아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저 스쳐 가며 눈길 한번 주는 것이 다 인데도, 이 나무는 참 꿋꿋하게 피어납니다.


 우리는 모두 벚꽃일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모두가 아쉬워하는 사람일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벚꽃나무가 아닌 우리들은 가끔 그들이 부럽습니다. 그저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특히, 휴대폰 속 작은 창은 우리를 더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화려한 삶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들이 나와는 너무 먼 일처럼 느껴져서,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게 되는 날이면, 문득 고개 들어 마주하는 나의 현실은 더 슬프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계절은 반듯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아무도 일부러 찾아주지 않는 다고 해도, 길을 멈춰 사진 한 장 찍어주지 않는 평범한 날들뿐이어도, 우리가 피운 꽃들도 분명히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걸.


 저는 이팝나무를 참 좋아합니다. 화려하지 않은 그 생김새도 좋고, 화려한 시절을 지나 조금 늦게 찾아오는 마음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나만 혼자 좋아해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은 엄연히 이팝나무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합니다. 저의 시간도 분명히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