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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21. 2022

암탉 세마리와 수탉 스물여섯마리

누가 떠나야 하는가?

 우리 장인어른은 과수원에서 닭을 기른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주시기도 하셨고, 나중에는 조금 큰 병아리를 사오시기도 하셨는데, 어찌 되었건 지금은 과수원에 꽤 많은 닭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뭐 기본적으로 닭은 기르는 것으로 수익을 내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보니, 무엇인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것은 아니고, 이른 봄에 힘들게 닭장을 만드신 후에, 낮에는 대부분 풀어서 자유롭게 기르고 계신다.


 닭을 기르는 과수원집 큰 사위인 나는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데, 동물복지가 아주 잘 지켜지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씨암탉으로 만들어 주신 백숙을 벌써 몇 번이나 얻어먹고 있다. 내가 치킨회사에 다니고 있는 나름 가금류 계는 좀 안다면 아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역시 자연에서 풀어서 기르는 닭의 육질은 확실히 다르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의 닭고기는 어느 맛집에서도 먹어 볼 수 없는 레벨이 다른 맛이고, 거기에 다양한 재료들을 활용해서 맛을 더해주신 장모님의 솜씨 역시 어나더 레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수원의 닭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닭들의 성비가 너무 안 맞아서 인지, 마리의 암탉들이 스물여섯마리나 되는 수탉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모두 짝짓기에 대한 본능 때문일 텐데, 여하튼 상황은 아주 많이 심각해서 마리의 암컷은 수탉들의 괴롭힘에 못 이겨 닭장 구석에서 땅에 머리를 박고 가만히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닭들을 분리시키기로 하셨다.


"수탉들이 얼마나 암탉들을 못살게 구는지, 내가 도저히 못 보겠어서 딱 분리해서 가둬뒀어."


"암탉을요?"


"아니 수탉 스물마리를 닭장에 가둬뒀지. 암탉들이 이제 신났지 뭐. 지들 만대로 실컷 돌아다니니까."


 나는 순간 장인어른의 말을 들으면서 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처음에 장인어른께서 닭들을 분리시킨다고 했을 때, 당연히 암탉들을 분리시켜서 한쪽에 따로 보호하시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괴롭힌 수탉들을 가두고는 암탉들을 풀어놓은 신 것이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곤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사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뉜다. 당연히 그 어떤 사건이던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고, 처벌의 대상도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목격한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피해자가 먼저 피해야 하거나 피해자만 멀리 떠나보내는 일들을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나 역시도 그 상황에 분노했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당연히 암탉을 분리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조금은 더 가해자에게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정폭력, 학원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스토킹까지 이런 대부분의 강력범죄들에서 우리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를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며 새로운 환경으로 밀어낸다. 하지만 정작 그곳을 떠나야 하고, 피해자들의 공간에 접근하지 못하게 강제해야 하는 존재는 당연히 가해자여야 하는 것이다. 피해를 준 사람들은 처벌을 받고 그곳으로 돌아오고, 피해자들은 오히려 피하듯이 자신들의 삶의 공간들을 떠나야 하는 상황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당연히 피해자로서의 보호와 위로를 받아야 하며, 가해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죄에 맞는 법적 처벌과 사회적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것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안 지켜지고 있고, 우리도 어느새 당연히 피해자를 분리시키고 떠나보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과수원에서 뛰어노는 닭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참 우스운 일이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나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장인어른의 지혜에 진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인 닭들의 이야기였지만, 우리가 느껴야 할 교훈만은 명확한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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