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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22. 2022

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4

아율

 선영은 아율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주 작은 문제로 시작된 이 상황은 선영에게 점점 부정적인 상상력만 키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영의 머릿속에서 연호는 이미 아동학대를 당하는 아이였고, 그 주체는 엄마였다. 그리고 그 엄마는 같은 성인도 꼼짝 못 할 만큼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선영은 그런 엄마의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는 연호의 모습까지 상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 이상 끝이 없겠다고 생각한 선영은 우선 아율이와 대화를 해보기로 했다.


“아율아. 오늘 유치원에서 잘 놀았어?”


“어.”


“뭐하고 놀았는데?”


“오늘은 체육선생님 와서, 농구도 하고 태권도도 했어.”


“아. 그래? 그럼 누구랑 놀았는데?”


“아 오늘은 민정이랑 연호랑.”


“아 그래? 오늘은 연호는 냄새 안 났어?”


“아. 체육선생님 오후에 와서 괜찮아. 그리고 연호는 농구도 잘하고 태권도도 잘해!”


“아. 그래? 근데 아율아. 아까 연호가 또 운다는 게 무슨 말이야? 예전에도 운 적 있어?”


“어. 연호는 엄마만 오면 울어!”


“뭐? 진짜?”


“어! 연호는 아빠가 데리러 오면 신나서 방방 뛰는데, 엄마가 데리러 오면 맨날 맨날 울어.”


선영은 머릿속에 연호의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아율이와 대화를 시작했지만, 대화를 하다가 보니 자신도 모르게 또 연호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가볍게 시작한 대화에서 선영이 불안해하고 있었던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자신이 상상하던 모습과 비슷한 현실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선영의 심장은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아율이가 물어본 적 있어?”


“아니 물어본 적은 없는데.”


“아. 그래?”

   

선영은 그 순간, 선록의 말이 떠올랐다. 집에서 엄마의 케어를 받지 못하는 아이, 아니 엄마에게 무슨 일인가를 당하고 있어서, 엄마와 같은 성인 여성에게는 불편함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 지금 연호의 눈에서 본 눈물이 선록의 말에 더욱 신뢰를 쌓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래서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만약에 지금까지의 사실이 모두 맞다고 해도 지금 그녀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이가 엄마와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는 이 가정을 조사해줄 기관은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아율이가 더 이상한 말을 했다.    


“어 근데, 연호는 엄마가 밥을 안 준데.”


“뭐? 밥을 안 준다고?”


“어. 엄마는 맨날 샐러드만 주고 과일만 줘가지고, 연호는 맨날 맨날 아빠 오기만 기다린다고 그랬어! 그래서 가끔 아빠가 오기 전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서 엄청 배가 고프데. 그래서 연호가 아침밥은 세호보다 훨씬 많이 먹어! 이만큼이나 먹어.”


선영은 연호의 상황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 아율이가 하는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만, 평소에 아율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래도 대부분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들은 사실만으로도 연호의 엄마는 연호를 학대하거나 방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 들수록 선영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선영은 아직 그들 가족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을 뿐만 아니라, 연호의 상태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연호의 아버지만큼은 연호를 돌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어딘가에 신고를 하고 이 상황을 알리게 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라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한다고 해도, 연호에게 더 좋은 방향으로 환경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감도 낮았다. 아마도 그것은 얼마 전에 TV에서 본 아동학대와 관련된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영향일 수도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양육의 문제는 가족 간에 일이라고 여겨지고 있고, 실제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피해아동을 적절하게 보살펴주고 치료해 줄 기관들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선영은 그런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겨우 자신의 집에 도착을 했을 때,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아율이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


“ 아! 근데 엄마. 연호네 이사 간데. 그래서 어쩌면 유치원을 관둘지도 모른다고 했어!”

 

순간 조금 진정되었던 선영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웃들이나 아이의 친구들이 이사를 가는 일은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심지어 연호의 경우 지금 아주 많이 신경이 쓰이는 아이이긴 하지만, 걱정만큼 큰일이 아니라면 차라리 새로운 곳에서 다시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영이 아율이의 말에서 충격을 받은 부분은 이사를 간다는 부분이 아니었다. 바로 유치원을 관둔다는 부분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사를 가게 되면 유치원을 옮긴다. 아니 더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초등학교 입학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이때문에라도 이사를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연호네는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이사를 가게 되면 연호에게 유치원을 관두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사실들은 선영에게 무엇인가 시한폭탄을 받은 기분을 주었다. 지금 연호에게 무엇인 문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적어도 그들이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진 것처럼 말이다. 선영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율이에게 영화를 틀어주고는 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바로 선록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어. 지금 가요.”


“연호네가 이사를 간데! 그리고 그래서 연호가 유치원을 관둘지도 모른 데.”


“뭐?”


선록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선영과 같은 생각을 했다. 아니 어쩌면 선록은 더 심각한 상황까지 상상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아이를 학대하고 있던 부모가 유치원 친구들을 통해 그 사실이 조금씩 밖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 더 심한 학대를 한다는 상상도 하기 싫은 생각들이 떠오른 것이다.


“심지어 아율이가 그러는데, 연호는 엄마가 유치원에 데리러만 오면 자꾸 울고, 집에 가도 엄마가 밥도 주지 않아서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린 데. 항상.”


선록은 확신했다. 분명히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그리고 그 상황은 자신들이 들어갈 수 없는 현관 문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록은 자신들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막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그 아이를 구해 낼 수만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록은 흥분해있는 선영과는 다르게 최대한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는 항상 덜렁거리고 실수가 많다고 선영에게 핀잔을 받는 선록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선록도 지금 당장 자신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번에도 심증이 가는 것들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기껏 그들이 증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7살짜리 딸아이의 말이 다였고, 이런 사건의 특성상 무엇인가 어설프게 움직여서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숨거나 도망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선은 아율이를 통해서라도 최대한의 정보들은 얻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아!”


“어!”


“아율이 좀 바꿔줘”


“어. 잠깐만.”


선영은 바로 휴대폰을 들고 아율이에게 갔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아율이에게 선록의 전화를 바꿔주었다. 한참 영화에 빠져 있던 아율이었지만, 아빠의 전화라는 말에 표정이 바뀌며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어! 아율아. 유치원 잘 다녀왔어?”


“어! 나 아이스크림!”


“알았어. 사갈게. 근데 그보다 아빠가 연호에 대해서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줄 수 있어?”


“어.”


“연호가 입냄새가 심하게 나?”


“응. 아침에 오면 인사를 하는데, 그때 입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


“그럼 점심 이후에는 괜찮고? 양치질을 안 하려고 하지는 않아?”


“응 점심 먹고는 잘해. 양치질. 다 같이 하니까. 선생님이 주면 잘해. 근데.”


“근데?”


“연호 칫솔은 꽃 같아.”


“꽃? 꽃 모양이야?”


“아니 칫솔이 꽃처럼 활짝 폈어.”


아율이와 통화를 하고 있던 선록이나, 옆에서 듣고 있던 선영도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금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연호는 같은 칫솔을 꽤 오래 쓰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칫솔모가 바깥으로 휜 것을 아율이는 꽃이라고 이야기한 것 같다. 아율이의 표현력에 감탄해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선록과 선영에게는 그보다 연호의 상태가 더 중요했다.


“또? 집에서 밥을 잘 안 준데?”


“아. 맨날 맨날 엄마는 샐러드만 준데, 그래서 연호는 유치원에서 주는 야채도 안 먹어.”


“엄마가 데리러 오면 울고?”


“응. 바로 우는 건 아닌데, 엄마가 오고 나서 가는 것 보면 맨날 눈물이 흐르고 있어서. 친구들이랑 맨날 울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언제 이사 간데?”


“몰라. 몇 밤만 자면 금방 간다고 했는데,


“아율아. 혹시 연호가 어디가 아프다고 하거나, 멍이나 상처가 있거나 하지는 않아?”


선록은 이 말을 하면서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실은 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도 맘이 편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딸에게 나오는 답이 자신들이 우려하던 대답일까 겁이 나는 것도 있었다. 심지어 선록의 마음에는 이런 질문이 혹시 아율이에게 더 큰 자극이 돼서, 나중에라도 이 상황을 기억하게 되는 흔적으로 남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보다는 지금 연호의 구호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건 없는데. 그때, 체육선생님하고 씨름하다 다리에 멍이 든 적은 있어.”


“아. 그렇구나.”


선록은 그것만큼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이미 연호가 당하고 있는 행위들만으로도 아동학대나 방치로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있었다. 선록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아율이를 통해서 다시 확인 한 이유는 녹음이었다. 아율이가 우리에게 했던 말들은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특성상 혹시라도 나중에 강압적인 분위기가 되면 다른 진술을 할 가능성 있다. 그래서 선록이 생각한 방법은 전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내용들을 확인하고 녹취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아율과 통화를 하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워두었던 선록은 이제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아율이가 한마디를 더 했다.


“근데 아빠. 연호 이사 저기로 간데.”


“어디?”


“저기 우리 집 앞에 아침마다 꼬꼬닭 우는 데. “


“뭐?”


아율이의 말에 선영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창가로 가서 창문 밖을 내다봤다. 그곳에는 허름한 한옥집이 한 채 놓여있었고, 마당이 훤히 보이는 그 집에는 커다란 개 집과 좁은 닭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영은 그 집을 보면서 온몸에 돋아 있는 소름을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은 것은 선영만은 아니었다. 선록은 아율이에게 그 말을 듣자마자 처음 이사 오던 날이 생각났다.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옥집 한 채, 그때는 선록의 집 앞에 있는 성당도 들어오기 전이어서 그가 느끼기에는 아파트 옆 공터 구석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시골집의 느낌이었다. 그 당시 선록과 선영은 그 집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단지와 길하 나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11층에 사는 그들에게는 대문 안까지 모두 다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사 가지 않고 사는 것은 무엇인가 노리는 것이 있어 알박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 집의 존재가 더욱 강하게 인식이 되었던 것은 아침마다 우는 그 집의 닭이었다. 새벽만 되면 어김없이 우는 그 닭은 신도시에 살면서도 시골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고, 아침마다 알람 시계보다 먼저 깨워주는 울음소리에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공식적으로 민원을 넣은 건지 일 년쯤 지난 후부터는 닭 울음소리가 안 들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산책을 나가며 슬쩍 본 적은 있어도 큰 관심을 두고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 연호가 이사를 온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유치원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아파트 단지에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연호네 집에 이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은 행동이었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도 아파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불편한 곳일 텐데, 이곳의 땅값은 최근에 정말 많이 올라서, 결코 집값도 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돈 때문에 가는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그 집은 우리 아파트 단지와 바로 붙어 있는 집이기 때문에 절대 유치원을 관둘 필요가 없다. 즉, 이사를 핑계로 유치원을 관두게 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곳이라는 것이다. 선록과 선영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연호에게 전화를 받은 선영에게 선록은 이 말을 했다.


“우리 과수원 가자.”  


선록은 더 이상 부부끼리만 고민하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도움은 지금 선록의 입장에서 가족밖에 없었다. 선영도 선록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도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영은 이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대답을 했다.


“어.”


그렇게 선록과 선영은 또다시 무거운 문제를 안고 과수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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