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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Jul 29. 2022

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6

태호

태호

완수가 태호를 다시 만난 건 선애의 자살의심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쯤 후의 일이었다. 진짜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날의 민망함으로 인해 배달음식에 대한 의욕이 떨어진 건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시켜먹던 야식을 꽤 오랫동안 안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육아 퇴근 후, 야식의 유혹은 쉽사리 끊어 낼 수 없는 것이었고, 심지어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머릿속에 들어온 매콤한 불족발은 쉽게 이겨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불족발”


“발 냄새


“뭐야!”


“끝말잇기 하지는 거 아니었어?”


“불족발 먹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야!”


완수는 같이 TV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불족발을 찾는 선애에게 장난을 쳤다. 선애는 안 그래도 민망해서 참다 참다 말한 것인데, 살살 약을 올리는 완수의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다른 방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였지만 다행히 아영이는 깨지 않았다. 완수는 웃으며 선애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화가 나서 먹지 않는다는 선애를 겨우 달래서 불족발을 시켰다. 그리고 약 50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렇게 기다리던 초인종이 울렸다. 1층 현관에서 벨을 누른 배달기사를 인터폰으로 통해 확인한 완수는 얼굴이 다 보이지 않았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태호라는 것은. 내심 태호를 다시 한번 보고 싶었던 완수는 문을 열어주고 나서는 바로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마침 1층부터 올라오던 엘리베이터는 11층이 되어서 멈췄고, 태호도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완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꼭 한번 더 보고 싶었는데.”


“저도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예전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왔던 것 같은데, 주문이 안 들어오길래, 괜히 저 때문인가 신경이 쓰이기는 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 그냥 이번에는 다이어트가 좀 오래가는 것뿐이에요. 오늘로 또 끝이지만요.”


“오지랖 갖지만, 사모님께서는 굶는 다이어트보다는 근력을 좀 길러 놓으시는 것이 더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보통 여자분들은 자꾸 먹는 걸로 빼려고 하는 데, 그건 그냥 풍선 불었다 뺐다. 하는 거랑 똑같은 거거든요. 건강하게 빼시려면 그 풍선의 두께가 두꺼워져야 해요. 그게 근육인 거거든요.”


“완전 전문가신데요?, 전공이 그쪽이신 거예요?”


“아니요. 예전에 주로 하던 일이 그쪽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일이어서요. 뭐 대충만 알아요.”


완수는 태호의 저 친절함과 오지랖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사회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성향의 모습이 그를 더 끌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지금 직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태호보다 친절하고 태호보다 젠틀하다. 하지만 완수가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느끼는 점은 그들의 그 매너는 아주 냉정한 관계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통해 철저하게 움직인다. 사람들의 친절에는 모두 이유와 목적이 있고, 그것들이 사라지면 그들은 불친절이 아닌 무관심과 무시라는 태도로 변한다. 즉, 겉으로는 너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그 모든 이면에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다.


그런데 완수는 태호에게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유나 목적이 없는 친절함과 배려. 어쩌면 그런 그의 모습에 완수는 본능적으로 그와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 진짜 실례인 줄을 알지만, 연락처 좀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진짜 술이라도 한잔 하고 싶어서요.”


“아 정말 괜찮아요. 그렇게 안 해주셔도 돼요. 무슨 술까지 사세요.”


“어? 제가 술을 산다고는 안 했는데요?”


“아!”


태호는 순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완수는 그때를 기회라 생각하고 바로 자신의 폰을 태호에게 내밀었다. 태호는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오는 완수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제가요. 근데 너무 바빠서 정말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요.”


“제가 쉬워요. 저야 뭐 거의 퇴근하면 집으로 와서 기껏해야 게임이나 하니까요. 걱정 마세요.”


그렇게 완수는 태호의 연락처를 받았고, 그들이 진짜로 술을 마시게 된 것은 3일 후였다. 마침 오토바이가 고장 나서 배달을 하지 못했던 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완수에게 연락을 했고, 그들은 완수의 집 아파트 단지 치킨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 하기로 했다. 완수는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항상 배달 조끼를 입고 헬멧만 쓰고 있던 태호의 모습과는 다르게 일상복을 입고 있는 태호의 모습은 확실히 달랐다. 베이지색 슬랙스에 네이비 색 셔츠를 입고 온 그는 머리도 단정하게 세팅을 한 모습이었고, 신발도 아주 멋스러운 슬립온을 신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주 깔끔하고 멋스러워 보이는 그의 스타일링은 나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기업이라는 자신의 회사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특히, 신기한 것은 그의 옷태가 단순히 오늘만 신경 써서 입고 나온 느낌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이렇게 입어온 것처럼 아무런 어색함도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본적으로 키도 크고 마른 편이다 보니 얼핏 보면 쇼핑몰 모델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우와! 전혀 다른 모습인데요?”


“그런가요?


“나쁜 뜻은 아니고요. 평소에는 이렇게 다니시는구나. 신기하네요.”


“뭐. 그렇죠. 일 할 때야. 굳이 차려입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완수와 태호는 편하게 치킨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서로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둘의 대화는 아주 즐겁게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이 함께 마시는 술의 양은 늘어갔고, 술의 양만큼이나 서로가 지키고 있던 이성적인 벽도 허물어져 갔다. 둘은 정말 허물이 없는 친구 사이처럼 편하게 말을 하며 이야기를 했고, 대화의 내용은 서로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학창 시절 이야기부터, 군대 얘기, 사회생활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이 있었다. 완수가 태호에게 아무리 물어도 애매하게 답을 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 결혼은 했냐?”


“뭐.. 그게 중요하냐?”


“그게 안 중요하냐? 난 그게 제일 중요한데! 아예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거잖아!”


“그런가?”


“너 애도 없어?”


“뭐.. 그게 중요하냐?”


“그럼 넌 뭐가 중요한데?”


“별!”


“뭐?”


“별이 중요하지, 나한테는..”


“뭔 별이야. 너 천문학과나 이런 건 아니지?”


“그냥 나한테는 아직 별이 중요해. 반짝이든 반짝이지 않던.”


완수는 태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실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지역에서 꽤 오래 살고 있지만, 어느새 친구들은 다들 떠나서 동네 친구들도 거의 없고, 워낙 회사 사람들과도 공적으로만 지내는 자신의 성격에 때문에, 최근에는 누군가와 이렇게 편하게 술을 마셔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분명히 평소 자신의 주량보다도 적게 마셨지만, 이미 완수는 평소보다 많이 취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 배달일 하는 거야? 그 별 때문에?”


“어떻게 알았냐?”


“그냥 처음에 널 봤을 때도 뭔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은 들었어. 다른 기사님들이랑은 달랐으니까.”


“뭐가?”


“그냥. 그 일이 주는 묶은 때가 없는 느낌이었어. 보통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사람들에 대한 감정도 관심도 없어지는 뭔가 영혼이 없는 느낌이 있거든. 그런데 넌 그게 없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이 일을 오래 한 건 아니구나.”


“아닌데 나 꽤 오래 했는데….”


“아니면 오래 하지는 않겠구나…. 근데 오늘 보니까 더 그래. 넌 뭔가 지금보다는 더 근사하게 살았던 놈 같아.”


태호는 완수의 술주정에 조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 지금 실수하는 거냐?”


“아니야.”


“몰라. 나도. 내가 왜 몇 번 보지도 않은 너한테 이렇게 마음이 쓰였는지. 그리고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고 있는지. 근데..”


완수는 말을 하다 잠시 멈추고 태호를 바라봤다.


“그냥 그날 네가 우리 와이프를 자살의심이 된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고 나서도 서둘러 뛰어와서 우리를 봤을 때, 표정에서 뭔가 간절함이 느껴졌어. 그저 얼굴도 모르는 고객의 안위를 걱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누군가를 간절하게 걱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

  

“그래?”


“ 실례가 아니라면! 아니 내가 어차피 한 실수라면! 좀 묻자! 너 뭐 하는 사람이야?”


태호는 직접적인 완수의 질문에 살짝 당황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자신 앞에 놓인 맥주잔을 비우고는 완수를 보며 말했다.


“배달대행 기사!. 밤에는. 낮에는 퀵도 하고, 가끔 막일도 좀 뛰고, 택배도 좀 한 적이 있는데, 너무 힘들고 돈이 안돼서 지금은 안 하고. 그냥 돈 되는 건 뭐든지 하면서 살다 보니까. 뭐가 많다. 아! 답이 너무 지저분해….”


“사업했냐?”


“뭐?”


“젊은 나이에 사업하다 망했냐고? 내 주변에도 많아. 대학 졸업하고 스타트 업 하겠다고 뭉쳐 다니던 친구, 선후배들. 그중에 99%는 다 망해서, 다시 취업을 했거나, 전공이랑 상관없는 장사를 하거나, 너를 비하하는 건 아니다. 너처럼 배달대행이나 대리 기사 하는 사람도 많고.”


“차라리 개운하게 망한 거면 홀가분이라도 하겠다.”


“뭐?”


태호는 뭔가 말을 하다가 삼켰다. 그런 태호가 답답한 완수는 남은 잔을 비우고 태호의 것까지 생맥주를 시켰다.  


“너 때문은 아니지?”


“뭐?”


“지금 네가 이렇게 치열하게 사는 거. 너 혼자 잘살겠다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서.”


완수의 말에 태호는 또 말문이 막혔다. 완수에게는 지금 태호의 입이 커다란 댐에 난 구멍을 혼자 막고 버티는 작은 소년의 팔뚝 같았다. 뭔가 저 안에 언젠가는 터져버릴 묵직한 감정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태호는 잠시 멍하게 가만히 있더니 조용히 카운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메뉴판에 있는 순살 치킨 한 마리와 샐러드 두 개를 포장 주문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완수는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을 했다.


“누구 갔다 주게? 나도 나도 순살로 반반 하나만 포장해주라! 그리고 오늘은 내가 계산할 테니까. 너도 많이 시켜! 더 시켜!”


그 뒤로 완수와 태호는 몇 잔의 맥주를 더 마셨다. 다행히 대화는 우울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게임 얘기로 주제가 흘러서, 레벨과 아이템 얘기만 엄청하다가 결국은 조만간에 PC방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만 100번쯤 한 것 같다. 완수의 기억에 남은 그날의 마지막은 술 때문에 몸을 잘 못 가누는 자신을 현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선애가 민망할까 봐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서둘러 돌아가는 태호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반반 순살 치킨과 숙취해소 음료, 아영이가 좋아하는 젤리까지 들어 있는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완수는 그 봉투가 태호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태호와 술을 마신 완수는 그 뒤로 갑자기 바빠진 회사 일 때문에 며칠 동안 연락 한 번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얼굴을 바로 여기서 본 것이다. 선애가 갑자기 산 명품 백에서 나온 사진에서 말이다.


“누군데? 아는 사람이야?”


“태호..”


“누구? 그런 친구가 있었어?”


“당신 살려준 그 배달기사….”


“뭐? 진짜?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순간, 완수의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하는 배달 대행 기사. 그리고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남다른 패션센스가 있는 꽤 근사한 남자. 다이어트에도 뭔가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 같은 사람. 그런데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자신의 개인사는 절대 말하지 않은 이제 막 친해진 친구. 그리고 아내가 거래한 중고 명품백에서 나온 화려한 차림의 여자 뒤에 서있는 사진 속의 남자. 이 모든 인물이 태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완수는 왠지 모르게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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