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7
명품시계
명품시계
선애의 가방에서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참 바라보던 완수는 그날의 기억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태호와 술을 마시던 날. 그에게 느껴졌던 첫인상은 단지 깔끔하고 잘 차려입은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가 하고 있던 아이템들이 모두 굉장히 비싸 보이던 것들이었다. 완수는 워낙 그런 쪽에 관심이 없어서 브랜드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자신이 보기에도 그의 차림은 꽤 비싸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완수는 그냥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을 명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김대리에게 물어봤다.
“김대리야. 좀 투박하고 울룩불룩하게 생긴 신발인데, 전체적으로 다 검은색이고, 옆면 조금 밑에 부분에 흰색으로 B로 시작하는 단어가 쓰여있는 신발이 비싼 거야?”
김대리는 완수가 대충 말한 것만으로도 자신의 휴대폰을 통해 검색을 하더니 태호가 신었던 신발을 찾아냈다.
“혹시 이거예요?”
“어! 야. 너 이걸 어떻게 이렇게 바로 찾아! 대박인데?”
“이 정도야 뭐. 근데 이거 한 200만 원쯤 해요.”
“명품이야?”
“명품이죠. 근데 뭐 요즘에는 중고생들도 많이들 신으니까.”
“그럼 네이비 색 셔츤데 앞은 멀쩡하고 아무 로고도 없는데, 뒷면에는 뭔 사방에 화살표 같은 게 그려져 있었거든. 크게.”
“이거죠?”
김대리는 완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태호가 입고 있었던 셔츠를 바로 찾아내서 보여줬다.
“어!”
“이것도 비싼 건데, 이건 한 120은 할걸요? 근데 이런 건 왜요? 과장님 이런 거 관심 없잖아요?”
“아니 누굴 좀 만났는데, 그런 게 좀 기억에 남길래.”
“올~ 부자 친구 만났나 보네요. 남자가 옷까지 명품으로 입고 다니기 쉽지 않은데.. 어! 그럼 시계는 뭐였어요? 생각나요?”
“시계?”
완수는 순간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봤다. 완수가 기억하기에 태호가 분명히 시계를 차기는 했는데, 뭔가 눈에 확 띄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저 평범한 회색의 사각형 메탈 시계였다는 정도.
“시계는 평범하던데.. 좀 작은 사각형 메탈 시계였어..”
“대박! 혹시 이거예요?”
김대리는 뭐가 신났는지 금세 또 바로 시계를 찾아서 보여줬는데, 보니까 태호가 차고 있던 시계랑 비슷해 보였다.
“이거 맞는 거 같아.”
“대박! 과장님, 이거 1억이 넘어요. 진짜 비싼 시계라고요!”
완수는 정신이 얼얼했다.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자신의 집에 배달기사로 왔던 태호는 알고 보니 엄청난 부자였던 것이고, 그런데 부업으로는 감귤 마켓에 중고 명품들을 팔고 있다? 처음에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두 다 한다고 했기 때문에 혹시라도 중고 물품 거래를 부업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그 역시도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태호가 파는 명품들은 모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파는 것이었다. 실제로 선애의 말에 따르면 강남에 중고상에 가서 팔아도 중간 마진을 남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거래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 정말 장물인가?”
김대리 앞에서 완수는 자신도 모르게 혼잔 말이 튀어나왔다.
“예?”
“아.. 아니야..”
“근데, 저런 시계는 훔쳐도 못 팔아요. 일련번호도 다 있고, 만약에 케이스나 보증서도 없으면, 사주는 데도 잘 없고요. 심지어 이런 유명한 모델들은 우리나라에 몇 개 있는지도 본사에서 다 아는데, 괜히 어설프게 팔려고 했다가는 바로 철컹 철컹이예요.”
김대리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완수가 장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히려 태호가 하고 있는 다른 일들 때문이었다. 절도나 사기같이 다른 사람의 재물을 쉽게 빼앗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절대 몸이 힘든 일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요즘 배달기사들이 돈을 잘 번다고들 해도, 그가 차고 다니는 명품시계 하나만 잘 훔쳐서 팔아도 몇 달을 고생해서 벌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태호가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본 이상, 그가 손쉽게 도둑질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가지고 있었다.
“그럼 도대체 뭐지?”
완수의 머릿속은 점점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선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빠! 나 밴 또 잡았어!”
“뭐? 뭐라고?”
“응 이번에는 옷이야! 나 지난번에 드라마 볼 때, 이미나가 입고 있던 트렌치코트 너무 갖고 싶다고 했잖아! 그런데 글쎄 그게 딱 뜬 거야! 심지어 반값도 안 하게! 그래서 내가 바로 말 걸었는데! 내가 잡았어!”
완수는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옷이다. 태호가 감귤 마켓에 옷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중고거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름 몇 년 동안 집중해서 중고거래를 해온 완수에게 옷을 파는 것은 좀 다른 시그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태호가 그 밴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들게 한 것도 실은 판매 순서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팔아야 하는 순간이 되면, 우선순위라는 것이 생긴다. 즉, 자신이 팔아야겠다고 생각하는 혹은 팔 수 있겠다는 물건들부터 정리해서 그중에서도 자신이 애정 하는 정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것이다. 그럼 보통의 경우는 대부분 오래된 것부터, 많이 비싸지 않은 것들부터 팔게 된다. 그런데 밴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판매한 제품에는 가격이나 출시년도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집히는 것들을 무작위로 팔았던 것처럼.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신기한 것은 카테고리는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액세서리, 주얼리, 가방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 사치품에 가까운 것들이라는 공통점은 있었다. 그런데 옷은 다르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고 해도 옷은 우리가 보통 사치품이라는 인식보다는 생필품. 즉,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중고거래에서 옷을 거래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심지어 아무리 비싼 옷을 거래한다고 해도 옷의 특성상 왠지 헌 옷은 이미지와 느낌 때문에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팔지도 못한다. 그런데 이제 그가 옷을 팔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의 환경에 무엇인가 중요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혹시 그거 말고도 다른 것도 많이 팔았어?”
“어. 어제오늘 패딩이랑 카디건도 팔았더라. 다 사고 싶었던 거기 한데, 좀 과하지.”
“혹시 그럼 애들 옷도 팔아?”
“아니.”
완수는 아이 옷은 안 판다는 말에, 그의 상황의 무엇인가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아이들의 옷은 판매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빨리 크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입히지 못하고 시기를 놓지는 경우도 많고, 선물 받은 옷들도 아이마다 성장의 속도가 다르다 보니 한 번도 못 입혀보고 계절을 넘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 딱히 물려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면 중고거래로 파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집안 사정이랑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성인의 옷은 진짜 경우가 다르다. 정말 선물 받은 옷이거나 해외직구로 저렴하게 샀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이 파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정말 웬만해서는 입던 옷을 잘 팔지도 않고, 헌 옷은 많이 사 입지도 않는다. 그런데 옷들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순간 완수는 태호에게 전화해서 모든 것을 물어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그날의 술자리에서처럼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모든 생각들을 솔직하게 물어본다면 꽤 시원한 답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완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만약 그가 자신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라면 그는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태호와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일방적인 호감으로 시작된 아주 얇은 관계, 그마저도 자신의 생각들로 인해 찝찝한 의심이 가득한 상태다. 지금은 자신이 전화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그가 어떻게 받아 드릴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니 그가 쉽게 무엇인가를 묻거나 따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이 모든 걸 모른 채 하고 그냥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완수는 아무렇지 않은 채 모른 척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술자리에서 태호가 자신에게 했던 그 농담 같은 말들이 아직도 완수의 머릿속에 아주 정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일이야. 난 정말 절대 내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절대 절대!”
“그렇지 나도 정말 싫어.”
“그런데 더 무서운 이야기가 뭔 줄 알아?”
“뭔데?”
태호는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그 자리가 마무리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완수의 기억에 단편적으로 태호의 말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기다리는 일…”
어느 대화에서, 어떤 맥락으로 그 말이 나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저 선명하게 저 문장만이 완수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왠지 그의 그 말이 지금 완수가 생각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완수는 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은 자신 혼자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지금 가족의 힘이 필요했다.
“선애야. 우리 과수원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