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비결 of토정-에필로그 둘.

네 번째 장편소설

by 박희종

여자는 태어나 자란 이 마을만 떠날 수 있다면, 뭐든지 상관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항상 짐 보따리를 쌓아놓고 살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회는 왔다. 삼대독자의 원인 모를 병을 낫게 해 보겠다고, 그 마을 부자 집에서 벌인 굿판을 구경 갔다가, 신명 난 가락을 연주하던 소리꾼에게 맘을 뺏긴 것은, 그녀가 이 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무당 패거리가 마을을 떠나던 날. 남장을 하고 맨 뒤에 따라붙은 여자는 한나절을 더 걷고 나서야 무당에게 들키고 말았다. 반반한 외모에 욕심이 가득한 눈빛이 맘에 든 무당은 자신의 뒷바라지나 하며 따라다니라고 여자를 허락했다.


그렇게 굿판을 쫓아다니던 여자는 온갖 음식이 가득하고, 신명 난 가락이 넘치는 굿판이 좋았고, 구성진 목소리로 마음은 훔치는 소리꾼이 좋았다. 그녀의 맘을 눈치챈 남자 무당은 그녀의 욕심을 이용해 그녀의 몸을 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온 세상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은, 모시는 신이 하나가 아니라서 그런 거야.”


“무당 하나에 귀신 하나 아닌가요?”


그녀의 허무맹랑함이 더 맘에 든 남자 무당은 있지도 않은 동자신을 꾸며내며 여자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뭐, 보통은 그렇지만, 나는 담는 그릇이 워낙 커서 장군님도 모시고, 신령님도 모시고, 동자신도 모시지.”


“동자신이요?”


“역시 감이 달라. 내가 모시는 신중에서 제일 센 신인데. 성격이 원체 지랄 맞긴 해도, 신명함은 어린 만큼 하늘을 찌르지.”


“진짜요?”


“지난주, 그 부잣집 남편 바람기 잡은 것도 다 동자신 능력이라니까.”


“우와. 멋지다.”


“내가 줄까?”


“예?”


“내가 말만 잘하면, 너한테 보내 줄 수도 있지.”


“그래도 돼요? 그렇게 영험한데?”


“괜찮아. 나야 그릇이 넓으니 워낙 신들이 탐을 많이 내서.”


“그럼 줘요. 나. 그 동자신 줘요.”


갑자기 남자 무당의 표정이 음흉해졌다. 여자는 표정의 의미가 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좀 들어보기로 했다.


“나도 네 그릇을 알아야 동자신을 보내주지.”


“제 그릇이요?”


“그래. 신을 담을 그릇. 네 몸뚱이랑 마음의 크기 말이야.”


“그걸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아니 합방을 해야 알지.”


“합방이요?”


“그래, 내가 딱 살을 맞대 보면 그 사람의 그릇이 다 느껴지거든.”


그 순간 여자는 무당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는 순간, 집안의 화초 같은 삶을 기대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은 구성진 가락의 소리꾼의 노래였다.


“말 나옴 김에 오늘 합방을 하면, 내가 내일 동트는 때에 동자신을 넘겨주마.”


“그 합방이 월경 중에도 괜찮을까요?”


무당은 여자의 말에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뭔가 자신의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 것이 매우 불쾌한 모양이었다. 여자는 무당의 표정을 보고 어떻게든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 날이니 합방은 정결한 내일 하지요. 내일은 제가 목간도 다녀오지요.”


“그러던가.”


무당은 못내 아쉬워했지만, 내일이라는 말에 하루만 더 참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여자는 그날 밤, 결국 소리꾼의 콤콤한 여인숙 방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어차피 귀신에게 몸을 팔아 살기로 한 팔자, 무당에게 한번 몸을 허락하는 것이 못 견딜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인으로 태어나 첫 경험만은 마음을 준 이에게 남기고 싶었다. 이미 여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던 소리꾼은, 자신의 마음도 같아, 말없이 이불로 들어오는 그녀의 살결을 막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밤을 보내며 그도 알게 되었다. 오늘 밤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는 동이 트기 전에 잠이 든 그녀가 깨지 않게 조용히 짐을 챙겼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 밑에 쪽지 하나를 남기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대 고운 꽃병이 되어 주오.

맑은 물에 들꽃 담아 창가에 두고 보게.

가끔은 비가 오고, 볕이 아파 쓰라려도

그대 고운 꽃병 되어 이 세상을 달래 주오.

그대가 꽃병 되어 아픈 이를 달래 줄 때.

나는 그대 소리 되어 슬픈 그대 달래겠소.

벚꽃 피면 만납시다.

벚꽃 피면 만납시다.

나는 그대 향기 찾아.

그댄 나의 소리 찾아

벚꽃 피면 만납시다.

벚꽃 피면 만납시다.

나는 그대 향기 찾아.

그댄 나의 소리 찾아


여자는 아침에 눈을 뜨고 울지도 못했다. 떠난 마음은 아팠지만, 자신의 삶을 보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서. 인사도 없이 떠난 그 마음은 미웠지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또 설렜기 때문이라.


여자는 그날 밤, 남자 무당과 합방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굿을 한 집의 주인과 합방을 했다. 그다음 날은 그 동네 이장과 합방을 했고, 그다음 날은 그 마을 부동산 주인과 합방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달에는 무당 패가 떠난 여관방에 혼자 남겨졌다. 그것은 아마 합방을 하던 북치는 고수에게 동자신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악다구니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는 그렇게 혼자 남겨진 여관방에서 소리꾼이 떠나던 날 흘리지 못했던 눈물까지 모조리 쏟아버렸다. 그리고 그날 그 여자의 한이, 그 여자의 눈물이, 주인 없이 떠돌던 동자신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 동자신을 받았다. 동자신은 차가운 여관방에서 여자 울고 있던 여자의 귀에 한마디를 하고는 소리꾼이 부르던 노래를 흉내 내며 부르고 있었다.


“뱃속에 선물이 찾아왔네. 과연 누구 씨일꼬?”


깊은 강속에 빠져들어간 외할머니는 물속으로 깊게 들어갈수록 자신의 나이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들어간 강바닥에는 구성진 가락과 함께 소리꾼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창살이 쳐있는 창문을 보며, 벚꽃을 기다린다. 구성진 가락의 소리꾼이 곧 올 것만 같아서.


“벚꽃 피면 만납시다.”

“벚꽃 피면 만납시다.”

“나는 그대 향기 찾아.”

“그댄 나의 소리 찾아”

“벚꽃 피면 만납시다.”

“벚꽃 피면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