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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19. 2022

감귤 마켓 셜록 그 두 번째 이야기

10. 과수원

10. 과수원

장인과 장모는 그 이후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수많은 편지들에 쓰여 있는 피로 쓴 글씨들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한 장인은 해가 뜨자마자 과수원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었지만, 가만히 있으면 마음만 심란해져서 인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장모도 마찬가지였다. 장인이 과수원으로 나가자마자 장모는 이것저것 반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미뤄두었던 것들은 하나씩 만들어 반찬통에 소분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맘이 심란해서 쉬지도 못하는 거, 그저 딸들에게 줄 반찬만 잔뜩 만든 것이다.


새벽부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장인과 장모였지만, 누구도 허기가 진다거나, 아침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각자의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그때 선록과 선영이 과수원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저희 왔습니다. “


“아빠! 우리 왔어요.”


“할아버지!”


장인은 선록의 가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야 뭔가 정신이 좀 들었다.


“아버지. 식사는 하셨어요?”


“어? 아니…”


그리고 장인은 선록의 식사 인사를 받고서야 자신이 일어나서 지금까지 물 한 모금을 마시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정신이 좀 들고나니 지금까지 무리했던 피로와 허기가 한 번에 몰려왔다.


“들어가자. 기운이 다 없네.”


“왜? 기운이 없어? 밥도 안 먹고 일을 한 거야? 엄마는”


힘들어 보이는 장인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자, 장모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에 홀린 듯, 밑반찬을 하고 있는 장모의 앞에는 다양한 밑반찬이 담겨있는 접시들과 그 반찬들이 담겨 있는 반찬통이 쌓여 있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어디 여행가?”


“아니. 니들 반찬 좀 하다 보니까. 좀 많이 했네.”


“이게 조금 많이야? 아주 동네잔치를 하겠는데?”


“해줘도 말이 많아. 그냥 가져다 먹으면 되지.”


장모는 조금은 민망한지, 자신을 타박하는 선영에게 한마디 했고, 그 사이에 분위기를 파악한 선록은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왜 나는 다 맛있어 보이는 데..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밥은 있죠?”


“밥?”


장모는 정신없이 반찬만 하다 보니 밥을 하는 것을 깜빡했고, 순간 당황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데, 때가 돼도 밥도 안 해?”


장인의 한마디에 장모도 같이 한마디를 받아치려 했지만, 이번에도 선록이 중간에 적절하게 끼어들어 말을 막았다.


“제가 가서 즉석밥이라도 좀 사 올까요? 새로 생긴 주유소에 편의점이 있더라고요. 제가 바로 사 올게요.”


“아니야. 냉동실에 밥 있으니까. 레인지에 돌리면 돼.”


장모는 그 말을 하고는 기운이 빠졌는지, 식탁에 앉았고, 선록은 바로 냉장고로 가서 밥을 찾고 있었다. 오늘따라 장모와 장인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선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식탁 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사이 선록은 밥을 레인지에 데우기 시작했고, 장인과 장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순간을 깨운 건 아율이의 노랫소리였다.


“레인 레인 고 어웨이~”


아율이의 야무진 노랫소리에 다시 정신이 돌아온 장인과 장모는 어느새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다 데워진 밥은 그들이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결 편안해진 분위기로 모두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때 들어온 완수네 가족들 덕분에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가족들은 모두 서로에게 할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마 모두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 짧게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과수원의 일을 도우면서 포도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은 해가 지기 시작해서야 더 이상 오지 않았고, 미리 식사 준비를 해 놨던 장모는 아이들부터 먹였다. 그리고 장인은 아이들끼리 놀 수 있도록 화장실에 미니 풀장을 설치해서 물을 받아주었다.


아이들은 화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그때서야 모여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탁 가운데에 놓인 김치찜은 너무 먹음직스럽게 생겼지만, 아무도 밥을 열심히 먹지도 않았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하지도 않았다. 각자 서로를 신경 쓰며 깨작깨작 밥을 먹던 묘한 분위기는 장인의 말로 깨어질 수 있었다.


“우리 샤인 머스켓을 엄청 좋아한다던 젊은 여자, 내가 말한 적 있지?”


“아. 예! 매년 와서 덤도 엄청 먹고, 사가는 것도 엄청 사간다는 그 여자요?”


“그 여자 우리 아파트 산다고 하지 않았어? 그 사람은 왜?”


“그 여자가 이상해.”


장인이 꺼낸 말에 장모가 말을 거들었다. 선영은 그 여자가 자신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관심이 있었다.


“원래 좀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어?”


“처음에야 그랬지. 그래도 최근에는 우리랑도 살갑게 지내고 좋았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예전처럼 돌아가 버렸어.”


“그래?”


“그런데 그 성격이 쌀쌀해진 게 문제가 아냐. 갑자기 샤인 머스캣 100 상자를 주문했어!”


“우와. 진짜?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거 아니야? 진짜 대박이다.”


“근데 그걸 다 배달해달래.”


“해줘야지 엄마. 100 상자면 얼만데 당연히 갔다 줘야지!”


“그런데 그게 100군데야! 다 각자. 그것도 심지어 전국적으로.”


“뭐? 아니 그게 말이 돼? 우리 택배도 못해주는데, 그걸 어떻게 해줘.”


“근데 배송비까지 1000만 원을 현찰로 주고 가더라. 번거로워도 꼭 부탁한다고.”


장모는 한쪽에서 두었던 현금뭉치를 들고 나왔다. 딸들과 사위들은 이미 1000만 원이라는 말에도 놀라 있었지만, 오만 원권 돈뭉치를 실제로 보자 더 말이 막혔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던 상황에서 선록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가야죠. 갈만하네요.”


“그렇지, 가야지.”


“갈만 해. 100군데가 다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다 서울, 경기에 몰려 있고 몇 군데만 지방에 있어.”


장모는 사위들에게 주소가 적혀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선록과 완수는 리스트를 찬찬히 살펴봤다. 그리고는 서로 이 정도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장인에게 말했다.  


“진짜 그러네요. 이 정도면 저희가 열심히 돌아다니면 일주일이면 다 배달하겠는데요. 근데 아버지 샤인 머스캣이 그렇게 한 번에 나올 수는 있어요?”


“일주일이면 하루에 열댓 상자 빠지는 건데. 그거야 하지. 근데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야.”


“또 다른 문제가 있어?”


장인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밤새 괴롭혔던, 그 여자가 주고 간 편지들을 가지고 왔다. 편지가 든 쇼핑백을 가지고 오는 장인의 표정이 너무 어둡고 진지하다 보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가족들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장모는 장인이 가져온 쇼핑백을 받아 식탁의 빈 곳에 두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쉬고는 편지 하나를 꺼냈다.


“그 여자가 포도를 지인들한테 선물로 보내는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하나씩 넣어 달라고 부탁을 했거든, 근데 이 편지들이 좀 이상해.”


장모는 편지봉투에서 편지지를 조심스럽게 꺼냈고, 그 편지지 안쪽을 자녀들에게 보여줬다. 처음에는 뭔지 모르고 가깝게 다가왔던 가족들은 한눈에 들어오는 빨간색으로 쓰인 이름에 크게 놀랐고, 선애는 자신도 모르게 너무 놀라서 짧게 소리를 질렀다.


“악”


“엄마. 이게 뭐야? 이거 설마 피야?”


선영은 너무 놀라서 장모에게 물었고, 선록과 완수는 그새 정신을 좀 차리고 더 가까이 가서 편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 아마도 진짜 피 같은데?”


“우와 소름 끼치네. 혈서 혈서 말을 들어봤지만, 진짜 본건 처음이네요. 사람 원한이 얼마나 깊어야 이런 걸 쓰지?”


“어머니, 설마 저 편지 100통이 다 이런 식이예요?”


“어. 내가 쭉 봤는데, 하나만 빼고 다 그렇더라고,”


“100통이 다 이 정도면 피 양도 장난 아니겠는데요”


완수는 자신도 모르게 농담조로 말을 했다. 그 모습이 불편한 선애는 완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장인은 완수의 말을 농담으로 받지 않았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대꾸를 했다.  


“손가락 열개를 다 붕대로 칭칭 감고 왔더라고, 붕대마다 때가 탄 것도 다른 걸 보니, 몇 날을 이걸 쓰느라 이 손가락 저 손가락에 지가 상처를 냈을 것이고, 어째 걔 낯빛이 곱지가 않았어.”


장인의 말에 완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고, 선록은 그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록이 그 편지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편지의 내용이나 피로 쓴 글씨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었다. 피로 쓰인 이름 “이지연”. 여자 이름으로 흔한 이름이기는 했지만, 왠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추억이고, 그 사이 아주 작은 소식도 직접 들을 적이 없는 존재였기에, 이렇게 떠오르는 것이 오히려 신기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 이름을 보고 있자니 뭔가 그 시절의 그녀가 떠올랐다.


“왜? 뭐 또 이상한 게 있어?”


“아니야. 그냥 신기하고 찝찝해서.”


 선록이 그 편지를 보고 있는 동안, 선애와 완수는 어제 장모가 그랬던 것처럼 편지를 하나씩 펴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20통의 편지를 읽던 선애는 편지를 내려놓고 울기 시작했다.


“진짜. 다 읽지도 못하겠다. 이렇게 원망이 많은데, 그동안 어떻게 살았지?”


“그동안은 그 원망을 꺼내 놓지 않았으니까. 살았겠지.”


“뭐?”


장모가 선애가 읽은 편지들을 봉투에 다시 담으며 말했다.  


“그 원망들을 꺼내 놓지 않고, 맘에 담고 살면, 힘은 들어도 살게는 돼. 자기만 잘 숨기면 아무도 모르니까. 그런데 왜인지는 몰라도 그 원망이 이렇게 다 밖으로 나와버리면 이제 그때부터가 더 지옥이지. 속에 담아두면 그게 얼마나 큰지도 모르고,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고 그저 그냥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다 뱉어서 써놓고 나면 ‘내가 그동안 지옥에 살았구나.’, ‘앞으로 이걸 어떻게 다시 속에 넣고 사나.” 싶을 거라고. 그게 무서운 거야.”


“그럼 혹시”


“그래. 아무리 봐도 우리는 이게 유서 같아. 마지막으로 속에 있는 거 다 끄집어 내놓고 어디 가려는 거 같다고. 그래서 내가 포도는 전해주겠는데, 이 편지는 죽어도 못 주겠는 거야. 왠지 이걸 다 전해주고 나며 걔가 딱 죽을 것 같아서.”


“아.. 그럼 어쩌지?”  

  

“막아야지 뭘 어떻게 해? 엄마, 그 여자 연락처 없어?, 우리 아파트에 산다고 했지? 주소는 알아? 혹시 몇 동에 사는 지라도 알면 내가 수소문을 좀 할 수 있잖아.”


“아무것도 몰라. 너네 아파트 산다는 것도 벌써 몇 년 전 얘긴데, 계속 사는지도 모르고.”


“그럼 어떻게 알죠? 우리가 이걸 배달한 걸?”


“아마도 기다리고 있겠지. 자신의 이름까지 넣어서 이런 편지를 보내면, 그쪽에서 뭐라 답이 오기 시작할 거고, 대충 자신이 보낸 사람들한테 포도가 다 갔다 싶으면 그때 뭘 하려고 하겠지.”


“그럼 어떻게 하죠?”


선록은 가족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심상치 않은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생각의 정리가 되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진짜 아버지 말대로 포도는 배달을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럼 아마도 이 사람들 중에서 그 여자한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죠? 아마 편지를 주지 않으며, 단순하게 감사인사만 할 거예요. 그럼 그 여자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죠? 그럼 그때는 그 여자가 과수원에 다시 오지 않을까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일이 풀려가니까 말이에요.”


“좋네. 좋은 생각이야.”


“그럼, 그렇게 그 여자가 왔을 때, 우리가 설득을 해보자는 거지?”


“예 아무래도요. 제가 생각할 때는 어머니 아버지의 존재가 그 여자한테는 생각보다 컸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이 중요한 마지막 인사를 어머니 아버지께 부탁을 하죠. 그러니까 그 여자를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 아버지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게 아니면?”


“뭐?”


“엄마 말대로 이 원한이 입 밖으로 나온 이상 , 그때부터가 진짜 지옥이면, 마지막까지 진짜 기다릴까? 이게 무슨 진짜 복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그냥 유서잖아. 그럼 누가 내 유서를 읽고 정말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고 자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써놓고 죽는 거 아냐?”


“맞아요. 저도 그럴 거 같아요. 이게 무슨 언론사에 제보를 한 것도 아니고, 이게 대상에게 전달 됐다고 뭔가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진짜 그냥 이 행위만으로 이제 정말 위험한 일을 시도할지도 모르는 거죠?”


“그럼 어떻게? 사람부터 찾아야 하나?”


선록은 표정은 더 굳었고, 무엇을 생각하는 듯이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더 이 포도를 배달해야 해요. 우선 포도 배달을 최대한 하면서 그 여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지금 우리한테 정보가 없다면, 그리고 심증만이라서 신고를 할 수도 없다면 더더욱 받는 사람들한테 정보를 찾아야죠. 비록 원수지간 일지라도.”


“그래. 그럼 우선 당장 내일부터라도 다녀보자.”


선록의 말에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문득 완수는 자신과 가족들의 행동에서 태호가 생각났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이곳에 있는 이유도 떠올랐다. 장인의 일이 좀 정리가 된 듯한 분위기에 완수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저도 할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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