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딜 버터가 다 떨어졌다. SNS상에서 돌던 레시피로 만들었던 레몬 딜 버터는 빵 반찬이라는 별명에 어울리게 우리의 수많은 식빵들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틈틈이 스테이크에도 도움을 주고 나니, 어느새 텅 빈 통을 드러냈다.
다시 레몬 딜 버터를 만들기 위해 아내에게 재료를 구매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름에서처럼 레몬과 딜과 버터가 필요했다. 레몬은 과일용 세정제로 잘 씻고, 끓는 물에 소독도 했다. 딜은 원래 냉장으로 파는 것을 사서 손질해서 쓰곤 했는데, 이번에는 후기가 좋은 냉동 딜을 샀다.(후기는 좋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배송과 서비스가 최악이었는데, 이 내용은 조만간 따로 써볼 생각이다. 보고 있나? 컬리 누나?) 그리고 버터는 향이 너무 강하지 않은 적당한 것을 샀다.
제일 먼저 레몬 제스트를 만드는데, 2번을 만들어본 결과 레몬 제스트가 많이 들어간 것이 더 상콤하고 맛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아주 넉넉하게 3개를 구매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본 레몬은 사이즈 차이가 너무 컸다. 하나는 일반적인 사이즈이지만 두 개가 너무 작았다.(컬리 누나 보고 있나?) 그래서 우선 제일 큰 것부터 강판에 갈기 시작했는데, 역시 큰 것이 양이 넉넉히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다음에 바로 작은 레몬을 갈기 시작했는데, 신기한 것은 레몬 자체는 작았지만, 껍질이 두꺼워서 레몬 제스트의 양이 훨씬 많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두 개가 다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큰 레몬보다 작은 레몬이 더 많은 레몬 제스트를 만들어 주었다.
신기했다. 대부분의 과일은 크기가 크고 껍질이 얇은 것이 더 맛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수박이나, 오렌지나 자몽이나, 심지어 포도도 알이 크고 껍질이 얇은 것이 더 맛있다. 그런데 속의 내용물을 쓰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쓰는 요리에서는 비록 작아도 껍질이 두꺼운 것이 훨씬 더 큰 장점이 되는 것이다.
순간, 우리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어느새 사회적으로 정립되어 있는 기준에 맞춰 서로를 비교하고 판단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장점들도 그들이 속해있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같은 분야에서의 비교가 아닌 그저 보편적인 기준들에 맞춰 비교하다 보니, 가끔은 스스로가 가진 가치보다 평가가 절하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낮아진 자존감은 단순히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힘을 약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여가의 삶에서도 참 많은 쓸쓸함을 주곤 한다.
식재료도 요리의 종류에 따라 선택하는 종류가 달라지듯이 우리들의 장점들도 어쩌면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힌트가 되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욕먹을 사람이 아니야." "분명히 너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어!" "걱정하지 마."
그러니 혹시라도, 누군가의 시선에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의 장점을 잘 들여다보고, 스스로가 더 돋보일 수 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으면 한다. 작지만 껍질이 두꺼워 나에게 근사한 레몬 딜 버터를 만들어 준 못난이 레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