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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종 Sep 14. 2022

알밤이 익어가는 계절

이 계절이 제일 좋아

 나는 도시에서 자랐다. 내가 주로 뛰어놀던 곳은 시멘트 바닥의 골목길이었고, 동네 건물의 주차장이었고, 동네를 가로지르던 개천이었다. 내가 자라던 도시에도 계절을 찾아오기 때문에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가로수 볼 수 있었고, 가을이면 어김없이 구린 냄새와 함께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도 볼 수 있었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볼 수 있는 과실수는 은행나무가 다였다. 하지만 그런 도시 꼬마에게 추석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성묘길에는 커다란 밤나무도 있었고, 듬직한 감나무도 있었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밤송이나 저 높이 매달린 감들을 신기하게 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알려주셨다. 떨어진 밤송이를 양발로 까는 법이나, 잠자리채 주머니가 달린 기다란 장대로 잘 익은 홍시를 터트리지 않고 따는 법들을 말이다. 그렇게 직접 주운 밤으로 주머니를 가득 채우면 나는 신나서 어머니께 뛰어가곤 했고, 어머니는 항상 기특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는 탐스러움 알밤을 보며 좋아하셨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가 따주신 달콤한 홍시도 온 가족이 한입씩 맛보며 그 달콤함을 나누곤 했었다.


 주말에 과수원에 갔다. 이 시기에 장인어른은 항상 포도 수확에 정신이 없으셔서, 커다란 밤나무 밑에 떨어진 밤을 줍는 것은 언제나 내 몫이다. 나는 어느새 알암 불어 떨어진 밤들을 보면, 어린 시절 그날들이 떠올라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서 나는 누가 말하기도 전에 항상 바구니와 집게를 챙겨 밤나무 밑으로 향한다. 유난히 밤나무 밑에 극성인 모기떼들과 싸우며 커다란 바구니 가득 밤을 줍고 나면,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뿌듯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올 추석에도 연휴 첫날 알밤 한 봉지 주워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고, 어머니는 그 시절처럼 또 탐스러운 알밤들을 보며 흐뭇해하셨다.


 나는 알밤 중에 가장 크고 탐스러운 것들을 골라 아이에게 주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커다란 알밤을 보며 신나서 가지고 놀기 시작했고, 그 덕에 보고 있던 TV 만화는  뒷전이 되었다. 그렇게 커다란 알밤들과 신나게 노는 아이를 보면서 이제는 또 다른 기쁨 생겼음을 느꼈다. 


 알밤이 익어가는 계절이 왔다. 밤나무에 알암 불어 벌어진 밤송이도 이쁘고, 그 밑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알밤들도 이쁘다. 그리고 그  밤을 주워가면, 좋아하는 장인어른, 장모님, 어머니, 아내, 그리고 우리 딸아이도 이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삶아 껍질을 까서 한알 입에 넣으면 입안 가득 차는 그 포근함과 부드러움, 고소함과 달큼함이 좋다.


 이번 주말에 주운 알밤은 우리 어머니의 근사한 저녁 간식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장인어른과 나는 그 밤들을 잘 삶아서 가족들에게 까주면, 내 아내와 딸에게아주 행복한 간식이 될 것이다. 가을은 좋은 것이 정말 많은 계절이지만, 그중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 알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알밤이 익어가는 계절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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