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했던 연극 작품에서 나온 이야기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꽤 오랫동안 연극배우로 살면서 주목받지 못했던 여주인공이 하던 대사였다 "남극을 여행하는 크루즈선이 있었어. 사람들은 눈에 보일 듯한 빙하들을 보면 항해사에게 저 빙하까지 가자고 이야기를 해. 하지만 노련한 항해사들은 절대 가지 않아. 보이는 것보다 빙하가 더 멀리 있다는 것을 알거든. 그런데 초보 항해사는 승객들의 성화에 이끌려 빙하를 항해 나아가지. 그런데 아무리 가도 빙하는 아직도 멀리 있는 거야. 결국 빙하를 향해가다가 기름이 떨어져 버린 배는 더 이상 가지도 못하고 바다에 떠있을 수밖에 없지. 지금 내가 그런 거 같아 배우가 되겠다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끝이 보이지 않아. 그런데 이제 더 나아갈 힘이 없어. 그래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려서 돌아갈 힘도 없어. 나는 지금 남극에 떠있는 기름 없는 배 같아"
지난주 "너의 목소리가 보여 7"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명가수 '소울 크라이'가 나와서
"이름 없는 가수로 지금까지 왔는데 앞으로 갈 힘은 남아 있지 않고, 뒤돌아 보니 너무 멀리 와있어서 막막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저 공연의 저 대사가 생각이 났다. 내가 그 공연을 봤을 때는 25살 정도였고, 연극에 한참 빠져서 빙하만을 향해 나아가는 초보 항해사 같았다. 하지만 저 연극의 대사는 내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혹은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꿈 독"
나는 꿈 독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이미 명명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꿈 독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너무 긴 꿈을 꾸거나 꿈에 대한 미련으로 중독이 되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증세다. 나는 예술분야에 있다 보니 꿈 독에 빠져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들을 관리하는 역할로 일하던 시절. 꿈을 향해 오로지 앞만 보는 수많은 어린 친구들을 만났다. 그래도 내가 함께 했던 친구들은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고 연습생 생활을 하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각종 아이돌 팀에서 혹은 배우로 많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은 꿈의 언저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뱅뱅 돌기만 하고 있다.
나는 저 연극을 보고 결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는 절대 꿈 독에 빠지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고, 나이에 비해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예술 분야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세계였다. 나보다 훨씬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선배들이 있었고, 나보다 부족한 재능과 실력으로도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수많은 동기나 후배들을 봤다. 결국 버티느냐의 싸움일 수 있겠으나 나는 그리 오래 버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꿈을 도망쳐온 사람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 바닥에서 자신의 꿈을 항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위해 꿈 독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일을 해왔다. 무수한 사람들을 트레이닝시키고 응원하면서 성공을 돕던 내가 내 입으로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모습과는 모순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충언하고자 한다.
"꿈 독에는 빠지지 말라고"
꿈은 너무 달콤해서 내 꿈의 미래를 꿈꾸는 순간 현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어떤 기회로라도 꿈의 맛을 볼 수 있는 계기까지 있다면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꿈의 바다에 빠지게 된다. (나의 경우는 20살의 나이로 내가 쓴 창작극이 무대에 올랐던 경험이 있었고, 그 당시 베스트 극장 공모전에서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 경우 눈에 보이는 빙하처럼 그 달콤한 꿈에 빠져 점점 앞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무서운 것은 꿈 독에 빠지는 순간 자신의 냉정함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모든 상황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의 노력이 효과적일 수 없다. 효과적이지 않은 노력으로 처음에 주목받던 재능이 점점 더 평범해져 갈 때 많은 사람들은 힘들어지고 우울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맛보았던 꿈의 맛이 너무 달콤해서 포기하기를 못한다. 이 단계가 되면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바꿔볼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꿈을 포기하고 새로운 꿈을 찾을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꿈 독의 가장 큰 부작용은 바로 현실감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는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꿈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삶보다는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꿈 독에서는 빠져나와야 한다. 나의 꿈이 나에게 독이 되는 순간 나의 재능도 노력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뱅뱅 돌기만 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나의 꿈이나 재능을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고, 의외의 상황으로 내 꿈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꿈을 꾼다면 그리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럴수록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평가하길 바란다. 꿈은 나를 달달하게 만드는 감성적인 단어지만 그 꿈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노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가 꿈 독의 무서움을 알게 된 시절에 끄적였던 가사 한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꿈 독
눈에 보이는 저 빙하를 따라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나만의 노래를 따라 이렇게 한없이 그렇게 나는 따라가고 있는데
눈에 보이는 저 빙하의 끝은 아무도 닿을 수 없는 나만이 모르고 있는 이렇게 한없이 그렇게 나는 쫒아가고 있는데
꿈 독에 걸려서 내 눈이 흐려져 바로 앞에 있는 꿈이 잡히지 않아 꿈 독이 퍼져서 내 맘이 무너져 저 멀리 있는 꿈이 잡힐 것 같아
빙하를 따라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 너무 멀어진 나 되돌아 갈 힘이 없어서 이렇게 한없이 그렇게 나는 이대로 떠 있는데
꿈 독에 걸려서 내 발이 느려져 바로 앞에 있는 꿈에 닿지가 않아 꿈 독이 퍼져서 내 맘이 무너져 저 멀리 있는 꿈이 꼭 잡힌 것 같아
앞으로 나아가 힘도 뒤돌아 돌아갈 힘도 이대로 멈춰 설 힘도 이대로 포기할 힘도
꿈 독에 걸려서 내 발이 느려져 바로 앞에 있는 꿈에 닿지가 않아 꿈 독이 퍼져서 내 맘이 무너져 저 멀리 있는 꿈이 꼭 잡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