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명절에 시골에 가는 것이 좀 싫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촌들보다 뚱뚱했고, 공부를 더 잘하지도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장손이라는 것 말고는 그 어느 하나 돋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아이 었다.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었지만 부족한 경제력으로 예우받지 못하고 있었고, 할아버지도 조용히 별말씀이 없으시곤 했다. 그 당시 여느 친척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명절 때마다 아이들에게
"공부는 잘하냐?"
라고 묻곤 하셨고 난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더 잘하는 친척형들에 비해서는 항상 그저 그런 대답밖에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뚱뚱하던 내가 푸짐한 명절 음식들을 맛있게 먹다 보면 나름 걱정한다는 뜻으로
"에효 너는 꼭 살찌는 것만 골라서 먹는구나"
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곤 하셨다. 그러니 나는 명절마다 듣는 공부는 열심히 하냐? 살 좀 빼야겠다 등의 말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어 점점 가기 싫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절대적으로 나만 오롯이 눈에 띄게 대놓고 차별을 해서 예뻐해 주시던 우리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는 장손인 나에게 누가 뚱뚱하다고 뭐라고 하시는 걸 들으시면 당장 쫒아와서 장군감이다. 사내가 든든하게 살도 있어야 한다며 상대방을 혼내주셨으며, 설에 세배드리는 때는 나만 배우고 있던 태권도를 시켜보시고는 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두배로 주라고 압박을 주기도 하셨다. 심지어 자식들이 손주들 주라고 챙겨 다 준 신권 세뱃돈도 남은 건 오로지 다 내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가기 싫었던 명절에도 나를 자꾸 따라가게 해 준 것은 결국 할머니셨다.
나는 20살이 되어 30kg이나 살을 빼고 표준 체형이 되었고,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고 싶던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도 합격했다. 하지만 그래도 친척들이 바라보는 나의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고, 내가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도 내가 대학원에 갔을 때도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도 반응은 항상 이랬다.
"네가 뭘 한다고 그래? 빨리 졸업해서 부모님이나 도와드리지"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 않던 큰집에 대한 무시였고, 그때까지 나에 대해서 1년에 2~3번 보는 조카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셨다. 내가 연극을 전공으로 대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 모든 친척들이 반대를 했고, 그때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나의 편은 없었고 나는 왜 어른들께서 조카의 학업에 반대를 하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경하는 이유는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어도 친척들에게 손 벌리지 않았고, 그런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한 번도 친척들에게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분들은 나의 진학을 반대할 자격도 명분도 없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걱정으로 나의 미래에 대한 훈수들을 하셨다.
"연극으로 대학원에 가서 뭐하게?"
"돈도 안 되는 그런 거 할 생각 말고 빨리 졸업해서 취업이나 해"
그 순간 할머니도 안 계신 자리에서 하나뿐인 아들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화가 나신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셨다.
"젊은 사람이 나중에 뭐가 될지 알고 이렇게 무시들을 해?, 학비 보태달라는 말도 안 하고, 돈 빌려달 말도 안 할 테니 좀 가만히 좀 둡시다"
나는 누구보다 자유분방하고 스펙터클한 20대를 보내고,
누구보다 치열한 30대를 지나 지금까지 와있다. 아직 나는 성공하지도 않았고, 뭐가 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나름 번듯한 직장에서 내 몫을 해나가며 살고 있다.어쩌면 그때 그 어른들이 걱정하던 모습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훨씬 더 잘해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20대의 남다른 경험은 30대의 나에게 무기가 되었고, 30대의 치열함은 지금의 나에게 자신감을 만들어 주고 있다.
지나고 보니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어서 내가 취업을 하고 일을 하기 시작하자, 그리고 조금은 어른스럽게 보이기 시작하자. 무시와 잔소리보다는 인정과 응원으로 달라져 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나에게 어떤 말이든 꼬아 듣지 않는 자존감도 생겼다. 나는 지금도 나를 만들어준 것이 할머니의 강력한 편애와 어머니의 흔들림 없는 믿음이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기죽어 살지 않게 나의 편이 되어 주셨고, 어머니는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키워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린 친구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나보다 더 긴 미래와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계기로 어떻게 달라져서 새로운 모습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분명히 다가 아니며, 최종 버전도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나도 아직 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새로운 꿈을 꾸고 있고, 새로운 도전에 설렌다.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지금의 모습으로 조급하게 판단하고 나의 한계를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틀릴것이다. 아직 지금의 나는 다가 아니고, 나의 최종 버전도 아니기 때문이다.